광합성

in #kr-diar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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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두컴컴하게 지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암막을 두른 어두운 집에서 생활했으며 요일의 변화를 디지털 기기들을 통해서나마 희미하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정신적인 면을 설명하기에 앞서, 신기하게도 감정적인 변화는 크지 않다는 사실을 밝힌다. 무너지는걸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정신과 감정 사이를 갈라놓은 것인가, 아니면 수련의 성과인가는 모르겠다. 내가 한 수련이라는게, 결국 정신과 감정 사이를 갈라서 완전이 무너져 내리는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면 구분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해 못하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서, 정신적으로는 머릿속이 텅 비어서 잡념 없이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행능력은 처참했고, 몰두라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냈을 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나에게는 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날씨가 나쁘지 않냐고 물었지만 밖은 맑다고 했다. 하지만 외출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도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물질적인 문제가 직접적으로 내 외출을 막고 있는건 아니었지만, 물질적인 문제는 내 정신에 영향을 미쳤다. 제대로 그 무엇도 수행하지 못하는 나에게 외출은 사치로 느껴졌다. 육체적으로는, 이번에도 수면문제다. 하지만 평소의 수면문제와는 조금은 달랐다. 여태까지 내가 겪었던 수면문제는 수면의 질이 낮다는 것과 한번 잠에서 깨면 바로 일어나서 활동을 하는 습관을 들인 탓에 아무리 피곤해도 다시 잠들 수 없었던 것에 기인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잠을 자고 싶지 않아서 잠을 미루고 있다. 눈꺼풀이 무겁고, 억지로 뜨고 있는 눈은 뻑뻑해서 아파오지만 잠을 자고 싶지가 않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휴식을 거부하며, 눈을 뜨고 밤을 새웠으면서 뒤늦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이상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낸다고 휴식을 취할 수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제 이 생각을 한건 아니었다. 어제 어떤 생각으로 나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스스로도 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생각나는건, 나는 평소에 매일 볕을 쬐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곤 했다. 그런 내가 며칠간 시간의 흐름조차 볼 수 없는 상태로 지냈던건, 내 정신상태에 대한 방증일까? 아니, 단지 날씨가 더워서였을 것이다.

나가서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내 수행능력은 형편 없고, 거기서 벗어날 의지도 없다. 그래도 볕을 쬐서 좋았다. 그 순간에는 기분이 좋았다. 역시 사람에게도 광합성이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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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동굴 속에 머물다가 밖으로 나온 수행자 같은 느낌이네요. 정신과 육체와 물질 모두가 풍요롭게 채워질 날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네. 저도 꼭 그러길 바랍니다.

어떤 수련을 하시는 지 정확히 알수 업지만, 매일 광합성을 하세요 ㅎㅎ 우린 식물입니다. ^^

요즘 더위도 물러가고 날씨 선선해졌습니다

낮에 나오셔서 광합성 하시지요 ㅎㅎ 비타민D 보충도 할겸

저는 꼭 이상의 소설을 읽는 듯한.. 그런 느낌이네요~ ㅋ 가즈앗!!!

가즈앗!

볕을 쬐는 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볕이 보약이죠. 오죽하면 광선치료라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항상 그렇게 생각했는데 잠깐 잊은 모양입니다.

힐링하시고 새 힘을 얻으신 것 같아 좋습니다ㅎㅎ

네. 지금은 기운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저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동에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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