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공황

in #kr-diary5 years ago

조각조각난 정신들은 각각의 외침을 담고 있고, 내 정신은 마치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자신들의 언어들로 웅성거리는 광장 가운데 홀로 놓여진 사람이 겪는 공황상태를 겪고 있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언가에 집중해야 했지만, 집중할 무언가를 찾는 것도 이 공황상태에서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판을 두들겼다. 주제도 무엇도 없이 끊임 없이 두들겼다. 내가 어떤 문장을 만드는지도 모른 체, 끊임 없이 두들겼다. 나는, 역설적이게도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움직였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무슨 문장을 만들어가는지 인지하며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 행동을 기록하는 것은, 이 아우성 사이에서 특정한 주제를 잡아내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보다 간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내면의 공황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 조각조각난 정신들의 외침, 전세계 사람들이 제각각의 언어로 만들어내는 아우성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충족되지 않는다. 내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끊임 없이 좌절되었기에, 그들의 아우성이 이토록 커졌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이토록 미치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 할 것이 두려워서도,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걱정해서도 아니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무어라 할 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대답이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상황은, 오롯이 내가 해쳐나가야 할 상황이다. 누구도 내 손을 잡고 광장에서 나를 꺼내줄 수 없다.

그래도 자판을 두들기고나니 조금 평안해졌다. 아우성이 잠잠해진 것은 아니다. 단지 무언가에 집중을 하고 있으니, 아우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뿐. 그런 임시방편이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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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입니다.
반갑습니다.
평안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네. 오랜만입니다. 한바탕 쏟아내고 멍하게 있으니 훨씬 낫네요. 감사합니다.

지속적인 평안을 위해 조심스레 명상을 추천드립니다.
꼭 명상이 아니더라도 하시는 일에 늘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와서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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