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누군가의 거절

in #kr-dail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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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써보는 기묘하고 신비한 대문, 오늘 글엔 역시 이 대문이 어울릴 것 같아요. 역시 새해에도 열일하는 대문누나 @bbooaae님께 받았습니다.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거절 당하는 순간이 있다. 부탁을 했을 때 거절도 난감한 법이지만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거절은 마음에 대한 거절이다. 내가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건넸던 작은 마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예쁘게 포장해서 건넸던 내 소중했던 마음의 한 부분이 어쩌면 상대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포장지가 풀어진 채 바닥에 널부러지고 마는 때가 있다.

'Give and Take.' 그것은 때로는 예의고 상식이고 배려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관계를 가장 적확히 설명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것도 되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끌리는 사람도 있다.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간다. '저 사람과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혼자만의 작은 기대를 담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두드린다. 혹시 나와 같은 마음일까? 아니 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내 애정을 받아줄 수 있을까? 우리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간혹 좋아했지만 어려워서 망설이고 있던 상대방에게 신호가 올 때가 있다. 그러면 뛸뜻이 기뻐져서 어린아이처럼 마구 설렌다. 그러다 혹시나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봐 그 마음을 억누르고 받기에 적당한 정도로 정제한 후 아무렇지 않은 듯 건넨다. '저도 조심스럽지만 당신이 좋습니다.'

그러나 역시 거절의 순간은 존재한다.


내가 기억하는 거절의 순간

21살 봉사동아리의 첫 후배가 들어왔다. 학년은 아래였지만 나와 동갑인 노란머리. 그는 이름이 조금 특이해서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질 않았다. 말이 많지 않았다. 그와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란 걸. 단체 생활에 조금 어려움이 있고 사람을 가리고 가끔씩 우울하기도 하다는 걸. 나는 그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그와 곧 메신저 친구가 되었다. 집이 가까웠는데 그는 나와 다르게 노래를 부르는 걸 아주 좋아했다. 나는 노래를 듣는 걸 참 좋아했다. 같이 노래방에 가서 한 시간 넘게 그 혼자 노래를 불렀고 나는 진심을 다해 그 노래를 마음에 담았다. 그 때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그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몇 달이 되지 않아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나와 달라. 넌 나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 그러니 날 이해하는 척 하는 건 그만 둬.

나는 지금도 그가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실수를 했거나 아니면 정말 그의 말대로 그를 이해하는 척 하는 나의 위선이 거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싫다는 사람에게 더 이상 무얼 할 수가 없었다. 그 거절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어차피 내가 그를 특별하게 생각했던 건 아무도 모르니깐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참 많이도 아팠다.

당시 내 남자친구는 그와 굉장히 친했다. 그 이후로도 그를 볼때마다 그의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노력했지만 늘 슬펐다. 오히려 그에겐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받지도 못할 마음을 줬던 것이다. 그건 20살이 넘어 먼저 마음을 열고 기대 없이 다가간 첫 관계였다. 어쩌면 그에게 거절당한 사실보다도 내 첫 용기에 대한 거부가 슬펐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전까지 오만하게도 '내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아도 모두가 나를 좋아하진 않아도 나와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인정해야 했다. 그럴 듯해보이는 인연도 나를 거절할 수 있는 거라고. 한눈에 내 사람이라고 믿었던 누군가도 어느날 갑자기 나를 거부할 수 있는 거구나라고. 그러면 꼼짝없이 내가 싫다해도 그 관계는 끝을 낼 수 밖에 없는 거구나.


나는 예민했고 생각이 많았고 때로는 상대방이 주지도 않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을만큼 성격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꽤 집요한 면이 있다.

거절의 경험은 늘어가고 세상엔 내게 맞는 사람보다는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그땐 맞았어도 시간이 지나면 주파수가 틀어져서 딴 세상 사는 사람마냥 엇갈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가끔은 모든 게 다 귀찮아져서 관계란 거 자체에 신경을 끄게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먼저 다가가게 된다.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면 어떻게든 또 한 번 시도해본다.

거절을 당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먼저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 거절을 당하고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릇이 굉장히 커서 세상 모든 풍파에도 허허실실 웃으며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절에도 전혀 타격이 없는 관대한 고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고수가 아니다. 거절 당하면 여전히 아프다. 전혀 그릇이 크지 않다. 일일히 상처받는단 말이지. 거절 당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짊어지고도 잠깐의 민망한 순간과 아픔을 견디고 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손을 내미는 그 이유는 서른 번쯤의 거절뒤로 운 좋게 만나는 소중한 인연 하나가 가끔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아니면 이렇게 몇 천 번 거절당하다보면 아픔을 견디는 나의 그릇이 1mm쯤은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니깐. 지금까지 보면 그다지 효과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내일도 난 내 멋대로 오해를 한 채 손내밀 것이다. '혹시 저랑 친해지실래요?'


이 글을 스팀잇에 올리는 이유는 여기서도 몇 번 거절당한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아주 사소하고 별 거 아닌 일이다. 아마 그 상대방은 전혀 내게 그럴 의도가 없었을 것이고 기억도 못할 테지만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도 구분을 두지 않는다. 현실에서 만나든 여행을 하다 만나든 채팅을 하다 만나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나든 나라는 자아의 일관성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겐 현실 세계와 이 곳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다. 이건 애정을 갈구하는 찌질한 자기고백이다.
그러나 괜찮다. 진짜 괜찮다. 거절당하면 이젠 나도 '흥칫뿡!'하고 급히 내 마음을 다시 넣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말이다. 찌질하지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합리화다. Give and Take가 아니였던 나의 직감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흔한 Give and Take 관계로 급선회하는 방법이랄까.

그러나 Give and Take도 나와 취향이 잘맞다고 멋대로 라벨을 붙이는 관계도 그냥 스치는 인연도 멀어져버리는 안타가운 인연도 나의 소심함과 상관없이 모두 감사한 존재다. 그러니 거절 당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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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부터인지는 모릅니다.웃어른 주변사람 어느순간 언론마저 사람이 사람을 배려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사심없이 친철을 베풀면 의심을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지요 그래서 생긴 문화가 Give and Take 줬으니 달라 어찌 보면 내가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 해라 나쁘게 말하면 목적(나와의이해관계)을 가지고 다가간 거지만 현대사회에선 당연시 되는 문화로 정착 한거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친철을 베풀면 사기치려는 의도가 있는거 아닌가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어 관심을 가지면 돈 보고 배경보고 접근 하는거 아니냐 하는 소리 들을봐엔 내가 베푼만큼 받으면 서로 서로 불편한 생각 불편한 관계는 더이상 발전되지 않으니~ 스팀잇은 좋은 말로 상부상조 나쁜말로는 먹튀 되겠네여ㅋ

처음에는 Give and Take란 말이 거북스러웠는데요. 생각해보니 꼭 물질적인 의미를 제외하고도 마음의 위안이나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상호 나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차가운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한 쪽이 끊임없이 주는 쪽이 부자연스럽겠죠.

그러나 이유없는 친절이나 관심이 의심스럽고 경계심을 주는 게 너무 당연하단 것도 알아요. 그렇디만 마음 한 구석에 이유없이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기억하며 살아요 ㅋㅋ

긴 댓글 감사드립니다:D

맞습니다 이유없이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도 있다 배려하는 사회 따뜻한 에피소드가 들려오는 사회면이 있어 살맛 나는 세상이지요

전 댓글엔 못달았어요 친절을 베풀었는데 남자분이 이해하려 하지마라고 한건 소개팅을 안시켜줘서 그럼듯 ㅋ 우스게 소리였습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

ㅋㅋㅋㅋ 앗 ㅋㅋㅋㅋㅋㅋ 천재이신듯 그런거라면 납득이 ㅋㅋㅋㅋ 좋은 밤보내세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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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란머리 친구는 이해보다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고물님을 좋아하는데 옆에 남친이 있으니, 이해하는 척 하는 건 그만둬~ 라고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던 건 아닐지요. ㅎ

하하핫 아니에요. 솔메님 확실히 단언합니다 ㅋㅋ 전혀 제게 그런 쪽에 호감은 없었을 겁니다.

그는 제가 먼저 다가갔고 여러 사정상 제가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발랄한 성격인데 굳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설마 솔메님 말이 맞을까요? 노노노노 아닐 거에요 ㅋㅋ

저도 비슷한 상상 했습니다. 다만 그 노란머리 친구가 고물님을 좋아했다기 보단 친한 친구의 여자친구이다보니 적절한 거리감을 두기 위해 투박한(?) 수를 쓴 게 아닐까... 상상해봤습니다 :)

나는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도 구분을 두지 않는다.

이렇게 대놓고 일치화(?)한다고 언급하시는 분은
처음 뵙네요

유튜브만 봐도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여 일부러 구별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갠적으로 처음뵙는것 같습니다.

훌훌털고 일어나는 모습에서
절로 응원하고 싶어지네요

아 정말요? ㅋ 물론 사람은 비치는 각도에 따라서 늘 달라보이깅 해요. 그렇지만 제겐 온라인/오프라인의 구분은 아닌 것 같아요.

전 워낙 ... 단순한 인간인지라 구분하고 싶어도 능력이 안되서 ㅋㅋㅋ 그럴 수가 없어요.

사실 스팀을 할 땐 거짓은 아니어도 가릴 필요가 있디 않을까 싶었는데 자꾸만 솔직하게 세어나오다라고요.. ㅎㅎ 하고 싶은 말이 말이죠.

곰돌이가 @fgomul님의 소중한 댓글에 $0.017을 보팅해서 $0.006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2500번 $31.118을 보팅해서 $31.065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저는 어떤 거절도 안 할게요. ^^

살다보면 부탁을 할 경우가 생겨요. 난 어렵게 고민하고 부탁했는데 거절당하면... 좀 그렇죠. 에구궁. 그런데 전 거절을 잘하는 성격이라 거절당해도 마음이 크게 상하거나 그렇진 않는 것 같아요. 예전에 아는 분이 거절 잘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해서 거절하는법 책을 사준적이 있어요. 선물로 주기 전에 읽어봤는데요... ㅎㅎㅎ 그 덕분에 제 성격을 버린듯. 아~~ 말이 새버렸네요.

아~~ 무슨말 하려고 했더라... 암튼... 잘 맞는 사람끼리 잼나게 삽시다. ^^ 저도 사람을 좀 가리는 편인데 여기 스티미언님들과는 잘 맞아서 좋아요. ㅎㅎㅎ

ㅎㅎㅎ 이런 글을 썼지만 저도 거절을 꽤나 잘해요. (부탁을 잘 못하긴 해요) 예전엔 거절을 잘 못하기도 했는데 가끔은 오히려 냉정한 게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존재한다는 걸 안 이후에 저도 꽤나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 됐죠 ㅋㅋ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판이 두꺼워지고 있기도 하고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렇게 정붙인건 거의 15년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스팀잇을 애정하고 있죠. 제겐 엄청난 일이거든요 헤헷.

거절은 괜찮지만 되도록이면 나하님과 오래 알고 지내면 더할 나위없겠죠:D 잼나게 지내요. 스팀 투더문 할 때까지 ㅋㅋㅋ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상대의 생각을 알게 되었을 때, 씁쓸하긴 합니다.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고물님의 마음이 공감가네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실체를 마주할 때 씁쓸하죠 늘.. 어쩔 수 없지만서도 ㅎㅎ

mspower님 무언가 생각을 하게하는 여러 일이 있으셨군요. 편안한 밤 되시길 ^_^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는 명쾌한 답이 있음에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ㅠㅠ
그래서 상처받는 일이 참 많은것같아요.
21살때 고물님에게 거절의 기억을 안겨주었던 그 친구는
정말정말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고물님의 아픈 마음이 치유될수있으면 좋겠어요 ㅠ.ㅠ

사람인지라 마음처럼 쉽지 않아요. 제 허락도 없이 기대하곤 한 단 말이죠.

ㅋㅋ 무려 십년전의 일이라 괜찮습니다. 여전히 기억이야 하고는 있지만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인지라 ^_^; ㅎㅎㅎ

수수님의 따뜻한 위로 감사드려요. 요새 자꾸 ㅋㅋ 위로받고 있네요. 가끔은 즐거운 소식도 전하도록 노력해댜겠어여. 좋은 밤 되세요 수수님:D

거절은 하는 입장에서도 받는 입장에서도 힘들죠.

그쵸. 하는 사람도 힘든 법인데 소인배인지라 거기까지 아량이 닿질 않아요 ㅋㅋㅋㅋ

KR 커뮤니티 출석부 함께 응원합니다~♩♬
행복한 월욜 ♥ 보내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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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합니다 블루엔젤님 행복한 한 주 되세요:D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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