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끄끄|| #13 J. M.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in #kr-book6 years ago (edited)

오렌지나무.jpg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마흔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리움 속에서 어린 시절이 계속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언제라도 당신이 나타나셔서 제게 그림 딱지와 구슬을 주실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의 사랑하는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구슬과 그림딱지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제 안의 사랑에 만족하기도 하지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절망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시절, 우리들만의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제단 앞에 엎드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원히 안녕히! _본문에서

_J. M.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2015년에 발매된 아이유(IU)의 앨범 중에 제제(Zeze)란 곡이 있다. 곡의 이름이기도 한 제제는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이유가 직접 작사한 제제(Zeze)는 나오자마자 해석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내용인 즉, 어린아이인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며 출판사 측에서 유감을 표한 것.

이에 대해 아이유는 라임오렌지나무인 밍기뉴 관점에서 가사를 만들었고 캐릭터만 봤을 때 제제는 많은 모순점이 있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이 문제는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을 놓고 사회적으로 잠시 이슈가 됐다. 논란은 출판사 측과 아이유가 서로 사과하는 것으로 좋게 마무리됐다.

당시 화제가 된 제제란 곡을 나도 들은 바 있다. 듣고 나서 이렇다 한 생각을 내놓지 못했는데 책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다짐해 놓고는 무려 2년이 지나 읽게 되었다.

책은 브라질에 사는 다섯 살 아이 ‘제제’의 이야기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제제는 다섯 살이지만 영리하고 조숙해서 곧잘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을 제 것처럼 받아야 할 다섯 살이지만 가족들은 제제에게 냉대와 학대로 일관한다. 이런 어두운 환경이지만 제제는 좌절하지 않고 밍기뉴와 함께 성장해 나간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려서 이 책을 읽었을 땐 제제가 가난하고 학대를 당해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다. 어른이 된 지금, 제제에게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다르다. 제제가 가여운 것은 매한가지나 그것이 꼭 가난과 학대 때문은 아니다.
제제는 남들보다 조숙하다. 제제의 조숙함은 영특함에서 온 것이 아니다. 어두운 환경과 아픔이 제제를 성숙하게 만든 것이다. 이야기 마지막쯤엔 제제가 큰 아픔을 겪고 이겨내면서 철까지 들게 된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 건 굉장히 슬픈 일이다.

어린 제제는 말한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 할까. 철들지 않은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행복했던 거 같은데, 언제까지고 철부지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더는 불행하지도 않을 텐데.

책은 제제의 물음 하나하나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제제가 어느새 철들어버린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맺음말_크기 변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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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글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아주 어렸을때 본 책인데...그때는 별 감흥없이 봤었던 기억이 나네요.
나이가 들어서 성인의 관점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봤을때 완전히 새롭게 읽었던 기억이 나에요
tip!

그죠. 저도 어려서는 그냥 불쌍하네 정도였는데 커서 읽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

팁도 감사하고 읽어주셔서도 감사합니다. 감사한 거 투성이네요. :)

저도 어렸을 때 읽어서 큰 줄거리는 기억나지만 소소한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어요.
철드는 게 그리 나쁜 거 같진 않아요. 안 그런가요? 이젠 다시 철부지가 돨 수 없는 어른의 자기위안이라고 해두죠. ^^;

어려서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도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기억이 잘 안나니까 처음 읽는 거 같은 느낌도 있고요.

철 드는 것.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ㅎㅎ 근데 말씀처럼 더는 돌아갈 수 없는 날들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거보면 전 아직 철이 덜 든 모양이에요. :)

저도 메리 포핀즈 어렸을 때 읽고 몇년 전에 다시 읽었는데(영어로), 참 좋더라고요. :)

아, 브리님처럼 다른 언어로 읽을 수 있으면 진짜 좋을 거 같아요. 그럼 다시 읽는 느낌보다 새로 읽은 듯한 느낌일 거 같거든요.
전 아직 그런 능력이 안 되서. ㅠ

초코님의 마지막 문장 너무나도 좋습니다. 일찍 철이 든 제제가 철든 나를 위로해준다니....저한테도 해당되는 문구인 것 같아요. 저도 오랜만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다시 읽어봐야되겠네요. 제제를 만나러요 ㅎㅎ

근데 생각해보니까 저 아직 철이 덜 든 거 같아요. ㅎㅎ 철 든다는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제제와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쏭이님. :)

분명 읽은 책인데 오래전이라 내용이 기억이 안나네요. 좀더 어른이 되고나서 읽으면 다르게 보일까싶네요.

어른이 되서 읽은 이 책. 많이 달랐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땐 아픔이 뭔지 헤어짐이 뭔지 잘 몰라서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은 헤어져도 보고 아파도 해봐서 제제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공감하면서 읽었던 거 같아요. :)

아.. 저랑 똑같으시군요 초콜렛님ㅎㅎ 저도 아이유 곡 논란이 있었을때 이해할수 없었어요. 왜냐면 초등학생때읽었던 나의라임오렌지나무였기 때문이죠>____< 근데 초콜렛님은 다시읽어보셨군요!

생각해보면 어릴때 읽으며 느꼈을 감정과 생각이 지금과는 마니 다를것같네요. 지금의 우린 어릴때와는 달리.. 철이 들어서겠죠?ㅎㅎ

나이들어서 보는 관점이 많이 틀려서 그런 거 같아요. 물론 철이 들어서도 그러겠죠? :)

초등학교 다닐때 이 책 읽으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참 슬픈 책이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저도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 레이헤나님. :)

초등학생이셨는데도 감수성이 풍부하셨나봐요. 전 정말 아무 감정 없이 읽었던 거 같은데. 사실 이도 잘 기억 안나요. ㅎㅎ
지금 다시 읽으시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실 거예요. ^-^

분명 같은 책이지만, 언제 읽었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전혀 달라지는듯 합니다. 세상에 대해 많이 모를 때, 그냥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글자를 읽었다면,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때, 읽으면, 글자가 품은 묵직한 한방을 보게 되는 느낌입니다.

맞아요. 지금 제가 처한 상황이나 가치관에 따라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죠. :)

예전에 읽고 읽지않았는데 지금 읽으면 그때 느낌과는 틀릴꺼같아요
나중에 서점가서 하나사서 읽어봐야겠네요 ^^

안녕하세요. Younbokum님. :)

예전에 읽으셨지만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 실 거예요. 제제와의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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