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슬램 by 닉 혼비 ㅡ 너 사고 쳤냐? 인생 완전 망쳤군.

in #kr-book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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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6살 생일을 앞둔 샘이 주인공이다. (샘의 나이를 꼭 기억해두자.) 한동안 샘의 인생에는 좋은 일들만 일어났다. 싱글맘인 엄마는 드디어 (샘의 마음에 안 들었던) 꼴 보기 싫은 남자 친구를 차 버렸고, 샘은 스케이트 보드 새 기술을 연마했으며, 얼굴이 아주 예쁜 알리시아라는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됐다. 그런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한 순간, 샘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샘은 사귀던 여자 친구 알리시아와 헤어지게 된다. 이게 문제였냐고? 아니다. 살다 보면 사귀다가 헤어질 수도 있고 그런 거다. 게다가 이 둘은 누가 누구를 차 버린 게 아니고, 그냥 애정이 좀 식으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됐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샘은 어느 날 알리시아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예정일이 3주나 지났는데 생리를 안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알리시아가 단순히 생리불순을 겪고 있는 여고생이었던 걸까? 아니면 샘의 여자 친구가 아니, 헤어진 옛 여자 친구가 임신을 했을 가능성이 있는 건가? 아, 만약 진짜 임신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엄마에게 말씀드려야 할까?

참고로 샘의 엄마는 32살이다. (다시 스크롤을 위로 올려보자. 샘이 몇 살이라고?)


출처: 교보문고

이 책은 청소년의 (특히 성에 대한?) 성장기를 재미나게 쓴 소설이다. 책이나 드라마를 보면 십 대 미혼모들에 대한 얘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대개 양극단을 달리는 경향이 있다. 낙태, 미혼모, 영아 유기 등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거나, 젊은 나이에 엄마/아빠가 되어서도 예쁘고,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아이와는 친구 같은 엄마/아빠가 되는 화려한 일면만 부각하거나.

이 책에서의 샘은 두 가지 극단을 골고루 섞어서 보여준다. 어떤 때는 이 한 번의 실수로 자기 인생이 십 대에 벌써 망가져버렸다고 우울해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샘은 콘크리트로 된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즐겨 타는데, 자칫 실수를 하면 바닥에 넘어지거나 쾅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SLAM은 스케이트보드를 탔을 때 실수로 넘어지는 상황과 샘의 인생이 꼬여버린 상황을 중의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좋았던 건 엄혹한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가족 간에 사랑이 있으면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어서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조카도 있고, 이복 오빠 두 명은 엄마가 제각각"이며 16살 애아빠와 32살 할머니가 살고 있는 콩가루 집안이라고 남들은 흉볼지도 모르지만, 샘의 엄마는 당당하게 말한다.

“Why is it a mess?”she said.
...
“It’s just a family, isn’t it?”

“이게 왜 콩가루야?” 엄마가 말했다.
... (중략)
“이건 그냥 가족이잖아. 안 그래?”

주인공 샘이 일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심정을 고스란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십 대의 성 문제나 임신 문제에 대한 청소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 괜히 이 책의 종류를 ‘코믹 청소년 성장소설’이라고 쓴 게 아니다. 중간에 판타지처럼 혹은 꿈처럼 살짝 타임워프 설정이 나오는데, 그것도 이 책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지만, 십 대 아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한국어판 제목: 슬램
영어 원서 제목: SLAM
저자: 닉 혼비 (Nick Hornby)
특이사항: 코믹 청소년 성장 소설


덧글) 지금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아쉽게도 절판이 된 듯합니다.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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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지구의 파수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나 사랑이 답입니다.

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

Love each other or perish.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하리라.

사랑이 진정 지구의 파수꾼이지요.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브리님께서 재미있고 해설을 해주셔서 그런지 한번 읽어 보고 싶은책입니다.^^

네, 절판이 돼서 살 순 없겠지만 동네 도서관에 있으면 빌려보세요. 아직은 아드님이 어려서 상관없겠지만, 미리 사춘기 아들 마음 속을 본다 생각하셔도 재미있을 거에요. :)

원서로 읽으시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매번 번역체 때문에 외국서적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어서요. ㅠ 그래서 포기한 책도 여럿있구요.
재밌는 책 소개 감사합니다. 흥미로워서 알라딘에 슬램 쳤더니 슬램덩크만 잔득 나온 ㅎㅎ

그죠? 이 책 꽤 재미있는데 한국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었나봐요. 책도 절판되고.. ㅠ.ㅠ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번역만 제대로 됐다면 정말 재미있는 책일겁니다. ^^

영화 과속스캔들이 생각납니다. (전 영화 안봤습니다)

그러고보니 과속스캔들이네요. (전 영화 봤습니다 ^^)
영화에서는 노총각 차태현에게 어느날 "딸(20대 초반?)"이 나타나죠. "손자(다섯살?)"까지 데리고요.
딸이나 손자보다는 하루 아침에 아빠/할아버지가 된 차태현의 입장을 많이 보여주죠.

이 책은 32살 엄마와 함께 사는 16살 소년이 전 여친을 임신시켜서 사단이 나는(!) 이야기입니다.
애아빠가 되는 소년의 입장을 재미있고 현실감있게 묘사하고 있어요. :)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읽을 예정인 책들이 쌓여있는 관계로, 언젠가 꼭 읽어보겠습니다. 원서로 읽으신다니, 부럽습니다. ^^

네, 무척 재미있어요. 닉 혼비가 정말 재미있게 글을 잘 쓰는 작가에요. 휴 그랜트 주연의 영화 "어바웃 어 보이"도 닉 혼비 소설인데, 책이 영화보다 100배는 더 재미있어요. :)

“It’s just a family, isn’t it?”
이 한 문장이 샘의 엄마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런 시선을 가진 엄마 밑에서 자란 샘이
어떤 주인공일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재밌는 소설일 것 같는데,
한국에서 절판된 게 아쉽습니다 ㅜㅜ
그럼에도 좋은 소설과 이야기들 들려주셔서 고마워요.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절판이라니 저도 아쉽습니다. ㅠ.ㅠ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이의 시각이 담긴 글을 자주 읽으시네요. 책을 읽고 매번 서평을 남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청소년 소설을 자주 읽는 건 제가 원서로 읽기 때문이죠. ㅎㅎ 어려운 단어가 없어서 진도가 잘 나가거든요. 게다가 재미까지 보장!!
어려운 책, 쉬운 책 번갈아가며 읽습니다. 어려운 것만 읽으면, 가뜩이나 영어로 읽기 때문에 진이 빠져서요. :)

책을 읽고 서평을 안 남기면 나중엔 책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요. 저질 기억력.. ㅠ.ㅠ
책의 내용과 읽었을 때의 감동을 기록하려고 노력한답니다. :)

외국에 계시고 원서 읽고 작문도 하셔서 모국어 수준으로 하실거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교육자시거나 청소년 문학에 관련 있는 직종에 계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에 대한 거품이 많군요. ㅠ.ㅠ 거품을 살살 걷어내야겠습니다. ㅠ.ㅠ
제 소개에 써있듯이 책과 영어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공부하며 영어로 책을 읽고 있고요. 글쓰기를 좋아해서 시, 독후감, 소설, 수필.. 그냥 쓰고 있습니다.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로도 글쓰기를 연습하고 있고요.

제가 원하는 정도로 영어글을 쓰려면 영어공부 더 해야해요. 그래서 혼자서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

샘이 두 극단의 모습을 골고루 보여주는 건 오히려 더 현실적인 묘사인 것 같네요. 꼭 읽어보고 싶어요. 도서관에서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ㅎㅎ 오늘도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발달 심리 공부하시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쳤을 때 십대 청소년이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혹은 어떻게 도망치려하는지 잘 보여줘요. 그 심리가 잘 드러나있어서 가나님께도 재미있을 겁니다. ^^

책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네요!!ㅎㅎ

네, 재미있는 청소년 소설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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