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36. 마션 by 앤디 위어 - '지구인'을 그리고 있는 '화성인'

in #kr-book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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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책으로



나는 이 작품을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로 먼저 접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책도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영화가 재미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독립 출판 분야에서는 전설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전문 소설가가 아니었던 앤디 위어는(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취미 삼아 소설을 쓰게 됐고, 그걸 지인들과 돌려보기 위해 자비 출판을 하게 된다. 그 책이 점점 입소문을 타고 퍼지게 되자 몇 년 후 출판사가 정식 계약을 맺고 종이책으로 출간을 했고, 모두들 알다시피 영화사에서 판권을 사들여 영화로 만들어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도대체 책이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영화의 재미와 더불어 책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소설로 이끌었다.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이 많을 테지만, 소설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한다. 화성으로 떠났던 탐사팀이 탐사 작업을 하던 중 엄청난 모래 폭풍을 만나게 되고, 상황이 여의치 않자 조기 귀국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우주선(MAV)으로 향하던 중 마크 와트니가 바람에 날려온 안테나에 찔려 죽게 된다. 시간 여유가 더 있었더라면 그의 시신이라도 수습했을 텐데, 남아 있는 대원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대장은 어쩔 수 없이 마크 와트니의 시신을 남겨두고 우주선을 지구로 출발시킨다.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마크 와트니가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이후의 책 내용은 낙천적이면서도 입이 거친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어떻게 화성에서 홀로 살아남는지, 어떤 고난을 당하며 그걸 헤쳐나가는지, 그리고 과연 그는 지구로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플롯 자체도 흥미로웠고, 세세한 과학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았으며, (이미 영화를 봤기 때문에) 맷 데이먼의 모습을 떠올리며 책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커다란 질문을 한 가지 마주하게 됐다. 우리는 왜 위험과 손해를 무릅쓰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가.

물론 이 질문은 영화를 보면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질문에 머물며 곰곰이 생각하기보다는 마크 와트니의 생존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결말을 향해 계속 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는 살 수 있는가, 없는가???) 책은 그런 점에서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책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잠시 책장을 덮어두고 그 질문을 깊게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bukio


본능, 인류애, 인간의 도리, 혹은 동지의식


우리는 왜 위험과 손해를 무릅쓰고 타인을 구하는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어떤 경우에는 미덕이라고까지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재정적, 정신적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은 인간 본성에 배치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I think about the sheer number of people who pulled together just to save my sorry ass, and I can barely comprehend it. My crewmates sacrificed a year of their lives to come back for me. Countless people at NASA worked day and night to invent rover and MAV modifications. All of JPL busted their asses to make a probe that was destroyed on launch. Then, instead of giving up, they made another probe to resupply Hermes. The China National Space Administration abandoned a project they’d worked on for years just to provide a booster.
The cost of my survival must have been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All to save one dorky botanist. Why bother?
Well, okay. I know the answer to that. Part of it might be what I represent: progress, science, and the interplanetary future we’ve dreamed of for centuries. But really, they did it because every human being has a basic instinct to help each other out. It might not seem that way sometimes, but it’s true.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겨우 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동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해가며 나를 데리러 돌아왔다. 나사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일하며 로버와 MAV 개조 방법을 연구했다. 제트추진연구소 사람들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보급선을 만들었다. 그 보급선은 결국 발사 도중에 파괴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헤르메스에 보급하기 위해 또 하나의 무인선을 만들었다. 중국 항천국은 수년 동안 매달린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추진 로켓을 내주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 붓다니. 대체 왜 그랬을까? 그렇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진보와 과학, 그리고 우리가 수 세기 동안 꿈꾼 행성 간 교류의 미래를 표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사실 이 질문은 얼마 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봤을 때도 떠올랐었다. 들켜버린 의병 '소화'를 구하기 위해 수십 명의 의병들이 목숨을 걸고 총을 드는 게 합당한가? 정말로 우리에게는 남을 도우려는 본능이 있는 것일까? 본능은 아니지만 남을 돕고 그를 구하지 않으면 '추구해야 마땅한 길'을 저버렸다는 양심의 소리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까? 아니면 <미스터 션샤인> 속 애기씨의 대사처럼 "어느 날엔가 저 여인이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구하는 것일까? 내가 위험에 처하면 다른 이들도 나를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 그러니 누군가가 위험하면 우리도 구해줘야 한다는 동지의식?

본능, 인류애, 인간의 도리, 동지의식. 뭐라고 이름 붙여도 좋다. 어쨌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혹은, 우리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책 제목은 '마션(martian: 화성인)'인데, 정작 책을 읽으면서 자꾸 '어쓸링(earthling: 지구인)'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션(martion: 화성인)'을 읽으며 '어쓸링(earthling: 지구인)'을 생각해본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누군가를 위한다는 게 영화나 드라마 속에만 나오는 일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현실에서도 많은 소방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화재 현장에 출동한다. 몇 달 전에는 태국에서 실종됐던 소년들을 찾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구조대가 동굴 속으로 들어갔었고, 실제로 그들을 구하다가 구조대원이 사망한 일도 있었다.

전문적인 소방관이나 구조대원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철로에 떨어진 술취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거나, 차에 치일 뻔한 유모차를 구하려고 내달리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남을 구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지는 않는다. 내 목숨과 재산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이 책을 좋아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협력하는 모습은 각박한 이 세상에서 꼭 보고 싶고, 정말 응원하고 싶은 장면이니까.

그 사람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살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서가 아니라, 비록 그가 '괴상한 식물학자(dorky botanist)'라 하더라도 단지 그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구한다는 점도 감동적이다.

SF 과학 소설을 좋아한다면, 영화 <마션>을 재미있게 봤다면, '화성인(마션)' 책을 읽으면서 '지구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책의 첫 문장. 마크 와트니의 심정을 아주 잘 드러낸, 좋은 문장이다.


I’m pretty much fucked.
That’s my considered opinion. Fucked.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2.
화성에 홀로 떨어져서 내가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 그럼에도 우리는 생존과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듯한 일(이 책 속에서는 우주비행사의 일 즉, 암석 채취를 말하고 있다.)도 하고 싶어 한다. 살기 위해 감자 농사를 짓고, 거주용 막사를 고치고, 짐을 옮기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그리워하고, 찾아 하는 것. 인간이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일까?


At first, I figured it was my duty. If I survive, geologists will love me for it. But then it started to get fun. Now, as I drive, I look forward to that simple act of bagging rocks. It just feels nice to be an astronaut again. That’s all it is. Not a reluctant farmer, not an electrical engineer, not a long-haul trucker. An astronaut. I’m doing what astronauts do. I missed it.

처음에는 의무라고 생각했다. 내가 구조된다면 지질학자들에게 사랑받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다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지금은 로버를 몰 때마다 암석을 채취하는 단순한 활동이 몹시 기다려진다. 다시 우주비행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바로 그거였다. 마지못해 농사를 짓는 농부도 아니고, 전기공학자도 아니고, 장거리 화물차 운전사도 아니다. 우주비행사. 나는 우주비행사들이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나 그리웠던 일인가.


3.
사람의 목숨은 단순한 연산이 아니니까. 맙소사. 이걸 어떻게 선택하냐고.


"We can have a high chance of killing one person, or a low chance of killing six people. Jeez. How do we even make this decision?"

“그러니까 하나는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지만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고, 다른 하나는 여섯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지만 목숨을 잃을 확률이 낮은 거군요. 맙소사. 이걸 어떻게 선택합니까?”



제목: 마션
저자: 앤디 위어 (Andy Weir)
출판사: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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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스토너 by 존 윌리엄스 - 열심히 살았는데,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걸까?

32.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by 케이트 디카밀로 - 사랑을 잊어버린 어른을 위한 동화

33. 와일드 by 쉐릴 스트레이드 - 위험해도, 무서워도, 두려워도. 나는 계속 걸었다.

34.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by 정희재 - 목이 타는 한 여름에 미지근한 물

35. 1984 by 조지 오웰 - 소름 끼치도록 현재를 그리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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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pretty much f~~~~~~~~d.
코인에 물린 우리들에게도 어울릴만한...;;ㅎ

그렇군요. -_-;;
그래도 와트니는 누군가 구해주러 왔는데.. 코인에 물린 우리를 구해줄 건 누구일까요?

저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는데... 영화보다 책이 더 개꿀잼 이었어요. 흐흐흐 :E

...... 그놈의 감자. X_X

이왕 두 개를 다 볼 거면 영화를 먼저 보는 게 항상 옳은 선태인 거 같아요.

브리님 글에서 욕은 처음 보는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글 내리다가 깜짝 놀랬네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감공감 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 내가 한 것도 아닌데! ㅋㅋㅋ

오... 이런 대박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전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재미있는것 같아요 ㅎㅎ
마션이란 영화 그냥 보기엔 지루해 보일것 같아 안봤는데
불이님 후기 읽으니 호기심이 쑤욱 생겨서 한번 영화로 먼저
챙겨봐야 할것 같습니다! ㅎㅎㅎ

영화도 재미있었어요. 맷 데이먼이 주인공 역할을 아주 잘했고요.
보면서 긴장되고, 응원도 하고. 약간의 유머도 들어가 있고요. ^^

영화는 재밌게 보고 원작 소설은 아직 못 읽어봤어요. 개인적으로 마크 와트니의 찰진 욕들이 원래 스토리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을 비합리적인 상황에서도 구하려고 하는 이유,
진화론적 거창한 이론을 들먹이지 않고 그냥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구할 수 있을 것 같고 구해야만 하는 것 같아서'가 아닐까요.
그 사람을 그때 구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의미가 퇴색될만큼 당위성이 눈에 보이는 어느 순간 본능처럼 구하는 게 아닐까요?ㅎㅎㅎ

그쵸. 왠지 구해야만 하는 거 같아서.
내 재산과 내 목숨이 우선이긴 하지만, 그를 구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그게 자기를 괴롭힐 거 같아요.

헉!! 프로그래머가 취미삼아 쓴게 마션이었군요!!
취미라지만 글에 재능이 있는 분이겠죠^^

화성에 대한 묘사, 우주선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과학적인 묘사 등이 아주 잘 돼있어요.
그런데 이 작가가 그 후에 다른 소설도 하나 썼는데, 평이 좀 안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공상과학 소설 쪽에 두각을 드러내는 작가인 거 같아요.

전 이 영화를, 작년에 작은 일로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는데 거기서 노트북으로 봤었네요.ㅎㅎ 저의 통증을 조금 완화시켜준 영화였어요.
어느 팟캐스트에서 이 책의 첫 문장의 번역이 끝내준다는 찬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역시 찰집니다.^^

원문도, 번역문도 아주 찰지죠? ㅎㅎㅎ
사실 저런 문장을 첫문장으로 쓴다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할 거 같아요. :)

마션 영화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마지막에 화성을 빠져나올 때 그 쾌감이란 ㅎㅎ 근데 소설 작가가 프로그래머였군요! 얼마나 글을 재밌게 썼으면 영화화 했을까요. 브리님 글을 보고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쵸? 자비 출판계의 레전드... 이 내용을 알고는 저도 열심히 글 써서 출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ㅎㅎㅎ 모두에게 희망을 준 앤디 위어.

저 제 가족이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내가 있어줄 수 없기 때문에 남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위기에 모두가 나서는 사회.
결국 자신을 위해서도 추구해야할 방향이니까요. 소설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참 재미있을 것 같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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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회라면 정말 멋지네요. 내가 남을 돕고, 남이 나를 돕고.
소설이 원작인데 재미있어요.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읽어보실 만해요.

그게 인간성이 아닐까 싶어요. 인류애라고도 불리는.
따뜻한 마음도 들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듭니다.
평소에 그 마음을 느낄수 있기 보다는,
뭔가 커다란 위험이나 위기가 닥쳐와야 발현되는 건 아닌가 하구요. ^^;

그쵸. 평소엔 투닥투닥 거리다가 뭔가 위기가 닥치면 똘똘 뭉쳐서..
이기적인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본능처럼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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