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4 아들의 고백

in #kolast year

어제 둘째 아들이 내게 다가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한참 동안 머뭇머뭇 하더니, 잔뜩 부끄러운 표정으로 지금까지 자기 방에서 아빠 몰래 구몬 학습 태블릿을 이용하여, 마인크래프트 유튜브를 자주 봤다고 했다. 처음에는 조금씩만 보려고 했는데, 자꾸 생각이 나고, 계속 보게 되었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아빠가 방에 다가가면 후다닥 무언가를 감추고, 방에 들어오기 전에는 반드시 노크하라고 주문했던 아들의 뻔하지만(?) 수상쩍은 행동이 기억났다. 이 녀석, 무언가하고 있구나 싶었지만 스스로 말해줬으면 했다. 감시한다고 100% 감시할 수 없고, 오히려 불신만 커지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면 관심갖고 지켜보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옳았다.

아들은 아빠에게 솔직하게 다 얘기해주고, 자신을 잡아달라고 했다. 초등학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꼭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진짜 대단한 거다.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지 판단할 줄 안다는 것이고, 옳은 방향으로 자신을 이끄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대견했다. 어떻게 이런 용기를 냈는지 궁금했다. 아들에게 스스로 말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엄마가 이제 내 마음 속에서도 함께 하잖아. 건강할 때도 눈치 100단 엄마였는데, 지금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얼마나 잘 알겠어. 그래서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불편했어. 아빠한테 다 얘기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

눈물이 울컥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지난 10월 13일 아이들의 훌륭한 엄마이자, 내가 사랑하는 아내는 짧지만 빛나는 인생을 마치고 나와 아이들 곁에서 잠자듯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죽기 전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 종교를 택했다. 그래서 아내는 임종 2주전 세례를 받았고, 나와 아이들은 성당에 예비신자로 등록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앞으로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는지 성경의 말씀대로 설명해줬다. 아이들은 엄마의 임종에는 매우 슬퍼했지만, 영적으로 여전히 함께 함에 안심했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자리잡은 엄마. 그 엄마가 아이에게 지나치게 유튜브를 보는 것을 경계하게 한 것이다. 실제로 아내는 이미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았다. 보이지만 않을 뿐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새로운 형태와 방식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소통한 아들이 대견했고, 다시 함께 하는 아내가 반가웠다.

성경에서 얘기하는 죽음 그리고 부활의 한 단면이 이런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여보, 사랑해.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가족이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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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 생활 몇년 만에 가장 슬픈 소식을 접합니다.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이들이 어린데 아빠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계시네요.

근데 발병했다는 말씀 읽을지 얼마 안된 거 같은데 너무 빨리.....
좋은 아내이자 엄마였던 그 분을 많이 많이 추억하세요. 아이들과도 이야기 나누시고요. 최근에 읽은 책에 의하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낫답니다. 잊으라 하는 것이 좋지는 않다고 해요.
힘내시고요.

dozam님께서 중간중간 안부를 물어봐주시고, 걱정해주신 걸 기억합니다. 많이 추억하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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