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명상수행일지] 2일 차 - 도망가자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본 글은 진안에 위치한 '담마코리아 명상 센터'에서 위빳사나 10일 명상코스를 체험한 후 적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일지입니다. 담마 혹은 위빳사나 명상과는 다른 필자 개인의 의견이 첨부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위빳사나 명상을 앞두신 분께는 이 글을 통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고 드립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분의 피드백과 체험 공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Copyright 2022. @kamoverse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path and walking the path.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모피어스’, Matrix 1



달콤한 꿈을 꾸었다. 꿈의 세계에 계속 머물고 싶을 만큼 생생하고 따뜻하고 편안하며 부드럽고 조화롭고 다정한 꿈.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익숙하고 세심한 애인과 우리가 좋아하는 데이트를 하는 꿈이었다. 어제의 고된 하루를 위로하듯이 무의식은 내게 너무나도 달콤한 꿈을 보내주었다.


다시 명상의 하루가 밝았다. 어제 첫 법문을 기억하며 코를 나가고 들어오는 호흡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만 집중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심이 허망하게 느껴질 만큼 다리가 아팠다. 어제 충격적인 스케줄을 감당한 내 다리는 어제보다 더 참을성 없이 강하게 통증을 선사했다.


‘마음의 문제가 맞나? 익숙해질까? 다리가 너무 아픈데.’


불만은 없었다. 그저 다리가 너무 저리고 고관절이 끊어질 것처럼 압박되어 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어렵다. 호흡으로 돌아가려 할수록 점점 더 다리가 아팠다. 새벽 명상 2시간은 체감 10시간 다리에 고문을 가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건 신체적 영역의 문제 아닌가. 이 스케줄을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유연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는 치마를 입고 아빠 다리를 할 수 없다는 걸 발견했다. 아니, 다른 친구들 대부분은 치마를 입고도 우아하게 아빠 다리를 하고 축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나의 무릎과 허벅지는 허공에 불안하게 떠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의 다리는 바닥과 붙어 있었다. 어떻게 저게 되는 거지?


신체의 유연함이 필요한 모든 일을 피하며 살았다. 스트레칭, 요가, 수영, 필라테스 등등. 그러다 3년 전에는 큰 마음먹고 집 앞에 있는 요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할 수 있을 만큼만 무리하지 않고 동적인 동작을 가르쳐주었던 덕분에 마음 편히 다닐 수 있었다.


척추측만증을 진단받은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피아노를 치다가 어깨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다. 피아노를 칠 때만 어깨가 결리고 신경 쓰이고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릴 때마다 뼈 소리가 뚝뚝 났다. 피아노를 쳐서 어깨가 고장 났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척추측만증이라 말했다. 그리 심각하진 않아서 가방을 한쪽 어깨로만 메지 말고 바른 자세로 생활하라고 말씀하셨다. 피아노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나 6년간 배운 피아노를 그 길로 그만두었다.




학창 시절, 아니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 그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았다. 자세는 항상 구부정했다. 이미 골반과 허리, 목이 뒤틀려 있어 내게 편한 자세는 구부정한 자세였다. 학창 시절에는 학업이 더 중요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 생활했다. 당연히 운동도 안 했다. 다시 문제가 된 건 직장에 다닌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는 거의 매일 막차를 타고 간신히 집에 도착하는 무시무시한 TFT 스케줄을 한 달 넘게 소화하던 참이었다. 할 일이 너무 많고 시간은 없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고 정답도 레퍼런스도 없던 생소한 주제라 머리를 아플 정도로 써야 했다.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이제 좀 살만 하다 싶을 때 몸이 참았던 고통을 호소했다. 목과 어깨가 너무 아파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집 근처 척추 전문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도수치료와 운동치료를 병행했다. 통증은 나아졌지만 월급보다 많은 금액을 병원비로 충당했다. 그때 처음으로 몸에게 미안했고 통렬히 반성하며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몸을 회복하는 데 사용했다. 한 달 반쯤 지나자 내적 친분이 쌓인 도수 치료사 선생님이 비밀을 속삭이듯 내게 말해주었다.


“OO 씨 병은 직장 때문이에요. 병원 치료보다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게 더 좋고요.”


그의 말이 맞았다.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처럼 회사를 그만두니 괜찮아졌다.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여행해도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매일 걸을수록 몸을 쓸수록 긴장이 사라질수록 마음이 자유로워질수록 몸은 더 건강했다. 그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며 몸에 기울였던 관심도 다시 사그라들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멈췄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작년 겨울부터 꾸준히 필라테스를 다니고 있다. 내 한쪽 골반이 돌아가 있어 아빠 다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통에 근육이 꽤 붙었고 굳어버린 고관절도 더디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이다. 여전히 반가부좌는커녕 아빠 다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바른 자세로 오래 앉아있지 못했다.


멍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스트레칭을 힘겹게 끝내고 벤치에 앉아 쉬었다. 어제의 법문을 다시 생각했다. 그래, 조금만 더 해보자. 한 번만 더 해보자.




두려움에 떨며 아침 명상을 시작했다. 호흡을 관찰하는 것에서 나아가 호흡할 때 윗입술부터 코끝까지 삼각형 부위의 감각을 지켜보라는 새로운 가이드를 받았다. 어떤 감각이든 기민하게 지켜보라고 했다. 감각을 느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숨이 오고 나가는 것보다 알아채기 조금 더 쉽고 수월했다. 또렷하게 집중하자 인중, 특히 윗입술 위 인중에서 미세한 진동과 떨림이 느껴졌다. 전기 신호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리는 새벽보다 더 아팠다. 감각을 느끼면서도 다리의 고통이 압도적으로 나를 짓눌렀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어 보아도 소용없었다. 허리도 어깨도 목도 아팠다. 당장 명상 홀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른 잡생각을 하면서 견뎌냈다. 다행히 시간은 흘렀다. 내가 체감하는 시간보다 너무 느리긴 했지만 결국에 시간은 흘렀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손빨래를 하고는 침착하게 식사를 했다. 방에서 스트레칭을 하고는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 차분하게 생각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통증은 사라지긴커녕 더 강렬해졌다.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충격에 벗어나자 내가 처한 현실과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명상을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위빳사나 명상을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위빳사나 명상을 알고 싶었다. 지식이 아닌 경험의 차원으로. 이 명상은 종파도 집단도 상관없이 보편적이며 아주 순수하다. 이 명상법은 누구에게나 좋다. 위빳사나를 알고 싶은 내 마음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빳사나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매일 10시간 이상 앉아서 곧은 자세로 명상을 해야만 한다. 다른 건 다 괜찮다. 말을 못 하는 것도 핸드폰을 쓰지 못하는 것도 채식 식단도 소식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것도 공동 숙소에서 지내는 것도 힘들지 않다. 그러나 앉아 있는 건 어렵다. 내게 무리다.


적어도 아빠 다리를 할 수 있는 시점이 되어서 이 명상법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명상으로 마음의 정화를 하고 평온한데 정작 다리에 문제가 생겨 고생을 하게 된다면 나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필라테스 선생님이 장시간 앉아 있는 건 몸에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나의 삐뚤어진 몸으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


위빳사나 명상은 좋다. 그 명상을 배우고자 했던 내 결정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직접 해보니 이 수행법은 내게 맞지 않다. 명상 내내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 감각을 느끼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만일 고통이 없었다면 감각에 더 집중해서 명상을 밀도 있게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불필요하게 신체적 고통을 꼭 가해야만 하는가?


나가자. 도망가자. 인정하자. 나의 신체적인 한계를. 나는 여기서 10시간 이상 앉아 버틸 수 있는 몸을 지니고 있지 않다. 난 한낱 약해 빠진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아직 위빳사나 명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인정하자. 아무것도 모를 때 지식에 매료되어 스스로 명상을 좋아한다고 착각했고, 위빳사나 명상을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언젠가 사람인 걸 초월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나는 그럴 수 없구나. 그건 무지한 욕심에 불과했어. 난 고작 이런 사람이야. 앉아 있을 수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평범한 나의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이런 생각에 이르렀는데도 자기 비하나 죄책감 같은 건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체적 고통이 극에 달았고 곧 다리가 잘못되어 다시 못 걷게 되거나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을까 두려웠다.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내가 나약하고 착각을 했고 무지했다는 걸 인정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망갈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연락하면 이 먼 곳까지 차를 타고 데리러 와줄까 그랬으면 좋겠다(거대한 보라색 캐리어를 생각하자 숨이 막혔다)




그때, 마지막 보류의 마음이 외쳤다. 그래도 도망가는 것보다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아까 옆에 남자 수련생은 의자에 앉아있던데. 의자라도 한 번 앉아보지 그래? 그럼 다리 고통이 덜하겠지. 이왕 왔는데 도망가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그래, 네 말이 맞다. 일단 할 수 있는 거 해본 다음에 도망가자. 그렇지만 시도해봤는데도 계속 다리가 이 상태라면 우린 도망갈 거야.




그날 점심에는 코로나 자가검사를 실시했다. 처음으로 코로나가 양성이 뜨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백신 부스터샷을 접종했고 오기 2일 전 신속항원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방역에 철저한 이곳에서 양성 일리가 없었다.




오후 단체 명상이 시작되기 전에 기회를 보다가 혼자 남았을 때 슬쩍 매니저 선생님께 여쭈어봤다.

“선생님, 혹시… 의자 사용이 가능할까요?”

“그거는 저 말고 법사님께 허락을 받아야 해요. 내일 면담 신청하세요.”

“네…”

아… 이럴 수가!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걸. 방법이 없었다. 꼼짝없이 앉아 단체 명상을 시작해야 한다. 자포자기 체념의 상태로 명상을 시작했다.




빛에 민감하다. 빛이 있으면 눈을 감아도 형태와 빛의 파장, 그림자 같은 게 보인다. 몇 번은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 내가 눈을 뜨고 있었나 헷갈려서 눈을 다시 뜨며 확인한 적도 있다. 상상은 아니었다. 실제 물체와 빛이 있는 자리에 그 형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뜨고 봤을 때와는 또 다르다.


빛이 조금이라도 드는 곳에서 명상에 집중하면 그 형상이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움직인다. 어둡고 선명하나 경계선이 잉크처럼 번진 남색의 동심원이 도넛처럼 줄어들어 점으로 사라지고 다른 도넛이 무한히 생긴다. 그 광경은 흥미롭고 신비해서 언제나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 아메바 잉크 형상을 구경하고 있으니 고통을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어두운 남색은 좋아하는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언제까지고 그 광경을 보고 싶어서 놓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자세를 바꾸지 않았는데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게 되잖아…?’


다리에 고통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똑같이 아팠다. 그런데 무언가 집중하니 고통이 견딜 만했다. 한 번의 우연인가 싶어 다음 명상 시간에도 엄청 집중해서 그 동심원을 바라보며 명상을 했다. 무려 3시간의 명상 시간 처음으로 신체적 고통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명상을 했다. 이대로라면 가능하다.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다.


딱 한 타임만 더 해볼 걸.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하고 또 성격 급하게 미리 의자를 쓰기로 결정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의자 사용에 면담과 허락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만일 자유롭게 의자를 사용했다면 해보지도 않고 바로 의자에 앉았을 것이다. 작은 희망이 부풀었다. 도망가지 않고 명상을 끝까지 해볼 수 있겠다고.




그렇지만 그날 저녁 고엔카 선생님의 법문을 들으며 나의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아니, 선생님 지금 거기서 실시간으로 저 보고 계신 거 아니죠? 어떻게 이렇게까지 맞춤 법문을 해주십니까… 너무 하십니다. 암시를 하거나 상상을 하거나 만트라를 외우거나 챈팅을 하면 집중이 훨씬 잘 되겠지만 그것은 위빳사나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고 효용이 있겠지만, 위빳사나는 있는 그대로의 지금 사실을 과학자처럼 관찰해야 한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집중하면 표면적 차원에서 평온해지긴 하겠지만 오래 묵혀 둔 고통과 상처들은 떠오르지 않고 그대로 잔류한다. 마음 심층 곳에 존재하는 묵은 불순물을 건져 내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통해 덧없이 생기고 사라지는 자연법칙을 발견해야 한다.


나는 고통이 고통스러워서 우회적 방법으로 고통을 잠시 면피했다. 지금 내 몸이 느끼는 감각에게 다른 때처럼 넌 좀 빠져 있어라. 느끼고 싶지 않다. 억압했을 뿐이었다. 고통은 쓸데없는 고문이나 불편이 아니라 이 위빳사나 명상의 핵심 중 하나이자 정수였다. 내가 평소 두려워하고 혐오하고 느끼고 싶지 않아 이제까지 피해온 신체적 자극, 그것이 다름 아닌 나의 해묵고 오래된 그리고 가장 즉각적인 상카라였다. 상카라는 정신적 차원의 일이라고 착각했다. 이제까지 몸의 일과 신체를 저차원적 영역의 사소하고 귀찮은 일로 분류하고 얼마나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한 채 살아왔던가.



위빳사나를 그때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위빳사나를 한다면 고통을 대면해야 한다. 이제까지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명상은 조건부 명상이었다. 그저 감각적 쾌락, 지적 쾌락, 통찰의 쾌락, 생각의 쾌락의 감각을 사랑했던 거뿐이었다.

사랑은 패키지라고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장점(유쾌한 감각)이 있으면 단점(불쾌한 감각)이 있다고 설파하던 게 누구였어. 사랑한다면 패키지를 다 껴안는 행위라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그것이 진정 사랑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누구야?

명상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고통만 쏙쏙 피해서 네게 쾌락적인 ‘아하’의 과정을 주고 너를 안정시키는 안정제 같은 감각만 추구했던 거잖아. 넌 명상을 사랑하던 게 아니야. 그런 건 사랑이 아니야.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 쓰는 걸 사랑한다면서 사실 쓰고 싶을 때, 너를 표현하고 싶을 때, 영감이 있을 때 무언가 느낌에 충만했을 때, 놀이하듯 후루룩 쓰고 즐거워할 뿐이잖아. 그런 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한다면 거기에 붙는 의무와 책임에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행해야만 해. 그동안 기획을 하거나 퇴고를 하는 건 너무 번거롭고 귀찮고 힘이 들어 한쪽으로 치워 놓았다. 그게 내게 불쾌한 감각을 일으키기 때문이었겠지. 내가 가장 경계하고 위험하다 생각했던 반쪽자리 조건부 사랑, 그걸 내가 하고 있었구나.



이제까지 신체로 느껴지는 모든 불쾌한 감각을 혐오하고 도피하는 데 대부분의 인생을 다 보내고 그것에 따라 결정을 하면서도 그것도 모른 채로 착각하며 살아왔구나.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모른 채로 눈을 감고 무의식과 분리된 채 자신을 속이면서. 내가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라 믿었구나.



부끄러웠다. 그러나 부끄러움 뒤로 거대하고 자비로운 진리가 내 손을 잡아줘서 기뻤다. 내가 모른다는 걸 알게 되어서 기뻤다. 도망치고 싶던 날 것의 두려움조차 고마웠다. 아직 도망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날부터 두려움과 생존의 스트레칭은 기쁨과 조력의 스트레칭이 되었다.




p.s. 글이 길어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리려다가 한 번에 올립니다. 혹시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들면 말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2022년 5월 13일 by Stella

Posted through the AVLE Dapp (https://avle.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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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참 생생해서 공부에 도움이 되네요^^

도움이 된다니 기뻐요 : ) !

 2 years ago 

읽다가 너무 길어서 일단 리스팀해놓고 저녁에 몰래 정독하려구요^^

하하 감사해요 레이븐님 다음부터는 두 파트로 나눠 올려야겠어요.

 2 years ago (edited)

다리가 너무 아프다

왜 저는 저 글만 눈에 들어오죠?
기승전 다리가 아프다 인듯 ㅋㅋㅋㅋ
고통도 하나의 정수이긴 하나 저는 무서워서 도전 못하겠어요 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맞아요 근데 그게 다 제 업보였어요 아마 파치님은 저보단 나을…(아 아닙니다)

 2 years ago 

저는 업보가 많이 쌓여서 더 무서워요 ㅋㅋㅋ

저도 당시 다리가 부러질듯 아파도 ㅋㅋㅋ 명상을 계속 했었었죠.. 그 고통을 외면하면 성장할 수 없을것 같아서요.
낙장불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었어요.

카모님은 너무 열심히 하셨더랬죠 🥲
낙장불입… 이미 돌이킬 수 없다면 끝까지
그 마음 저는 너무 잘 알지만 그래도 전 계속 더 편한 자세를 연구했었쥬

스텔라님의 글을 읽으며 다음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No pain, no gain. (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서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않으며, 심신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되는 단계를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제 인생 모토가 굳이 고통을 느낄 필요가 있나에 가까운데 이건 진심…! 그 글귀에 너무 잘 들어맞는 경험이었어요. 과연 평화는 오게 될지요 ☺️

저도 세상에 조건부 사랑을 하고 있었네요.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제가 전하려는 마음을 오지님이 탁 잡아주셔서 기뻐요 : ) 사랑하며 살아요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자극이 되는군요

읽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고라님 : )

전 글만 읽었을 뿐인데..다리가 아픈것 같습니다. ㅎㅎ 일부러 순서대로 읽으려고 지난글부터 읽고 있어요. 주말 잘 보내셔요~^^

 2 years ago 

저도 생활명상만 하는 수준인데, 그 고통과의 싸움이 절실히 느꺼지네요. 두려움때문에 시작도 못하는 것보다 일단 하고 경험하고 또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위빠사나 명상기 너무 재미있네요.

정작 이 글을 적으면서 요즘 저도 아주 짧게 시간이 될 때면 명상을 하고 있어요. ㅠ 후후. 경험하고 도전하는 자세 중요하죠. 그렇게 살아내는 거 말이죠.
이테인님이 즐겁게 읽어주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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