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강서고 김명철과 위닝일레븐을 하여 7:1로 패하였는가
한 국가의 패전사든, 동네 고등학생이 게임에서 진 이유든, 패배에는 공통적인 이유라는 것이 있다. 성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지만 실패의 방식은 의외로 일관되다.
꽤 재미있게 읽은 책 중 <일본 제국은 왜 멸망하였는가>라는 책이 있다. 왜 구조적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패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분석인데, 지금부터 설명할 근 20년 전 왜 내가 강서고 김명철에게 7:1이라는 굴욕적인 스코어로 위닝일레븐을 대패했는가도 이 책에 나오는 일본군 패전 이유와 비슷하다.
바야흐로 때는 월드컵 열기가 남아있던 2002년이었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막 위닝일레븐이라는 게임이 대세가 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PC방이라는 것은 원래 있었지만 여기저기 플스방이라는 것이 생기고 있었고 너도 나도 위닝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내가 위닝을 꽤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나중에 (위닝하다) 절교하게 되는 강서고 김명철이라는 친구와 누가 더 잘하는지 설전이 붙게 되었고 결국 날을 잡고 둘이 대결을 하기로 하였다. 대결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공지되어 당일 나와 김명철의 친구들 중 몇은 구경을 오기도 하였다. 친구들 앞에서 누가 더 잘 하는지 붙는, 서로의 명예가 걸린 오토코노 타타카이(일본어 男の 戦い : 남자의 승부라는 뜻)였던 것이다.
나는 내가 이길 것으로 예측하였고 진다고 해도 백중세일 것으로 예측하였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1. 공인된 강자들과 대결에서 이미 승리
당시 위닝 붐이 일던 시절로, 학급은 물론 전교 차원에서 위닝 대회가 열리곤 했다. 당시 프로게이머가 인기가 많을 때라 당시 남고생들은 동네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주제에 본인이 거액으로 구매한 마우스나 키보드를 들고 다니고 무슨 닉네임을 붙이는 경우도 흔했는데 위닝도 점점 그런 분위기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드리블 1인자>, <4천왕> 등등 닉네임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우연치 않게 소위 좀 논다는 애들 수십명이 관전하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이런 네임드들과 몇 판을 해보았는데 생각보다 큰 실력 차이가 없었다.
그게 내가 꽤 잘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2. 어느 정도 재능
지금 언급할 이 친구한테는 영원히 동네북으로 기억되겠다만 사실 그 후 수십년 간 내가 위닝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보면 나는 이 게임에 재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같이 시작했던 친구들과 실력차는 금방 나기 시작했고 고3때는 이미 반에서 제일 잘 했다.
다만 이 녀석이 진짜 위닝 천재였을 뿐이다. 후술하겠지만 친구 잘못 만난 죄로 그 이후에도 계속 끌려다니며 게임마다 복날 개맞듯 맞으며 내가 머리가 나쁘다고 자학했을 뿐이다. 실은 처음 판단이 맞았었다.
3. 축구 게임의 특성
축구는 실력 차이가 나도 7:1이라는 스코어가 일반적으로 날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또한 조작법도 얼핏 보면 패스, 슛, 태클, 크로스 등과 같은 단순한 기술로 구성되어 있고 격투 게임처럼 콤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게임 시간도 고작 10분이다.
나도 결전 당일, 이 친구가 나보다 잘할 가능성에 대해 염두해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축구도 아니고 매너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정말 실력차가 심하게 나면 퇴장을 감수하고서라도 계속 백태클로 막으며 10분을 버틸 생각이었다. 혹 의외로 실력 차가 커도 2, 3판 정도 적은 점수차로 지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위닝은 게임이지만 실제 축구랑 상당히 흡사한 것도 맞다. 공은 둥글다는 그 특성도 있어서 오판삼승제로는 모르겠지만 단 판으로는 더 잘하는 쪽이 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다만 질 수는 있어도 핸드볼 스코어로 지면 안 된다. 만약 큰 점수차가 날 것 같으면 근성으로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 당시 내 위닝 플레이 스타일은 투박하지만 파이팅 넘친다는 평이 있었다. 나보다 훨씬 오래 전 이 게임을 시작한, 유기적이고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를 하던 다른 친구는 나랑 대결하면 늘 버거워하곤 했는데, 내 태클이 무섭다는 말을 하곤 했다. 마치 축구 한일전처럼, 테크닉이 부족해도 압박으로 몰아붙여 게임은 내가 이기는 경우가 꽤 많았다.
게임에서 이런 표현은 좀 이상하지만, 실력 차가 나면 정신력으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4. 허세와 자존심
강서고 김명철이라는 이 자식은, 다시 적겠지만 공부도 잘 하고 사람 약 올리는 것도 그만큼 잘하는 아주 약은 친구였다. 얼굴도 희멀금하고 캐릭터나 뭐나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 상반된 점이 많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나는 이 녀석을 좋아하면서도 질투하고 있었다. 묘한 애증이었을려나. 여하간 여러모로 짜증이 나는 녀석이었다.
그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너처럼 진지하고도 진지한 캐릭터는 위닝일레븐 같이, 두 사람의 승패가 가려지는 게임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도 안 된다고 말했는데 부아가 치밀었다(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꽤 맞는 말이었다). 고작 게임이었지만, 게임 시작 전부터 너는 자기를 이길 그릇이 못 된다는 그 건방진 소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면 안 되는’ 경기였다.
그런데 실은 지면 안 되는 상황 같은 건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게 편하다. 만약 피치 못해 정말 지면 안 되는 게임이 생긴다면 가급적 안 하는 게 상책이다. 그 단순한 룰을 몰라서 일어나고 죽은 사람이 수백만이다.
뭐 스케일은 작지만 여하간 위의 4가지 이유로 나는 호기롭게 결전장에 들어가게 되었고 곧 아래 4가지 사유로 내 계산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1. 정보 부재 1 - 요란하게 유명한 네임드들보다 사실 강서고 김명철이 더 강자였다
남고의 분위기는 소위 말하는 노는 녀석들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수학여행 때 뒷좌석에 앉은 녀석들의 목소리가 전체를 대변한다고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당시 우리가 가던 플스방에는 다른 좌석과는 구분되는 대형 화면이 설치된, 누구에게나 노출되는 메인 좌석이 있었고 혈기왕성한 노는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사천왕>이니 뭐니 말하며 떠들었지만 그 친구들은 실은 그렇게 잘 하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험상궃은 떡대 앞에서 너 못한다라고 말할 용기는 없으니, 분위기 상 잘 한다고 인식되었을 뿐이다.
당시는 위닝일레븐 초창기였고 지금처럼 고인물도 아니었을 뿐더러 플레이스테이션도 대중적인 게임기가 아니었다. 기껏 소수의 정말 게임 좋아하는 친구들이나 가지고 있던 보물 아이템이었고, 그걸 가지고 있는 순간 바로 고수로 취급 받았다. 온라인 대전이 활성화되거나 객관적으로 실력을 담보할 수 있는 rating이 있던 것도 아니다. 끽해봐야 친구들 몇이랑 돌려서 하는 수준으로, 당시 '내가 잘한다'라는 말은 다했지만 마치 교류 없이 산에 덩그라니 놓인 도장마냥 진짜 실력은 그 말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사회 생활이든 국가의 관계 든 간에, 자기 실력이나 상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특히 어느 분야나 판 초입에 이런 혼선이 많이 생기는데, 이때는 사회적 명성 따위로 강자로 치부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초창기 격투기 대회에서 만약 최배달이나 이소룡이 나왔다면 사람들은 그의 우승을 점쳤을 것이고, 중국 어느 산 속에서 무당파 직계 제자가 나왔다면 많은 기대를 안고 보았겠지만 실제 이들이 대회에 나왔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거두었을 가능성은 적다. 하다못해 극진 가라데 최강자라고 불린 프란시스코 필리오도 극진 가라데에 안면 타격룰이 없던 탓에 종합격투기 데뷔 전에서 얼굴을 가격당하고 대자로 뻗어버렸는데...... 맞기 전에는 누구나 계획이 있고 자기의 명성으로 적당히 겁을 줘서 협상으로 끝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일단 링에 서면 누가 패는 사람이 되고 맞는 사람이 되는지는 명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2. 재능 차이
우리는 음악이나 스포츠가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고 마치 공부는 상대적으로 노력이 좌우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연구 결과는 그와 반대다. 공부야 말로 유전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리니지처럼 시간 대비 성과가 나오는 게임이 아니라 콘트롤이나 전략으로 승부하는 게임들은, 아예 게임 중독이라 게임만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실은 공부 잘 하는 애가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
이 친구는 공부를 정말 잘 했다. 노력형도 아니었다. 내가 공부 잘 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을 때 미친듯이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다가 심경이 초조하게 변하면 그때 정신을 확 차리고 슈퍼 집중하여 몇 시간 안에 공부를 끝내는 거라고 말했는데 허세가 아니라 이 새끼는 진짜로 그렇게 공부하는 놈이었다. 나는 수능 전날 긴장감을 풀려고 플스방에서 한 시간 게임을 하고 집에 갔는데 이 새끼는 내가 나갈 때도 게임하고 있었고 후문에 따르면 그날 밤 1시까지 위닝일레븐을 하고 집에 갔다고 한다. 그리고 탑티어 의대에 입학했다.
여러모로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성적은 안 나오는 나와는 대조적인 녀석이었다.
어차피 수능 출제하는 인간들이라고 해봤자 이 녀석보다 머리가 나쁘니, 그냥 문제를 읽으면 어디가 함정인지 바로바로 보였을 것이다. 심리전이 중요한 위닝일레븐에서, 이 녀석은 어디로 드리블 할지, 패스 할지 대부분 예측을 했고 가끔 패스를 해야 하지만 변칙적으로 슛을 하는 경우가 있곤 했는데 이 녀석은 내가 그런 변칙적 운용을 할 것까지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 역시도 당시 위닝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터라 최강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수’라고 불리는 수백명의 사람 중 내가 유일하게 위닝을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녀석으로 처음부터 재능이나 실력이 남달랐다. 후일 한 다리 건너 들은 소식에 의하면 위닝일레븐으로 <온게임넷>에 나갔다고 그러더라.
3. 정보 부재 2 - 위닝일레븐이라는 게임에 대한 몰이해
위닝일레븐은 축구와 비슷한 것이지 동일한 것은 아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90분 간 축구 경기와 유사한 박진감을 제공하기 위해 몇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그래도 3:0 정도로만 졌어도 비웃음의 정도가 약했을 텐데. 전반에는 그래도 1:1이었는데 후반에 어 하다가 6골이나 먹었다. 마치 9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게 대패한 대한민국 대표팀과 같은 심정이었다.
전반전, 내가 태클과 압박을 거칠게 한다는 것을 파악한 강서고 김명철은 후반전에 대놓고 파울을 노렸고 여기서 실제 축구와 위닝일레븐의 큰 차이가 하나 드러났다.
그건 위닝일레븐에서 프리킥으로 골을 넣는 것은 약간의 요령만 알면 패널티킥으로 골을 넣는 것만큼 쉽다는 것이다. 진짜 축구처럼 가뭄에 콩나듯 들어가면 긴장감이 도리어 떨어질 테니, 일단 차는 스킬을 마스터하면 득점이 용이하도록 긴장감을 주는 것이 10분의 게임 시간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듯 하다.
처음에 공이 궤적을 그리며 우아하게 내 골대로 빨려들어가는 것도 신기했는데, 무슨 역사 상 유일하게 프리킥 해트트릭을 기록한 미하일로비치가 차는 것도 아닌데 잠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프리킥으로 3골이나 먹고 말았다. 막는 방법을 누가 가르쳐 주질 않아 그냥 차는 대로 다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골키퍼와의 일대일을 막으려고 용감하게 백태클을 했는데 백태클한 내 선수는 빨간 카드를 받고 퇴장 당한 그 자리에 찬 프리킥은 또 들어가고 말았다. 속수무책이었다.
팔랑크스 대형이나, 전선의 참호, 전차와 같은 새로운 방식을 처음 조우한 군인들의 심경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이 있었을까.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용기있게 덤벼도 당하기만 할 뿐이었고 나도 그랬다.
그렇게 프리킥으로 3골을 먹고 선수도 한 명 부족해져 태클이고 뭐고 당황해서 못 하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강서고 김명철의 발빠른 공격수들이 그라운드를 휘젓기 시작했다. 또 프리킥을 줄까봐 아무 것도 못하고 주춤주춤한 수비수들을 유린하며 추가 골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10분짜리 게임에서 전반전은 1:1이었는데 후반에 6골을 먹었다는 것은 1분마다 한 골을 먹었다는 것이다. 실로 개박살이었다. 그걸 관람하며 환호성을 질렀던 친구 관중 개새끼들을 덤.
두번째 판부터 이미 프리킥 기회를 줄 것이 두려워 태클과 압박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당시 위닝은 지금 PES보다 십자키로 개인기가 꽤 잘 먹히던 게임으로 ‘사기 드리블’이라는 말까지 있었는데 내 멘탈이 위축된 것을 확인하자 강서고 김명철은 거리낌 없이 마라도나마냥 중앙부터 수비수들을 하나하나 재끼면서 골을 넣기 시작했다. 첫판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 두번째 판 스코어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5:0쯤이었을 것이다.
4. 허세와 자존심
허세나 자존심을 안고 게임장에 들어가는 것은 여러 모로 좋은 것이 아니다.
살면서 부득이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하는 일이 있다. 저 사람이 져야만 내가 이기는 부류의 싸움, 좀 거창하게 말하면 작은 단위의 진검 승부인 것이다.
그런 것에 임하는 가장 좋은 마인드는, 져도 상관 없지만 나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설령 패배의 결과가 죽음이나 사회적 매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지거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상관 없다는 그 생각 자체가 행동을 경쾌하게 만들고, 일단 경쾌하면 시야에 적의 움직임이 잘 들어온다. 욕망, 분노, 지킬 것과 같은 복잡다단한 감정을 안고 들어가면 승부 자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이 악물고 뛰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끈질기고 집요하게 파야 하는 것이지, 상대의 수에 얽혀서 휘말리라는 것이 아니다. 담백해야 이긴다.
원래 애증과 질투가 있던 친구였고 주변 친구들이 게임을 관람하고 있었는데 담백하게 플레이를 했을리가 없다. 돌이켜보면 위닝일레븐도, 수능도, 처음 여자와 소개팅을 했을 때도, 전투적으로 진지하게 임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기억은 없다. 결과란 은근하면서도 끈기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천우신조의 기회 따위 운운하며 한 번에 비장하게 올인하는 사람은 보통 지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게, 위닝이라는 게임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와 강서고 김명철 주변 무리들은, 둘의 평소 캐릭터나 말만으로 모두 내 대패를 예측했다고 한다. 내 베스트 프렌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자기는 몰라도 옆에서 보면 의외로 잘 보인다. 거기에 일반해가 있다.
결어
얼마 전 위닝일레븐을 하다가 당시 15년 전 이 친구가 이 게임에 대해 분석했던 말 하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참으로 긴 격차이지 않은가? 그런 이해력 차이라니. 생각해보면 그때 7:1로 졌던 그 사건에서 내가 질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삶의 여러 사건에서 반복해서 일어나곤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극복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라고 쳐도, 위기를 잘 흘리는 것도 지혜이니 지금도 종종 그때 패배를 복기하곤 한다. 물론 지금도 분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농담이 아니라 이 친구와 위닝을 하다가 연패를 해서 절교했다. 아마 게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부 같은 것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늘 전교 1등을 하던 그 모습, 수능 전날 플스방에서 자정까지 게임을 하고도 탑티어 의대에 들어간 이 친구의 존재가 아마 내 어딘가를 찔렀을지도 모른다.
절교를 해버린 탓에 후일 다시 위닝을 붙어보지 못해서 아쉽다. 나는 위닝이라는 게임을 꽤 좋아했는데, 그것은 내가 대단한 재능은 없었다고 해도 대학교 과탑이나 군대 소대탑, 로스쿨 기수탑 정도 할 실력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부터 나보다 위닝을 잘 하는 사람은 일부러 구하지 않는 이상은 꽤 만나기 어려웠다. 옛날에는 8:0이나 9:0으로 져본 적도 있는 무슨 벽처럼 느껴지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 게임을 하면 내가 훨씬 더 잘 하는 것으로 뒤바뀌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 그렇게 뒤집으면 대부분 그 이후에도 내가 쭉 이겼다.
나는 의외로 지금 직업에서 선방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은 그런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둔재가 나름 동네 고수 정도는 할 수 있던 위닝일레븐을 떠올리며 용기를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15년 전에 했던 말을 지금 이해할 정도로 그 이해도가 차이가 난다면 또 어차피 차이가 나는 사람과 승부를 하며 사는 것이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뭐 자기 바운더리에서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인데.
그래도 절교한 그 친구와 다시 위닝일레븐을 해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십중팔구 지겠지만 그래도 해볼 수 있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여전히 느껴지는 벽에 타고난 재능의 절대적인 힘을 느끼던, 의외로 작아진 격차에 세월과 인간의 덧없음을 느끼든, 어느 쪽이든 느끼는 점이 있을텐데.
패배도 인생도 배우는 것도 원래 다 그런 것이다.
전에 풋살 끝나고 사당역에서 플스방 갔을때 들었던 이야기의 자세한 버전이군요.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아 이런 이야기도 했었군요 ㅎㅎ 언제 위닝 하시죠 ^^; 골프 이후도 좋고요 ㅋㅋ
ㅋㅋㅋ 그때 보셨다시피 전 위닝은 허접이라... 골프도 요새 채 한번 못잡았네요.
안되면 고기라도 한번 구우시죠.
김명철 같은 공부도 잘 하고 약 올리는 것도 잘하는 그런 친구가 저도 있었죠, 지금은 절교했지만서도...
맞기 전에는 누구나 계획이 있다는 말이 참 와닿네요. 패배의 원인은 의외로 비슷할 것입니다.
신사의 나라라고 부르는 영국의 군대가 꼿꼿하게 대열맞춰서 전진하다가 전멸한 것은 유명하죠
축차투입이 최악의 전술이지만 보통사람은 보통 그렇게 하죠 ㅠㅠ 저처럼요
담백해야 이긴다. 골프도 힘빼라는 말처럼... 아니 사실 담백할수 있고, 여유도 가질수 있을만큼 되니까 이기는거겠죠.
오늘의 인생강연 감사하게 보았습니다. 제 블로그로 리스팀 해갑니다^^
사실 생각 수정 없이 종전 방식대로 결과를 원하는 게 인간의 특성이니... 축차투입이 되는 경우가 많죠 저도 그랬고 ㅎㅎㅎ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