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 작품 수필 - 괜찮다.

in zzan4 years ago (edited)

엄마는 이 순간에도 해 드는 창가에 앉아 땅콩알만한 마늘을 까고 있을 것이다. 잠시도 아니고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린 채 같은 일을 하고 있자니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눈도 침침하다고 하면서도 앉기만 하면 마늘을 깠다.

아침 먹고 식구들 나가면 설거지를 하고 나면 세탁기가 삑삑거리며 엄마를 부른다. 배란다에 나가 건조대에 빨래를 넣고 나면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게 잠시 바람을 쐬고 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마늘을 가지고 앉는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어떤 때는 점심도 거르고 마늘을 까고 있었다. 김장을 하려면 부지런히 손을 놀려야 했다. 벌써 오늘이 목요일이니 금요일엔 달랑무도 뽑아서 다듬고 배추를 손질해서 절여야 다음날 김장을 하게 된다.

딸은 질색을 했다. 무엇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걱정을 하다못해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쌀 한 톨도 하찮게 버리는 일이 없었다. 하물며 멀쩡한 마늘을 작다고 버리면 벌 받는다고 며칠을 두고 까고 있었다. 실하고 좋은 마늘은 씨로 남기고 팔기도 하고 아들 딸네 주면서 정작 당신은 찌꺼기 마늘을 일삼아 까고 있었다.

배추를 다듬을 때부터 통이 잘 앉은 좋은 배추와 떡잎만 있는 냉이배추를 처음부터 구분해서 손질하고 절일 때도 그렇게 했다. 좋은 배추로 담근 김치는 자식들 통으로 들어가고 당신은 속이 차지 않아 포기를 쌀 것도 없는 헐렁한 배추가 더 맛있다고 하시며 그것만 담으셨다. 식구들 오면 같이 먹으려고 한 통만 좋은 배추로 담근 김치를 골라 담곤 했다.

딸은 절대로 엄마처럼 손해보며 살고싶지 않았다. 그래봐야 시집식구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남편인 아버지는 엄마에게 다정한 눈길 한 번도 없었고 남들처럼 외식 한 번도 없는 몰인정한 남자였다. 자식들이라고 나을 것도 없었다. 아들은 무슨 날에나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의무를 다 했고 공주로 자랐다는 며느리는 시집에서도 공주였다. 딸은 수도 없이 마음을 다졌다. 이번생에서 성공하는 일은 엄마와 반대로 사는 것이었다.

금요일 아침에 엄마는 신신당부를 했다. 끝나는 대로 바로 와서 김장 준비를 도와달라고 하는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며 쏘아붙였다. 언니들이랑 새언니는 이번에도 느즈막히 나타날텐데 왜 나만 며칠전부터 들볶느냐며 늦는다고 짜증을 부리며 대문을 쿵 소리가 나도록 닫고 나왔다.

하루 종일 마음이 찜찜했다. 고생하는 엄마에게 괜히 신경질을 부렸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되었다. 언니들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들은 오히려 죽는 소리를 치며 못 온다는 얘기였다. 워낙 바쁘고 아이가 마침 시험이라 신경이 쓰여서 어디 움직이기가 어렵다고한다. 올케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올케는 교양이 넘치는 목소리로 약속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 고생하시는 거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허리가 아프다는 엄마를 강제로 방으로 끌고 들어가 등이며 허리에 찜질을 하고 파스로 도배를 한 다음 배추는 내일 절이자고 하고 불을 꺼버렸다. 하는 수 없이 그러자고 한 엄마는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코를 곯았다.

다음 날 새벽부터 엄마는 배추를 절이고 파를 다듬고 마늘과 생각을 찧었다. 젓국도 닳여 받치고 찹쌀 죽도 멀겋게 쑤었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일하는 기계 같았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는 밤에도 간간이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기도 했다. 들통을 가지러 간 창고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였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뭐라고 하는 얘깃소리가 들려 지나가는 아주머니들과 주고받는 말소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들통을 찾았다. 그런데 또 엄마의 긴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못 찾을 것 같아서 어디에 두었는지 제대로 물어보려고 가려던 참이었다.

뒤꼍으로 갔을 때는 마주친 장면에 소연은 그대로 몸이 굳었다. 화덕이 넘이지면서 쏟아진 찹쌀죽이 엄마의 팔이며 어깨로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다라에 받아놓은 찬물을 퍼서 엄마에게 끼얹었다. 그리고 다시 호스로 수돗물을 계속 흘렸다. 엄마는 비명소리는 고사하고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손을 꼭 쥐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119에 신고를 하고 어느 정도 식은 옷을 하나씩 벗겼다. 마지막 남은 옷을 벗겨내려다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았다.

도착한 119 대원이 능숙하게 엄마의 옷을 잘라내고 상처를 보면서도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구급차로 병원으로 가는 내내 눈을 감고 엄마 괜찮다고 하면서도 말아쥔 주먹으로 간간이 신음 소리를 뱉어냈다.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하고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다. 언니들도 오빠도 전화 연결이 안 되었다. 카톡을 남겨도 답을 보내는 사람이 없었다.

오후가 되어서 옆집 아줌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엄마는 어떠시냐 집 걱정 말고 엄마 잘 보살피라고 하는 말에 저절로 설움이 복받쳐 인사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2도 화상에 심한 곳은 3도 화상이라고 했다. 회사에 전화를 하고 다음 주에 며칠 휴가를 쓰겠다고 하자 무슨 일인가 물었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화상전문 병원으로 이송해서 치료를 잘 해야 한다고 하면서 병원을 추천했다. 일단 옮기기로 하고 수속을 하면서 다시 오빠에게 전화를 했더니 로밍상태였다.

화상전문 병원으로 옮겼다. 처음부터 처치를 하고 아침 저녁 드레싱을 하면서 엄마는 김장은 하지 않고 김장무보다 더 큰 링거를 몇 개씩 매달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했다. 다시 화가 치밀었다. 그놈의 김장 안 하면 누가 죽느냐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화덕도 언제부터 다 삭았으니 버리고 개스버너 하나 놓아준다고 해도 왜 돈들이고 가스를 태우느냐고 하며 땔감이 지천인데 쓸데 없는 짓거리 하는 말라고 해서 주춤했던 일이 있었다. 고쳐 준다는 아버지 말도 믿을 게 없고 그냥 쓴다는 엄마 말은 더더욱 믿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이틀 밤이 되어서야 언니들이 사이좋게 나타났다. 둘은 엄마 걱정은 자기들이 맡아서 다 하는 것처럼 수선을 피우며 들어서서 울고 불고 요란을 떨었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웃으며 괜찮다를 연발했다. 두 딸들은 엄마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소연에게 집은 어떻게 하고 왔느냐고 물었다. 언니들을 끌고 복도로 나왔다.

언니 같으면 차분하게 집안 단속 하고 왔겠어?둘이 가서 김장하고 뒷설거지나 말끔히 해 놓고 와!

늘 순둥이 모습이던 동생의 돌변한 태도에 놀란 언니들의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입이 붙었다.
저만치 복도 끝에서 또박또박 하이힐소리가 들려왔다. 한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한 손에 케잌 박스를 든 올케였다. 목례를 하면서 병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올케의 눈은 충혈 되었다. 그리고 소연의 손을 잡으며 차근차근 초등학생에게 설명을 하듯 말을 했다.

아가씨 아무 걱정 말아요.우리하고 우리 엄마 김장은 제가 주문할께요.신경 안 쓰셔도 돼요.어머니만 빨리 완쾌 하시면 더 바랄 게 없어요.그리고 아가씨 고생하는데 이거라도...

하얀 봉투를 손에 쥐어주고 올 때처럼 또박또박 하이힐소리와 함께 멀어져갔다. 달라진 건 없었다. 두 손에서 꽃바구니와 케잌 박스가 사라진 것 밖에는...

엄마의 화상은 때가 되면 아물 것이고 언니들에게는 올 김장이 어떻게 될까가 조금은 걱정으로 남겠지만 다 괜찮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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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나 리얼한 이야기라 몰두하여 읽었습니다. tiamo님 글 솜씨가 놀랍습니다.
사족인데, 더러 오타가 보이네요. ㅎㅎ

언제나 도잠님 글과 사진이 부러웠습니다.
덕분에 오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쁜 꿈 꾸세요.

푹 빠져서 읽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빨리 완쾌하셨으면 하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때가 이루어줍니다.
고통도, 행복도...

어머님 빨리 완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읽는데 제가 다 울컥하고 집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가끔 정말 속상한일 많이 하십니다.
다 자식들이 부족해서 그렇지요

다시한번 빠른 완쾌기원합니다.

염려해주시는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답을합니다.

날씨가 추워진다고합니다.
계시는 곳은 더 추울 듯한데
건강 잘 지키시고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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