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높은 곳에서
등산 같은 건 딱 질색이라 한국에서는 어디 높이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여행 다닐 때는 다르다. 어느 도시를 가든 그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보고자하는 느닷없는 욕구가 생긴다. 사실 진짜 내 욕구인지 만들어지고 모방된 욕구인지 좀 아리송하긴 하다. 하여튼 외국에 가면 그렇게도 싫은 등산도 서슴없이 하고 토나올 것 같은 계단도 맹목적으로 올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봤다. 정상에 서서 도시마다 다른 풍경 속에 손톱보다 작은 건물과 먼지보다 작은 사람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뻔하지만 뻔하지않고, 놀랍지만 놀랍지 않다.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 싱가포르에 3주 넘게 있다보니 높은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즈베기나, 몬테네그로에서는 오를 만한 높은 곳은 산이었고 라다크와 치앙마이에서는 절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루프탑 바이다. 가난한 여행자는 입장료가 없고 술 한잔만 시켜도 되는 가성비 루프탑 바 level 33을 찾았다. 마리나베이 파이낸셜 센터 타워 1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33층으로 가면 된다. 야경 맛집이지만 낮에 가도 근사한 전경을 볼 수 있다. 자리에 앉으려면 보통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고. 나는 좀 서둘러 6시 쯤 갔는데 스탠딩 좌석 사이에 애매하게 낑겨 술을 마시다가 스탠딩 테이블을 나중에야 차지할 수 있었다.
해지기 전에 들어가 해가 완전히 질 때 까지 싱가포르의 밤을 내려다 봤다. 싱가포르의 밤 얼굴은 성행 중인 놀이동산 그 자체이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하다. 딱히 무슨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지만 도시 자체의 생김새가 시끌벅적하다. 왜 싱가포르에 와서 야경, 야경 타령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겐 엄청난 감흥은 아니었다. 옆에 있던 싱가포르인 커플이 혼자 외롭게 맥주 한잔을 홀짝이는 내가 처연했는지, 아님 내가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윙을 자꾸 권유해서 결국 한 점 얻어 먹었다.... 어쩌다,치맥 성공...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좀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거센 바람에 머리가 한껏 헝클어진 우리의 꼴은 영 볼품 없어 아름다운 아경과 대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