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하레 하레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2 years ago



며칠 전 꿈에서 목포의 이름 모를 산 중턱에 놓인 미스터리한 사원에 갔다. 겉으로 보아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평범한 단층 건물이었는데, 꿈 속의 나는 이 사원에서 어떤 신을 모시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미 계시 비슷한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원기둥 모양의 산꼭대기 위 꽃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꽃이 만개했고, 사방의 절벽에서 에메랄드빛 폭포수가 무대 위 장막처럼 쏟아져 내렸다. 금방이라도 하얀 포말을 뿜는 물줄기를 뚫고 용이 나타나 승천할 것 같았다. 아무튼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전형적인 동아시아적 무릉도원의 이미지였는데 일렁이는 운해 너머로 나타난 신은 의외로 진한 이목구비에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을 한 인도의 신이었다. 산줄기 위로 삐죽 솟아오른 시퍼런 몸체의 거대한 입상. 꿈에서는 그게 크리슈나라고 생각했고, 지금 이미지를 검색해보니 크리슈나인지 시바인지 비슈누인지 다 파랗고 똑같이 생겨서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달라이라마 꿈을 꾸고 며칠 뒤에 올캐가 조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그만큼이나 좋은 일이 생기려나. 어마어마하게 홀리한 꿈이로다...

내가 처음 힌두 문화를 접한 곳은 의외로 인도가 아닌 유럽이다. 스물세살에 휴학하고 떠난 유럽 여행, 베네치아 카니발에서 허연 무명천 같은 것을 위아래로 대충 두른 채 요상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모인 사람들은 며칠 굶은 것처럼 하나 같이 비쩍 말랐고, 눈빛이 퀭했고, 평생 해를 보지 못한 사람처럼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 위에 흰색의 페인팅까지 칠해서 요괴 같아 보였고, 삭발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그중 몇몇은 맨발이었다. 그런 이들이 모여 다 같이 흐느적거리고 있으니 그 장면이 어찌나 기괴한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레 하레' 하며 불렀던 그들의 노래는 크리슈나를 찬양하는 만트라였다. 이렇게 써놓으니 힌두 문화를 약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 같아 염려되지만, 어렸던 내 눈과 마음에는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한없이 낯선 장면이었다.

인도에 그렇게 들락날락 했어도 힌두교와 힌두 문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것이 없지만, 버스든 자가용이든 인도에서 차를 탈 때면 영원히 반복될 것처럼 흘러나오던 크리슈나 만트라가 그립다. 백미러마다 걸려 있던 오동통한 아기 크리슈나도, 코끼리 가네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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