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기다리는 마음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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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지독한 징크스가 있다. 최적의 항공편을 찾아내고도 그것을 손에 쥐지 못하는 징크스. 눈치를 살피며 검색만 실컷 하다가 결국 말도 안 되는 여정, 말도 안 되는 가격의 항공편을 예약하는 바보짓을 한다. 알면서도 항공권 예약 사이트의 농간에 놀아나고, 다음날이면 사라질 걱정과 조바심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검색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너무 많은 가능성을 따져보기 때문이다. 숙소를 예약할 때도 그렇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내가 발견하는 것은 '결국 처음 골랐던 것이 제일 낫다'는 사실 뿐이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이건 병이다. 이 병 덕분에 뜻밖의 행운을 누리거나 이득을 보게 되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고, 실질적 손해를 입는다. 돈이든 시간이든 말이다.

이번에는 에어인디아와 쓸데없는 눈치 게임을 벌이다가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약이 올라서 차라리 다른 선택을 했다. 델리 직항을 포기하고 얻은 항공편은 하노이와 아마다바드를 경유하는 여정이었다. 하노이에서 열 시간, 아마다바드에서 거의 여섯 시간을 보내야 했다. 끔찍한 여정이었지만, 하노이에서의 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며 조금은 즐겁기도 했다. 하노이는 맛있으니까.

하노이 공항 ATM 앞에서 한국 여행자를 만났다. 실수로 현금을 너무 많이 뽑아 난감해하는 그에게 베트남 돈을 샀다.

"하노이에서 밥만 먹고 떠날 예정이거든요."
"어디 가시는데요?"
"아마다바드요."

세상에. 이런 미친 여정을 선택한 여행자가 또 있다니.



하노이에서의 열 시간은 완벽했다. 비에 젖은 하노이는 선선했고, 먹고 마시는 것마다 너무 맛있어서 진심으로 신이 났다. 특히 버터와 꿀을 발라 구운 반미의 맛은, 도저히 맛없을 수 없는 조합이지만,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마다바드에서 이런 미친 여정을 선택한 한국 여행자를 한 명 더 만났다. 아마다바드에서 만난 네 사람은 몇 시간 뒤 인도 이곳저곳으로 흩어질 예정이었다. 벵갈루루로 향하는 여행자는 인도의 남쪽 끝에 닿고 싶다고 했고, 자이푸르로 향하는 여행자는 인도의 사막을 보고 싶다고 했다. 다들 각자의 목적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그러다 이렇게 어디에선가 만나고 또 헤어진다는 것이, 어쩐지 뭉클했다. 긴 여행을 시작하는 그들을 라다크로 초대했다.



라다크에 와서는 매일 한 명씩 옛 친구들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있다. 라다크 친구도 있고, 인도 친구도 있고, 한국 친구도 있다. 얼굴은 똑같은데 머리카락만 새하얗게 새어버린 루치, 18킬로나 빠져서 반쪽이 된 타시 삼촌, 꼬꼬마 시절 만나 삐약삐약 하고 놀았는데 수학 과학 학습지 푸는 청소년이 된 제니도 만났다. 거의 십 년 만에 만나는 카페 두레 시절의 친구들이다. 작년 여름에 왔을 때는 그렇게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아직 시즌도 시작되지 않은 4월의 라다크에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 모여들고 있다니 너무 신기하다.



내일은 또 누굴 만나게 될까. 친구들을 기다린다. 춘자로드에 함께할 이들도 기다린다. 아마다바드에서 만난 여행자들도 기다린다. 기다리는 마음으로 매일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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