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Dance, Keep dancing
루카 구아다니오 감독의 서스페리아. 계속 볼 것인지 말 것인지 중간에 두 차례 고민했다. 어떤 메시지도 소화하고 싶지 않을 만큼 영화가 기괴했기 때문이다. 몇 장면은 시각적으로 너무 끔찍해서 일말의 흥미조차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피로한 정신에 왜 굳이 이런 자극을 주고 있는 걸까 스스로 되물을 정도였으니 스트레스를 견디며 영화를 끝까지 감상한 것은 자해에 가까웠다. '가까웠다'가 아니라 실제로 자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다 보고 나서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요가를 마치고 난 것처럼 개운했다. 그 좋은 기분이, 좀 이상한 말이지만, 자해의 기능(?)인가 싶었다.
다음날에는 가장 끔찍했던 장면과 몇 줄의 대사, 그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이 자꾸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을 돌려 보며 펑펑 눈물을 쏟고 나서야 내가 마녀 서스피로룸의 의식을 통해 정화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녀 서스피로룸은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는 벌을 내렸다. 지친 이에게는 안식을 선물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춤을 추는 이에게는 칭찬과 격려를 건넸다. 나는 피바다 속에서도 계속 춤을 추는 사람이었다.
줄곧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고, 누군가 결과를 책임질 수도, 되돌릴 수도 없었다. 자꾸 '만약 그랬다면',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을 생각했다. 무의미한 가정을 반복하는 건 정말 지독했다.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도,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도, 망연자실을 마주해 감당하고 다른 무엇으로 승화할 수 있을 만큼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고, 지혜롭지 않았다. 그러니 그저 익숙한 방식대로 다른 일에 집중했다. 틈이 생길 때마다 원망하고 싶은 마음과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그런 마음은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이니 서둘러 지우기 바빴다.
그런데 마녀 서스피로룸은 우리에게 죄책감이 필요하다고 한다. 수치심도.
나에게는 죄책감이 필요하다. 수치심도. '필요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감당해야 한다. 모두가 한동안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힘겨웠기를 바란다. 여전히 그것과 싸우고 있기를 바란다. 마녀 서스피로룸의 은총을 받아, 죄책감도 수치심도 가질 필요 없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은 채 살아갈 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아무도 없다. 그러니 부디 기억하고, 자신의 못남을 탓하고, 부끄러워하고, 그럼에도 믿음은 져버리지 말자. 희망찬 기분을 기억해내자. 가슴속에 타오르던 불덩어리를 잊지 말자. 무엇보다 이제는 원망하지 말자. 그저 계속 춤을 추자.
Yes.
Dance.
Dance, Keep dancing.
It's beautiful.
It's beautiful.
It's beauti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