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겨울 아침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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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첸이 마당에서 낙엽을 쓸어 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불 속은 따뜻하고, 이불 밖은 차갑다. 찬 공기로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 한참 눈을 뜬 채 누워 있었다. 곧 낙엽 태우는 냄새가 났다. 레이저 광선 같은 아침 햇살이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와 눈을 찔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아침 햇살을 즐기다가 일어나서 커튼을 거뒀다. 창문을 열자 매운 공기가 코를 파고들었다. 후추 냄새 같다고 해야 하나. 양첸과 아침 인사를 나눴다. 잘 잤니, 어젯밤에 안 추웠니, 이불 하나 더 줄까, 양첸은 매일 아침 똑같은 말로 인사를 건넨다. 창틀에 걸터앉아 저 멀리 보이는 산을 한참 쳐다보다가. 이런 아침과 매일 만날 수 있다면, 완벽한 혼자가 되어 올겨울을 라다크에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있는 힘껏 '혼자인 상태'를 즐기는 중이다. 이렇게 혼자인 걸 좋아하면서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일을 벌이고 또 벌이는 귀여운 나.

역시 이곳에서의 일들이 예상대로 흘러갈 리 없고, 시간도 돈도 부족한 이 상황에 매일 산 넘어 산, 빌런 다음 빌런이지만, 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여느 때와 다르다. 지난 한 달 유럽에서 벌인 게임에서 끈기와 인내심과 여유를 추가로 획득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어차피 이루어질 일들이니 조금은 느긋하고 뻔뻔해져 보는 것이다. 다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날 때 이 마음이 귀하다는 걸 알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세상의 많은 일은 하리라 마음먹는 순간 기지개를 켜며 이루어질 준비를 한다. 세계는 인간이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저 계속하기 위한 끈기와 인내심과 여유, 그것만이 검이자 방패다. 헛발질 안 하고, 총량이 정해진 에너지를 아껴 쓰려면, 이 무기를 어디에 사용할지 명확히 해야 한다. 이건 내가 이십여 년간 맨땅에 헤딩하며 얻은 인생 치트키 같은 거다. 구호나 자기 암시가 아니라 유레카! 하고 깨닫게 되는 진리다. 이걸 깨달으면 인생이 한결 편해진다. ‘인생이 편해진다’는 말이 하는 일마다 만사형통, 술술 잘 풀린다는 뜻은 아니다. 불필요한 고민,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평범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정신의 자유로움은 대체로 어느 정도까지만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따금 찾아오는 고민, 걱정, 두려움은 인생의 조미료니까.



11월의 라다크는 생각보다 춥지 않다. 해가 워낙 좋아서 낮에는 오히려 따뜻하다. 작년에 워낙 심하게 앓았던 터라 가진 옷을 다 껴입고 약이든 뭐든 좋다는 건 다 챙겨먹으면서 단단히 대비를 하긴 했다. 라다크의 진짜 겨울은 2월부터 시작이라고, 양첸은 말했다. 2월이면 눈 덮인 산으로부터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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