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걷다 보면 어디든 도착하는 법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last year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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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인도 다람살라에서 나는 작정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가만히만 지냈다. '가만히'는 생각보다 어렵고,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가만히 쉬고, 누군가는 가만히 애를 쓴다. 나의 경우는 후자에 가까웠는데, 그 치열함을 눈치채지 못한 주변인들은 하릴없이 하루를 보내는 나를 어쩐지 좀 가엾게 여기곤 했다.

다람살라에는 ‘가만히’를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흘러온 사람이 나 말고도 많았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가만한 일상에 잔잔한 변주를 줄 만한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 이 동네 문화 산업(?)의 핵심 콘텐츠였다. 동네 곳곳에는 크고 작은 명상 센터와 요가 아쉬람이 자리잡고 있었다. 레이키, 마사지, 아로마 테라피, 타이치, 타로, 점성술, 싱잉볼, 낭송회, 우드 카빙이나 마크라메 같은 각종 수공예 등 아무튼 이너 피스에 집중한다는 온갖 활동들이 이 작은 동네에서 가능했다. 심지어 부토 스쿨도 있었다. 부토는 일본 현대 무용의 한 장르인데, 해괴망측한 분장을 하고 몸을 이리저리 꺾으며 기괴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춤이라기보다는 좀비의 몸부림처럼 보였다. 때마다 사원에서는 크고 작은 법회나 기도회가 열렸다. 운이 좋으면 달라이라마를 직접 만날 수도 있었다. 나와 란이 달라이라마 친견을 신청했던 날에는 국적별로 그룹을 지어 차례로 기회가 주어졌는데 마침 한국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어서 셋이 사진을 찍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사진 속 란과 나는 울기 직전의 우스운 얼굴을 하고 있다. 발발 떨며 다가가 잡은 그의 손이 ‘강렬하게’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동네 문화 산업에 관심이 없었고, 매일 가는 카페에서 사람 구경을 하며 대부분의 낮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심란한 날에는 사원에 가서 초 공양을 올리고 기도 바퀴를 돌렸다. 그러고는 우두커니 앉아 오체투지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녁에는 바에서 술을 마시며 취한 이들을 구경했다. 밤이 되면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바에 기어들어 와 지리멸렬한 대화를 이어갔다. 취한 친구들은 곧잘 싸웠다. 그 동네에는 매일 밤 사건 사고가 일어났는데 다음날이면 다 같이 기억을 지우는 알약이라도 삼킨 것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루를 시작했다. 24시간마다 반복 재생되는 동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친구들이 안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그들이 이너 피스를 유지하며 매일을 버티는 방법이라는 걸 알고는 나도 함께 알약을 삼켰다. 그러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가만히, 정신을 마비 시킨 채 지내는 것이.

정신이 마비된 통나무 인간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제 발로 요가 수업에 찾아간 걸까. 이효리 때문에 한국에 요가 붐이 일었을 때도 전혀 관심이 없었고, 빼빼 마른 인도 남자가 팔과 다리를 꺾어 만든 기상천외한 동작들이 인쇄된 홍보 전단을 볼 때마다 경이롭다기보다는 징그럽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는 요가의 본진에서 오히려 요가와 멀어지는 중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요가도 사람 구경을 하러 갔던 것 같다. 너무너무 혼자 있고 싶은데 동시에 너무너무 외로운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 친구가 소개해준 요가는 내가 알던 것과 좀 달랐다. 그의 말에 의하면 시한부 판정을 받은 티베트 승려가 꾸준한 요가 수행을 통해 암을 극복했는데,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아 일주일에 몇 번씩 무료로 요가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희끄무레한 아침, 친구와 함께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야외 농구 코트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열댓 명 모여 있었다. 저마다 요가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에 한창이었다.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 팔다리를 몇 번 휘두르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상의를 탈의한 승려가 티베트말로 가이드를 시작했다. 승려가 진행하기 때문인지 어쩐지 소림사(?) 분위기가 났다. 당연하게도 나는 대부분의 동작을 비슷하게도 따라 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이 보여주는 가동 범위의 50%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뼈와 근육의 고통은 둘째 치고, 통나무 인간의 발버둥은 자괴감을 낳았다. 이건 쌀 한 가마니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거나 100m를 9초 이내에 주파해보자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인체의 구조는 모두 같은 원리로 지어져 있을 텐데 어째서 나의 움직임은 이렇게나 다른 거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는데 나만 그걸 못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통나무 인간은 당장 일어나 집에 가고 싶었으나 하찮은 몸을 타박하며 몹쓸 오기를 부렸고...

동작이 끝나고는 호흡이 이어졌다. 승려는 ‘스으으으읍!’ 하고 몸 안에 있는 숨을 완전히 내뱉더니 배를 손바닥 두께만큼 납작하게 만들었다.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숨을 참고 손바닥으로 배를 쓸어내려 그나마 남아있는 공기조차도 모두 몸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사람인가? 저런 게 가능하다니? 그러고 보니 비슷한 걸 본 적 있다. 그의 모습은 파키스탄 라호르 뮤지엄에 있던 부처 고행상과 똑같았다. 그래, 숨을 참는 것보다 더한 고행은 없을 것이다. 다른 참가자들도 일제히 숨을 내뱉더니 옷 아래로 선명하게 드러난 갈비뼈를 어루만졌다. 뭐야, 어떻게 하는 거야! 아무리 숨을 내뱉어도 나의 갈비뼈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 뱃속에 있는 건 다 뭐지. 내가 충격에 빠져 볼록한 아랫배를 쓰다듬고 있는 사이 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승려는 가부좌를 튼 채로 상체를 꿈틀거리더니 횡격막 아래 있는 장기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의 뱃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그의 복근인지 대장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건 정말 감당하기 힘든 비주얼 쇼크였다. 출산이 임박한 에일리언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첫 요가는 몸과 마음에 충격만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다시는 요가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에는 손가락 한 마디도 까딱할 수가 없어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내 몸뚱이의 하찮음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내 것인데 내가 통제할 수 없다니. 이후로 다람살라에서는 자주 다치거나 아팠다. 허리를 다쳐 몇 날 며칠 드러누워 지낸 적도 있는데, 그때는 말 그대로 네발로 기며 태초의 인류를 떠올렸다. 내 연약한 기립근은 열정적인 직립보행의 산물인가, 반대로 나는 진화가 덜 된 인간인가. 이렇게 형편없는 몸뚱이로 어떻게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내 몸은 6년을 더 혹사 당했다. 목, 어깨, 허리는 틈만 나면 말썽을 일으켰고, 만성적인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그래도 어디 크게 아픈 곳은 없으니 내가 건강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올해 초 정신력의 백업이 무너지자 나의 몸은 이대로는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냈다. 백기. 마침내 통나무 인간은 각성했다. 종이 인간은 살고 싶었다. 꽈배기 인간은 필라테스를 통해 삶의 두 번째 시즌을 시작했다. 두 번째 시즌의 테마는 몸과의 대화다.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갔는데 가을부터는 주말에도 강습이 생겨서 매일 가는 중이다. 열심히 했으니 필라테스의 효과에 대해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침마다 나를 괴롭히던 목과 어깨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게 제일 신기하다. 말려 있던 어깨와 굽은 등이 많이 펴졌다. 심각하게 뒤틀려 있던 골반은 균형을 찾는 중이다. 예전에는 다리를 꼬거나 짝다리로 서야 편안함을 느꼈는데 이제는 바로 앉거나 바로 서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등 근육을 움직이는 법을 알게 되었다. 걸을 때도 엉덩이 근육이 쓰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녁 귀갓길이면 100kg짜리 추를 매달아 놓은 듯 천근만근이던 발걸음도 이제는 발바닥에 용수철이 달린 가제트 형사의 그것처럼 가볍다.

욕심이 생긴 나는 요가에 닫혔던 마음도 열어 보기로 했다. 다람살라에서의 요가 쇼크 이후, 나를 요가의 길로 다시 이끈 건 지난여름 라다크에서 만난 요가 선생, 와씸이다. 그에게 요가를 배운 건 단 일주일이었지만 어려운 동작도 에일리언 호흡도 없었기 때문에 요가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고 다시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요가란 속세의 웰니스 산업일 뿐이라고 얕잡아 본 것도 있었는데 그 생각도 좀 바뀌었다. 수행이든 비즈니스든 모든 것은 임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활용하면 된다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인도 문화원에서 하는 요가 수업을 듣고 싶었으나 너무 멀어서 포기. 다시 이곳저곳을 알아보다가 찾아낸 동네 요가원에서 나의 요가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처음 무료 청강을 했던 날, 선생님은 요가원에 들어선 나와 젠젠을 보자마자 “우리 요가원 되게 지루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반이 지난 지금은 우리의 선택이 맞았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 요가원에는 산스크리트어 '옴'도, 싱잉볼도, 도테라 오일도 없다. 그래서 좋다.

필라테스를 하며 척추와 근육을 부위별로 해체하고 하나씩 혹은 요리조리 조립하여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요가를 하면서는 제대로 숨 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호흡을 관찰하기 위해 몸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움직여보는 것이다. 평소에는 들숨과 날숨이 어떻게 오가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숨을 쉬지만, 요가 할 때는 내내 의도적으로 호흡을 컨트롤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숨을 쉴 때 몸의 어느 부위가 움직이는지, 들숨과 날숨이 어떤 박자로 오가는지, 어떻게 움직일 때 숨쉬기가 편한지 혹은 불편한지 알게 된다. 숨 쉴 때 나는 소리와 숨의 온도를 알게 된다. 장기가 만드는 소리들, 체온의 변화, 진동과 긴장,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계속 지켜볼 수 있다. 매일 다르기 때문에 재밌다. 시작한 지 한 달 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이야기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확실히 폐활량이 늘었다.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를 내내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동안 별로 숨이 차지 않았고 호흡은 편안했다. 날숨에 비해 들숨이 무척 짧았는데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비슷해졌다. 횡격막을 사용하여 숨 쉬는 법을 알게 되어서 들숨을 많이 채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물구나무서기를 할 때는 내 힘으로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다.

2022년을 마무리하며 이 글을 썼고, 글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 때쯤 지난 일 년 무엇을 이루었는지 생각했다. 애초에 큰 목표 같은 건 없었는데 꾸역꾸역 하루를 쌓다 보니 꽤 많은 것을 해냈다.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지만, 정신을 마비시키기 위해 애를 쓰며 얻은 것들이기도 했다. 6년 전 다람살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인지 막 보람차거나 뿌듯하지는 않다. 이룬 것들이 애초에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라면 더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어쩌다 이룬 것이면 어때. 얻어걸린 것이면 어때. 걷다 보면 어디든 도착하는 법이다.

올해는 미뤄둔 절망과 슬픔을 오히려 마주하려고 한다. 그것들이 몸집을 키워 덤벼들기 전에.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다. 평생 정신에 이끌려 다니기만 했던 나의 몸은 이제 정신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 둘은 서로 견제하며 서로 도우며 나를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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