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공식과 맞서다 공식이 된 사람들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7ebd857b9dfa877d6ba6b7cba1ba201e.jpg



(물론 스포일러)



교수는 공식 학위가 없다. 그래서 그는 비공식이었지만, 선 자리에서 자신이 몇 개 국어를 하는지 줄줄줄 늘어놓는 통에 공식 교수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공식일까? 학위증명서가 공식일까? 실력이 공식일까?



대영제국은 실력을 받아들였다. 물론 학위를 수여 한 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공식이어도 너의 실력은 사용해야겠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최고 권위의 옥스퍼드 사전 편찬 책임자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공식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가엽다. 얼마나 실력이 없으면 공식에 매달릴까? 그러나 실력이 출중해도 스스로를 비공식에 가두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공식에 대한 열망과 좌절 때문에 자신의 실력을 폄하하고 스스로 쭈그러든다. 이 모든 것이 공식이 정당하지 않은 과정을 통해 남발되어 권위를 잃은 탓이다. 어쩌겠는가. 오래된 것들은 다 그렇게 흐지부지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사회는 불안해진다. 공식과 실력이 등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공식은 믿을 수 없고 공식도 실력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실력을 쌓아 온 이들은 점점 수면 아래로 숨어드는 것이다. 누가 손해일까? 무엇이 손해일까? 아무도 모른 채로 사회는, 공동체는 점점 가라앉기 시작한다.



공식에 목매는 사회는 스스로 실력 없음을 자인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실력이 넘치는 사회에는 따로 공식이라고 할 것도 없다. 저잣거리에 채이는 게 장인들일 테니. 공식이건 말건 아무에게나 맡겨도 결과물은 똑같다.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자칭 원조 가게들처럼 말이다.



"다 지들이 원조라지만 맛은 다 똑같혀. 이 장사가 다들 몇년인디."



그들은 공식으로 얻어지는 공功보다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는 장場을 원한다. 그러니 공치사는 관심 밖이다. 내가 만족할 만큼의 무엇, 그것이 아니면 대박이 다 뭔 쓸모겠는가.



"나는 아무런 사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이상적인 사전의 완성을 정말 보고 싶습니다. 이상적인 사전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비공식 교수의 말이다. 그는 그저 이상적인 사전의 완성만을 추구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매드맨이 함께 할 수 있었다.



매드맨은 공식적인 매드맨이 아니었다. 그는 처벌을 받아야 할 죄수였다. 그러나 법정은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그에게 감형을 내렸다. 그는 절규했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오. 나를 처벌해달란 말이오!' 그는 자신의 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죄 없는 병사에게 낙인을 찍은 죄, 그리고 그것을 괴로워하다 무고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인 죄. 그러니 그는 공식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정은 그에게 처벌을 내리지 않고 공식적으로 미쳤다고 선언했다.



'아니야. 난 미친 게 아니야. 진짜로 미치기 전에 나를 제발 처벌해줘.'



그는 이제 살아서 속죄해야 한다. 그가 총을 쏴 죽인 이에게는 아내가 있고 가족이 있다. 그들에게 자신의 것을 모두 주고 속죄하고 싶다. 그러나 죽은 이의 아내는 거절한다. 남편의 피가 묻은 돈을 받을 수는 없다며. 그러나 매드맨은 포기하지 않고 거듭한다. 그리고 죽은 이의 아내는 그에게서 글을 배우게 되고 그의 영혼에 감화된다. 아니 사랑에 빠진다.



'이게 사랑이면 어쩌죠?'



이게 사랑이면 안 되지. 매드맨에게 그건 최악의 형벌이다. 비공식 매드맨은 이제 공식 매드맨이 되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진짜로 미치기로, 스스로 공식 매드맨이 되기로 선택하고 자신의 뇌를 파괴한다. (자발적 선택에 의해 전두엽 절제술이 가해졌다.)



사랑이라면 어쩌죠? 남편을 죽인 이를 사랑하게 된 그녀는 이게 사랑이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이런 상황에 대고 스톡홀름 증후군 어쩌고 하는 뻘 소리를 늘어놓는 공식 전문가가 있다면 그의 뇌를 절제해 보아야 할 것이다. 누가 누구의 마음에 사랑을 지필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을 원수로 여겨야 마땅할 이의 마음을.



그녀는 그에게서 글을 배웠다. 언어를 배웠다. 그는 사전 편찬을 돕고 있었다. 그가 아니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아니면 그녀는 영원히 분노 속에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진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서 배운 언어로 또박또박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



'사랑이라면 사랑하면 되죠.'



이게 다 실화란다. 도대체 100년 전 대영제국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진실된 인간들뿐이었단 말인가? 어떻게 몇 명의 악역을 빼놓고는 모두 서로에게 진심과 진심으로 소통하는지. 이건 영화니까, 매우 바람직한 어떤 해피엔딩의 영화니까 그럴 거라고, 이건 공식이 아니고 영화가 그려낸 비공식 판타지라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지만. 솔직히 부럽다. 영화일지언정 그들의 상호작용이 미치도록 부럽고 또 부럽다.



마법사는 100년 전 이들의 이 감정을 21세기에 통 느껴보지 못했다. 그놈의 공식들은 하나같이 약아빠져서 아무리 마음을 쏟아부어도 '어따 대고 사기질이야! 너 증명서부터 떼와 봐.' 하는 통에 누구와도 소통하기가 어렵다. 마법사의 직관어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통에 모두에게서 비공식으로 낙인을 찍히고, 마법사의 마법은 모두에게 어쩌다 일어난 우연이고 심지어는 미친 짓으로 공식화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사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이상적인 공동체의 완성을 정말 보고 싶습니다. 이상적인 공동체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비공식 마법사의 말이다. 그러나 마법사에게는 매드맨이 있는가? 마법사에게는 마법의 직관어를 배울 그녀가 있는가? 마법사에게는 공동체의 완성을 위해 70년을 함께 할 동지들이 있는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미치광희'라고 부르는 한 매드맨과 함께 에어컨이 들어오지 않아 갑갑한 20세기의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그는 100년 전의 19세기 소년처럼 추방되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에게는 30세기에서 온 비공식 마법사가 자신의 직관어 사전을 함께 완성해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골목에서는 20주년을 기념하는 순댓국집의 현수막과 그 옆에 매우 오래된 중국집 간판에 쓰여진 'since 1970'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 시간들을 버텨냈을까요? 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한복판에서 말이죠."라는 비공식 마법사의 질문에 공식 매드맨은 "아마도 자기 건물일 겁니다."라는 매우 당연하면서도 신비로운 답을 내놓았다.



아 그렇다. 저것은 모두 저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의 業을 완성해 왔고 완성해 가고 있다. 그것은 19세기가 아닌 21세기에는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다. '저기다 건물을 올리면 월세가 얼만데.' '겨우 중국집, 순댓국집이나 하겠다고 이 비싼 금싸라기 땅을 여지껏.' 물론 그 가게들의 맞은편, 건너편에는 21세기의 공식에 맞는 삐까번쩍한 새 건물들이 마구 올라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순댓국집 주인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20년을 공식화 하고 있고, 낡디 낡은 중국집의 간판에는 'since 1970'이라는 굵은 글씨가 공식적으로 박혀 있다. 그리고 마법사와 매드맨 그리고 춘자들은 그 오래된 중국집에서 첫 공식 회식을 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세기소년과 30세기에서 온 마법사 그리고 21세기의 춘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모르겠다. 비공식 마법사가 할 일은 터 잡고 앉아 직관의 언어를 수집하는 일일 뿐.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since 2018'이라고 쓰여진 [스팀시티] 커뮤니티 센터 1호점의 간판 아래 나부끼는 20주년 기념 현수막을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마도 자기 건물일 겁니다."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15. 프로페서앤매드맨


Human Library

Sort:  
 3 years ago 

아마도 자기 건물... 살짝 피식 웃다가
갑자기 우울해 지네요...
참 슬픈 말인듯 합니다.

 3 years ago 

그때에는 기쁜 말이 되길 바랍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2964.22
ETH 2595.61
USDT 1.00
SBD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