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더 파더 -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영화

004

더 파더


the father, 2020


image.png


“세상에 제일 공포스러운 건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린다는 거야.”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책 속 모든 내용을 기억하던 영특한 아이가 말했다.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자기 죽음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도 아닌 기억의 죽음이었다. 더는 자신의 지성에 기댈 수 없는 것, 사고체계가 불완전해지고 연소하다 마는 것.

‘나를 잃는 것’

순간 그 아이가 말하는 공포가 내게 전염되었다. 그날 이후 가장 두려운 것 목록엔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자신’이 올라와 있었다.

이제까지 ‘알츠하이머’를 다룬 영화의 시점은 관찰자였다. 환자의 보호자나 혹은 객관적 3인칭 관찰자의 시점, 언제나 당사자가 아닌 주변부 입장의 이야기였다. 영화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 병세가 악화하는 당사자 ‘앤소니’ 시점으로 그려진다. 뒤섞이는 시간의 흐름, 기억의 흐름, 내가 틀리고도 틀린 줄 모른다는 불안, 모든 게 하나씩 뒤죽박죽되어버리는 혼란과 공포, 그건 눈을 감고 낭떠러지가 앞에 놓인 외줄을 타는 기분이다.

그 아이 말이 맞았다. 어떤 공포, 스릴러 영화보다도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두렵고 무서운 데다가 처연하고 슬퍼졌다. 처음, 앤소니가 맞이한 혼란에 준비 없이 두들겨 맞고 어떤 이야기가 진실인지 찾아 헤메이던, 어리석은 나는 어느새 무력하며 어느 것도 알 수 없으며 진실이 중요치 않다는 걸 깨닫는다. 다 놓아버리고 그저 보았다. 아마 내가 진짜 앤소니였다면 딸 ‘앤’의 고통과 아픔을 일시적 느끼고 다 잊어버리고 말았겠지.

그런데 그 아이가 누구였지? 내게 그 말을 해 준 아이. 그 아이가 실제 있었던가? 그게 내 기억이 맞나?

image.png


image.png


p.s. 안소니 홉킨스가 안소니 연기를 하는 건 반칙이다. 앤 역을 맡은 두 여배우 이름은 모두 '올리비아'이다.

-2021년 6월 1일, by 고물

Sort:  

안소니 홉킨스, 포스터의 눈빛 하나로 모든 걸 말해 주고 있군요.

이심전심...

맞아요 키위님. 저도 포스터를 넣으며 이거만큼 영화를 보여주는 게 없구나 생각했어요.
둘의 연기가 미쳤어요 ㅠ!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다 돌아가셔서 기억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조금은 이해하고 있어요.
마법은 문장이라고 믿었던 "할머니~ 똥강아지 왔어요." 가 점점 통하지 않게 되었을 때 목구멍을 타오르던 그 감정...

파치님은 가까이서 겪어본 적이 있군요. ㅠ 얼핏 그 주제로 쓰신 글도 기억이 나요.
'똥강아지' ㅠㅠ... 영화에서도 앤이 슬픔으로 점점 무너져 가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지요...

아 정말 그러네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느껴집니다

나이 탓인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관점을 던져주기에 영화에게 참 고마워요.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3635.72
ETH 2597.20
USDT 1.00
SBD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