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자로드 라다크] 기꺼운 초대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last year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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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 파티를 할 거예요. 김밥을 만들고 된장국 끓이고 김치 만들고 또 뭐가 있지? 오 비빔밥도 할 수 있겠네.

판공초에 가기 전 젠젠님의 생일 파티와 피터님의 송별 파티가 열릴 예정이란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약간 당황스러웠다. 춘자팀이 한국에서 고추장과 참기름, 김 등의 재료를 미리 준비해 오긴 했다지만, 두부도 없는 라다크에서 제대로 된 한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다니! 엄두가 안 날 만큼 엄청난 일처럼 들려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판공초 투어로 다들 녹초가 되어 꼼짝할 수 없이 피곤한 다음 날이었다. 그러나 진짜로 그 일이 벌어졌다. 피곤한 와중에도 라라님은 재료와 순서를 복기하며 장을 보고 초모와 싱게의 2층 부엌에 도착하자마자 허리를 혹사하며 요리를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이…이게 된다고?

곰손인 나는 작고 얇은 마늘을 힘겹고 느리게 깠다. 사람들이 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요리하니 약 두 시간 후에는 놀랍게도 김밥이 완성되었고, 오이김치가 뚝딱 생겼고, 싱게가 엄청 맛있는 된장국을 끓였고 미역국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젠님이 다양한 칵테일을 선보였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어느새 음악이 흐르고 몇몇 사람들은 신나게 춤을 추고, 사람들은 때때로 미친 듯이 웃고 떠들며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부족하겠다고 생각했던 음식은 제대로 맛도 보지 않았는데 파티는 절정을 향해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를 초대하고 파티하는 건 내 생각만큼 복잡하고 엄청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어쩌다 보니 우린 숙소로 돌아가지 못했고 폐인 상태가 되어 아침이 되어서야 편안히 침대에서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파티가 하나 더 남아있고 이미 사람들을 초대해서 취소할 수도 없었다. 이건 진짜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고 젠님은 다시 장을 봐왔다. 숙소 식당에 재료를 펼치고 라라님은 마늘을 까고 오이와 무채를 썰었다. 춘자로드는 사실 알고 보니 춘자식당이었고 극한 알바, 해외 취업이었어. 라는 농담을 던지면서도 이상하게 하다 보니 어제보다 더 잘 만들고 싶은 의욕이 샘솟는 라라님이었다. 참기름이 부족한데도 김밥은 어제보다 더 맛있고 성공적이었고 젠님과 피터님이 끓인 미역국 간도 알맞았다.

다들 거나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한 상이 완성되었다. 빨든은 라다크 한식당 ‘아미고’보다도 더 맛이 좋다고 칭찬했다. 재료도 부족하고 시간도 많지 않고 피곤한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만든 한식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웃고 농담을 건네고 기억에 남을 저녁 식사를 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를 초대하고 음식을 만든다. 친구의 부엌을 빌려. 이곳 라다크에서.

아마도 오래전부터 너무나 당연하단 듯이 춘자는 최선을 다해 한식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배부르게 먹이며 기뻐했고, 그게 별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라다크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초대하고 당연하듯이 차를 권한다. ‘차 한잔 드세요.’ 가장 좋은 자리에 손님을 앉히고 짜이 혹은 티를 비스킷이나 빵과 함께 내준다. 그러다 아예 뚝바를 권하고 다른 온갖 음식을 먹어 보라 내어준다.

처음 라다크에 도착한 아침 적응하기도 전에 따끈한 짜이 한 잔을 마셨다. 짜이의 온기로 긴장이 풀리고 몸이 노곤해진다. 가정집에서도 곰파에서도 가게에서도 저마다의 짜이가 손님들을 위해 준비된다. 그 맛은 각자 조금씩 다르다. 자신만의 짜이에 담긴 기꺼운 초대가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누군가를 환영하고 만나는 건 그리 큰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사실은 별거 아니라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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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기대 이상의 만족스런 여행을 경험하고 계시는군요
감사함이 뭔지 알거 같아요ㅎㅎ
글을 굉장히 잘 쓰셔서 저도 배가 부르게 충만함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10 months ago 

제가 썼던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시고 있었군요 ㅠㅠ 이제 확인했지만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랑이 가득 담긴 글이라 지금 읽으면서도 마음이 기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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