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의 여름] 32. 나의 라라랜드 La La Land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5 months ago

스물두 번의 여름

32. 나의 라라랜드 La La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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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스물여덟 겨울, Astin과 영화 라라랜드를 보았다. 영화 후반부 미아가 우연히 재즈바 Sep’s를 발견하고, 그런 미아를 객석에서 발견한 세바스찬이 ‘City of Star’를 연주한다. 꿈인지 상상인지 모를 다른 세계가 엔딩 장면에 펼쳐질 때 무언가 들킨 기분이 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알레가 떠올랐다. 재즈바를 나서다 세바스찬과 눈이 마주치고 잠시 묘한 미소를 짓던 미아가 미련 없이 현실로 돌아갔던 것처럼, 영화가 끝이 나고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속 뜨거운 열기와 짙은 동요를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듯 영화관을 나섰다.




그땐 라라랜드가 꿈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하는 영화인 줄 알았다. 그 관점으로 바라보면 영화 속 제1 주인공은 미아였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미아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배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의 영향과 도움으로 배우가 되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지만, 역설적으로 세바스찬과는 이별한 삶을 살게 된다. 가장 큰 변화와 성장을 이루고 그 선택을 한 주체가 미아라고 생각했다. 처음 등장부터 마지막 영화를 닫는 장면도 모두 미아의 관점에서 그려졌다.


꿈과 사랑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할 때마다 고민은 되지만 결국엔 사랑이었다. 꿈은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사랑을 포기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라면 택할 수가 없었다. 둘 중 하나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결국 내 삶을 충만하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선택, 후회하지 않을 선택은 역시 사랑이었다.

그래서 라라랜드 안 선택에 비유하자면, 아마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세바스찬을 떠나는 미아가 아니라 세바스찬과 함께 사랑하며 가족을 꾸리는 행복한 미아로 살게 될 줄 알았다. 물론 옳은 선택은 없다. 꼭 해야만 하는 선택도 없었다. 어떤 미아가 된다고 해도 그 이야기는 내게 언제나 해피엔딩이었다.

세바스찬과 눈인사를 나눈 미아가 슬프기보단 행복해 보였다. 재즈라는 꿈을 이룬 세바스찬이 자랑스럽고 그들의 사랑과 추억들을 되새기며 그 인연이 얼마나 멋지고 놀라운 일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떠올렸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울 필터가 켜진 가을, 다시 본 라라랜드는 그동안 듣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건 운명과 선택에 관한 영화이기도 했구나. 그렇다면 라라랜드의 주인공은 미아가 아니라 세바스찬이었다. 미아가 배우가 되고 세바스찬이 재즈바를 여는 꿈을 이룬 건 역시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인연이 엇갈리는 것 역시 선택에 의한 운명이었다.



미아의 상상인지 꿈인지 구별되지 않는 현실과 다른 대체 엔딩 속 첫 장면은 세바스찬이 대중들이 기대하던 캐럴이 아니라 자신이 원했던 재즈곡을 연주해서 쫓겨나는 레스토랑이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물리적으로 처음 마주친 건 그곳이 아닌 꽉 막히는 고속도로였지만, 그땐 서로에게 별 존재가 아니었다. 세바스찬의 연주가 미아의 귀에 들리고 미아의 가슴속 불꽃이 발화되어 영혼이 동조한 그 순간이 비로소 미아가 세바스찬을 처음 만난 인연의 시작점이 되었다.

현실 속 세바스찬은 그런 미아의 순수하고 진심이 담긴 시작이 보이지 않았다. 고용주에게 막 잘렸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에 다시 한번 네가 하고 싶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된 공상이라는 낯익은 경고를 받고 비웃음을 당해 분노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미아는 연주가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왔지만, 세바스찬은 차오른 분노를 엉뚱한 대상인 미아에게 쏟았다.

그때 만일 세바스찬이 분노를 그저 내버려두고 미아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면, 미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알아본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좌절된 분노가 아닌 차분한 상태로 깨어 있었다면 그녀의 호의를 호의로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으로 가득 찬 상상 속 세바스찬은 지혜롭게도 미아에게 키스한다. 시작될 사랑을 예감하고 바로 사랑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세바스찬과 미아가 멀어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키이스가 제의한 밴드에 합류하며 시작되었다. 왜 성공을 거두고 모두가 열광하는 콘서트에서 미아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뛰쳐나갔던 걸까 처음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토록 그녀가 실망스러워했던 건지.

그건 세바스찬이 진정한 마음을 따른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밴드의 음악이 전자음을 가미한 퓨전 장르이고 대중성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세바스찬이 그 밴드를 하는 이유가 순전히 돈을 벌고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망이었다. 세바스찬의 자격지심은 미아가 부모님께 전화 통화를 할 때 폭발한다. 그래서 후에 미아 탓을 한다. ‘일하라며. 사람 구실 하라고 했잖아. 너를 위한 일이기도 했는데 왜 인제 와서 나에게 그래.’

만약 세바스찬이 생존의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더라면 자격지심을 극복할 수 있었더라면 애초에 키이스의 밴드에서 일하자는 제의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상상 속 세바스찬처럼 일언지하에 거절한 채 재즈에 전념했을 것이다. 그게 세바스찬이 가야 할 길이며 영혼이 안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두려움 대신 빛을 따랐다면 두려움 대신 정말 영혼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물었다면 세바스찬은 미아의 일인극을 놓치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했을 것이고, 미아의 극도 자신감 있게 펼쳐지고 훨씬 더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꿈을 향해 나아가며 미아가 배우로 거듭나게 된 그 오디션 자리에도 여전히 세바스찬이 함께였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파리에 도착했을 것이다. 파리에서 세바스찬은 재즈를 연주하고 미아는 꿈꾸던 배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죽는 날까지 그들은 꿈을 향해 걸으며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세바스찬이 미아를 만난 첫 순간부터 어둠에 잡히지 않고 사랑과 빛을 따른 선택만 할 수 있었다면 꿈을 이루고 사랑과 함께하는 운명의 길에 들어섰을 것이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만난 건 운명이다. 두 사람 모두 가슴속 영혼이 원하고 꿈꿔온 작은 씨앗을 하나씩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의 씨앗은 발아해서 재즈가 된다. 재즈를 공연하고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된다. 미아의 씨앗은 자라나서 미아를 배우로 만든다. 그 영혼 속에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꿈을 이루지 못할 때 좌절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꿈을 잊은 척 무시할 수는 있어도 다른 이의 꿈을 빌리거나 다른 꿈으로 조작할 수 없다. 세바스찬은 재즈를 하게 될 운명이고 미아는 배우가 될 운명이다.


둘이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져 서로의 영혼을 보게 된다면 그 꿈은 자란다. 그 꿈이 서로의 꿈에 거름을 주고 햇빛을 주게 된다. 각자가 아름다운 꿈을 품고 있기에 그들은 서로의 꿈을 반영할 수 있다. 서로의 중력은 충돌과 갈등을 낳고 그 역동적인 에너지는 꿈으로 다가가게 만든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서로의 성장에 필요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끌어당기는 자석이 존재한다.



저마다의 운명은 길을 돌고 돌더라도 결국 완성된다. 미아가 배우가 되기 위해 떠나고 세바스찬이 밴드를 그만두고 다시 재즈의 길로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운명적인 상대를 만난다면 그 인연이 진짜라면 영혼에 불이 들어온다. 함께한 시간과 상관없이 빛을 따라 결국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선택할 때마다 갈림길에 들어서고 삶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때 우리는 두려움에 기반한 선택을 하거나 사랑에 기반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두려움에 기반한 선택은 무의식적이고 기계적인 선택이다. 선택은 쉽지만, 결과는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대신 무언가를 배우게 한다. 무언가를 배운 후에만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사랑에 기반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사랑에 기반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지금 자신이 선택하고 있다는 걸 고요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을 믿어주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건 결국 세상의 목소리와 상관없이 자신의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갈림길을 지나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 사랑에 기반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날이 온다. 많이 배우고 성장한 어느 날엔 그 선택을 할 수 있고 시간이 흐르면 사랑의 선택만으로 살 수도 있다.




What do you really want to do, Stella?
세상에 장님들은 자기가 무얼 원하는지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다른 이들을 이끌어.
그들에게 속지 말고 네가 원하는 길을 가. 넌 어떤 사람이야? 무얼 원해?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유를 즐겨. 자유의 소중함을 낭비하지 말고. 인생은 짧아.
-알레




알레와 만난 이후로 여러 번 선택했다. 사랑에 기반한 선택. 쿠바에서 너무나 고통스러워 도망치고 싶었지만,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서 남기로 한 선택, 알레가 자유롭게 살기 바라는 진심에서 도박처럼 함께 미국으로 떠난 선택, 사랑과 배움이 소중해 책으로 쓰기로 한 선택, 다시 알레를 찾기로 한 선택, 다시 알레와 함께하는 운명이 가리켰던 선택.

두려움에 휩싸여 선택한 날도 많았다. 내게 고통을 주는 알레를 이해할 수 없어 벌인 그 많은 다툼, 그의 탓을 하고 원망하는 마음, 그래서 그를 놓아주기로 결정했던 선택, 부서지는 마음이 두려워 알레를 떠나 한국으로 온 선택, 현실이 버겁고 무서워 다시 만난 알레의 손을 놓아버린 선택.


나를 만나기 전부터 알레는 자유로워지겠다는 꿈을 꿨고 예술가가 될 씨앗을 이미 품고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를 만나기 전부터 모든 콤플렉스와 자격지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겠다는 꿈을 꿨을 것이고 운명론자가 될 씨앗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운명처럼 서로 만났고 서로 알아봤고 각자의 씨앗에 불을 밝혀주고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충돌하고 에너지를 공급했다. 우린 진정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받았기 때문에 그건 영원히 서로의 영혼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삶을 살게 되더라도 해피엔딩이 될 것이고 서로의 꿈은 실현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 각자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 관계의 주인공은 알레가 아니라 스텔라였다. 스텔라는 과거 여러 번 두려움에 굴복해서 어둠에 기반한 선택을 했고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 나갔다. 그 길을 걸은 덕분에 자신이 누구인지 운명이 무엇인지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아마 스텔라가 미아의 상상 속 세바스찬처럼 사랑의 선택만을 내렸다면 지금의 삶과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 것이다. 스텔라는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알레와 여전히 함께 티격태격거리면서도 서로의 꿈을 향해 함께 걷고 있었을 것이다. 알레가 말했던 것처럼 백발이 된 노인이 되어 흔들의자에 앉아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영혼이 준비해 두었던 사랑만 선택한 삶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텔라는 아직 어둠을 배우지 못했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어서 흔들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운명처럼 Astin을 만나 성장해야 했다. 자신을 만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 이후 비로소 사랑과 빛에 기반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어떤 길을 걸어간다 해도 스텔라는 결국 스텔라가 될 운명이었다. 운명은 바뀌지 않아. 본질은 변하지 않아. 꿈은 변하지 않아.

단지 선택과 갈림길에 의한 삶의 길이 바뀔 뿐이다.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려움을 택할지 사랑을 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사랑을 자각하고 사랑의 길을 선택해 본 사람이라면 다음에도 사랑의 길을 선택하고 싶어질 거다.




알레, 너는 나의 운명이고 카르마야. 내가 되기 위해서 너와의 만남은 예정되어 있었어. 어떻게든 한 번은 꼭 널 만나야 했을 거야. 너에게 배웠던 삶의 지혜들, 네가 일깨워 준 잠재의식 속 나의 그림자와 상카라를 통합했던 나날, 너와 주고받았던 사랑은 영원할 거야. 계속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고 어둠을 선택했던 혼란스럽고 미숙했던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길 바랄게. 너와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길이 어땠을지 가끔 생각해. 분명 아주 아름답고 멋진 길이었을 거야. 우린 네 말처럼 엄청 행복했을 거야.



오늘날 선택을 내렸던 갈림길을 따라 여기 도착해 있어. 마침내 나 역시 꿈을 만났고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운명을 믿고 삶과 영혼을 사랑하고 있지. 그래서 나는 내가 한 모든 선택을 긍정하고 사랑해. 어떤 선택도 후회하지 않아.

이젠 알아. 어째서 모든 길이 다 정답인 거지. 모든 길이 다 정답인데도 어떻게 운명을 믿을 수 있는 건지. 운명이 정해져 있는데도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는 건지. 운명대로 산다는 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기로 한 결정이란 것도 말이야.

결과를 예측하고 선택하는 게 아니었어. 그게 뭐가 될지 신도 몰라. 그저 사랑을 믿고 삶에 맡기고 운명을 걷는 빛으로 향하는 선택을 하는 거야. 그 선택을 하기 위해 매일 소울 필터를 켜 두는 거야. 결국, 그 빛이 기대하지 못했던 선물로 가득한 삶으로, 내가 걷기로 예정된 그 길로 운명처럼 날 데려갈 테니까.




으깬 감자랑 소스를 한번 섞으면 영원히 분리할 수 없어요. 아빠의 담배 연기도 되돌아갈 수 없죠. 모두 되돌릴 수 없어요. 그래서 선택이 어려운 거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니까요.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두 가능성으로 남게 되죠.

선택을 해야 한단 뜻이군. 이 모든 삶들이 다 진짜야. 모든 길이 다 올바른 길이지. ‘모든 것은 달라질 수 있었고 더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있었다. -테네시 윌리엄스’ 자넨 어려서 모르겠지.

영화 ‘미스터 노바디’ 中




​2023.12.24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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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은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이죠.
받아들일때 오롯이 사랑만, 아닐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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