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 오는 날 동네 카페 사장님 Playlist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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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동네 카페가 있다. 독특한 외관에 끌려 처음 가게 되었는데 사장님이 스피커+음악광이었다. 모른 척 조용히 있었지만, 어떤 날은 가게에서 나오는 바비 콜드웰 곡을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었나보다. 그때부터 사장님과 말을 섞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말이 많은 편이라 자주 가진 않지만, 집 부근에선 커피가 가장 맛있고 스피커도 좋아 사장님에게서 잊혀질 때쯤 조용히 다시 찾아간다. 오늘은 검정치마가 나오고 있었다. 사장님은 내가 반가웠는지, 노래를 끄고 재즈 곡을 연달아 틀며 수다를 시작했다.


@ab7b13을 위한 동네 카페 사장님 PLAYLIST

1 Skaar - The Scientist

죽이는(사장님 표현) 가수를 알았다며 들려주신 곡. 나는 인트로를 들으며 '이거 콜드 플레이 아니야?' 라는 생각만 계속 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거봐 콜드 플레이 진행이더라고!!'라고 혼자 흐뭇해하기 바빴다. 반가운 곡을 따라 부르느라 가수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2 Bebo Valdés & Diego El Cigala - Corazón Loco

대뜸 앞과는 너무 다른 느끼한 목소리가 나와 당황했다. 사장님은 베보 발데스 연주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알게 됐다. 아 피아노가 베보 발데스구나... 사장님은 음악에 심취해있었다. 내 맘대로 곡을 넘기지 못하니 느끼한 목소리를 참고 들었다. 참고 듣다보니 그 아래에 있는 피아노 연주가 들렸다. 너무 좋았다. 베보 발데스 진짜 좋네.

3 Charlie Haden & Gonzalo Rubalcaba - Nocturnal

베보 발데스 얘기를 하다 사장님은 누구더라? 또 잘하는 피아니스트 있지 않아요? 루바..어쩌고 라며 말을 흐렸다! 내가 "아 곤잘로!"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아 맞아!!"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다음 곡이 이 곡이 되었다.

이 앨범은 재즈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과 라틴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가 함께 연주했다. 나는 한번도 곤잘로 루발카바의 이름을 제대로 외워 말한 적이 없다. 사장님도 그런 듯했다. ㅋㅋ

이 앨범도 많이 들은 앨범인데, 이 곡은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마침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이 앨범 표지도 어딘가 비오는 날과 닮아 운치가 있었다. 담백한 찰리 헤이든의 솔로를 채워주는 드럼 연주. 좋았다.

4 Charlie Haden & Gonzalo Rubalcaba - El Ciego(Blind)

다음 곡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며 힌트를 줬다. 그래서 이 곡일 줄 알았다. 이 앨범에서 제일 유명한 곡. 나도 정말 좋아하는 곡이지만 앞 곡의 서정적인 감성에 젖어있는 중이라 강렬한 바이올린 선율이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역시는 역시. 이 곡 원래도 좋았지만 다시 들으니 더 좋네. 비오는 가을날 꼭 잊지 말고 다시 들어야겠다 생각했다. 평소 강렬한 연주를 하는 곤잘로의 서정적인 피아노 솔로. 이런 연주가 나온 건 찰리 헤이든의 힘일까? 이런 연주를 남겨준 것에 감사했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5 Duke Jordan Trio - As Time Goes By

이 곡이 시작되고 새로운 손님이 와 대화가 잠깐 끊어졌다. 앞 곡들에 비해 큰 특징이 없어 나도 편하게 들었다. 이 곡을 듣는 동안 가져온 책을 조금 읽었다. 화성이 정말 아름답네. 좋아좋아 너무 좋아.

6 Duke Jordan - No Problem

처음 드럼 연주를 듣고 책을 덮었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곡. 이 앨범도 정말 유명한데, 이 곡은 그 앨범의 첫 트랙이다. 멜로디도 강렬해 몇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곡.

발로 박자를 세며 혼자서 흥얼흥얼 헤드 멜로디를 따라 불렀다.

솔로를 듣는데 스피커가 좋아 듀크 조던의 터치가 그대로 느껴졌다. 내 눈 앞에서 건반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기억 속 듀크 조던은 부드러운 연주자였는데, 오늘은 그의 터치에서 남성적인 힘이 느껴졌다. 듀크 조던을 처음 듣는 것 같아.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도 오늘 처음 이 곡의 엔딩을 알게 되었다. IV7 화성에 #11 멜로디. 그 엔딩이 너무 아름다워 이걸 마지막 곡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엔딩에 맞춰 읽던 책의 한 챕터도 같이 끝났다.


곡이 끝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내게 사장님은 아쉬운 듯 또 음악 들으러 오라고 하셨다. 다음 방문은 언제가 될까? 그때까지 사장님은 나를 기다리실까? 그런 걸 생각하니 그 공간이 찡하게 느껴졌다. 더 자주 와야겠다. 다음에 오면 꼭 잘 들었다고 말해야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마지막 화성을 기다리며 No Problem을 반복해 들었다. 오늘만이라도 내 하루가 Minor Key의 IV7 #11 보이싱처럼 아름답게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뜸, 생각지도 못하게, 갑작스럽지만 튀지 않고 세련된 여운을 남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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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ears ago 

나루님 플레이리스트라니 오늘밤은 이거다!

 3 years ago 

위즈덤 레이스는 나루님의 플레이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듯합니다.

 3 years ago 

와! 그런 과찬을 해주시다니...!

궁금한 게 있는데, 추천권은 어떻게 쓰면 되나요? 그리고 제가 대신 스파를 위임할 수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

 3 years ago (edited)

추천받으신 분이 337 SP를 @stimcity에 delegation하시고 첫번째 포스팅을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추천권 제도를 채택한 것이 추천인이 신규 회원을 페이스 메이커로써 돕기를 바라는 의미이니 대신 임대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3 years ago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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