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윽고 슬픈 외국어
하루키의 책을 전부 읽어보겠다 다짐한 후로 에세이와 소설을 나눠서 읽고 있다. 전에 읽었던 에세이는 달리기에 관한 회고록이라 그 무게가 짙었다. 다음 책으로는 한 번도 읽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그간 접하지 못한 새로운 주제의 에세이를 읽고 싶었다. 때마침 이 책이 눈에 띄었다. 하루키는 작가뿐 아니라 번역 일도 병행했는데, 그런 그에게 영어는 어떤 존재인지 늘 궁금했다. 그래서 빌려오게 되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미국에서 4년 넘게 생활하며 느끼고 겪은 이야기를 묶어낸 책이다. 책의 제목인 '이윽고 슬픈 외국어'는 책 마지막에 수록된 한 편의 에세이의 제목일 뿐이었고, 이 책은 외국어보다는 하루키의 미국 생활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재즈 이야기를 만나게 돼 즐거운 부분도 있었다. 수록된 에세이마다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스러움이 가득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확장해볼 수 있어 즐거웠다.
물질로 보았을 때도 좋은 책이었다. 손에 닿는 표지와 속지의 촉감이 다르게 좋았다. 책의 디자인과 챕터를 나누는 노란색 색지, 거기에 더해진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들이 웃음을 피식 나오게 했다. 읽는 내내 소장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경험을 비추어 보아, 높은 확률로 물질로 잘 만들어진 책은 글의 내용도 좋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아마도 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를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지, 그다지 올바른 것이 아닌지 나는 잘 모르겠다. 비난받아도 곤란하고, 칭찬받아도(하기야 칭찬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곤란하다. 그곳이 내가 다다른 곳이고, 결국 거기까지밖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