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163

아버지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 풀어드렸다. 한국 카지노에 한번도 안 가보고 죽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셨어도 계속 시큰둥하다가 생전 어머니께서 길가다가 주차하기 어려운 중국집의 간판 보면서 저기 찹쌀 탕수육 먹으러 가자고 하셨는데 짤 무시했다가 돌아가신 다음에 그거 하나 못 해드린 거 마음에 걸려 찹쌀 탕수육만 보면 엄마 생각나는 그런 일 만들면 안되겠다시퍼 작심하고 오게 되었다. 아버지 카지노 입구에서 잘 다녀오시라고 배웅해 드리는데 아버지 눈빛이 초롱 초롱 해지는 거 보니 잘 왔고 효도했다 싶다.

생각보다 차는 많이 막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길에서 4시간 정도는 운전했으니 많이 지친다. 강원도의 단풍 절정기가 이번주부터라는데 운전 중에 얼핏 보는 강원도의 단풍이 생각보다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강원도는 추운 지역이라 아직 늘푸른 침엽수가 지배적인 산림 생태라 표고버섯 대가리 버즘 마냥 군데군데 단풍이 들고 있는 것이다. 작년 아버지와 함께 갔던 내장산 단풍구경에서는 절정 전이었기 때문에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멋스러웠다. 유홍준의 나의문화답사기: 산사순례에서 그가 다녀본 곳 중에 정암사 단풍이 제일 멋있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다만 운전 중에 주차간산(走車看山)하는 강원도 산맥은 남성적으로 웅장하고 힘찬 기세가 있으며 전라도 산맥은 아담하고 정감있어 보드라운 엄마품 같았음을 한눈에 알아보겠다. 도착하여 정신 좀 차리려고 호텔 로비를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다보니 로봇 바리스타가 서비스하는 밴딩머신 있길래 진한 까페라테 한잔 주문하고 지금은 룸에 와서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먹을 만한 맛집을 검색해보니 허영만 백반기행에 나온 정선 맛집들이 눈에 많이 띈다. 우선 하이원 리조트 초입에 있는 우거지 갈비탕부터 먹고 여기에 왔다. 늘 그렇듯이 소문난 잔치에 별거 없다. 맛이 없다기 보다는 맛집이라고 대단한 기대를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다만 소주 한 잔에다 국물 떠 먹으면 목구녕에 뜨꺼운 칼칼함이 어울려 괜찮을 듯 하지만 이런 거 집 주위에 널려 있으니 꼭 먹어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추천해줄 정도는 아니다. 주위에 나같이 인터넷 검색하여 온 손님들이 대부분인 거 같은데 그래도 서민적인 식당 인테리어가 소탈해서 괜찮다. 내일 정암사 한 곳만 들르고 삼시새끼 추천 맛집에서 해결하고 다시 아버지 카지노에 배웅해드리고 이시간 즈음 다시 글을 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