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7화: 나리

in #dclick8 years ago (edited)

This post is the seventh of my short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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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는 그녀의 가명이다. 앞으로 할 이야기와 그녀의 이름은 상당히 잘 어울리기 때문에 실명으로 부를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나리는 소위 말하는 성격 좋은 타입이었다. 예쁘지는 않다는 말을 돌려서 하려고 함이 아니라, 정말로 붙임성이 있는 성격이었다는 얘기다. 적어도 내가 할 이야기 속의 그녀는 다수가 호감을 가질 만한 대학 신입생이었다. 게다가, '평가질'이라며 손가락질할까봐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외모도 괜찮았다. 나름 곱상한 얼굴에, 머리를 길게 기르고 캐주얼한 차림으로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리는 막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서울 북부의 어느 여대에 진학했다. 그런대로 인근 학교 학생들과 미팅을 다닐 수도 있었으련만, 그녀는 굳이 나서서 인터넷 상으로 한 단체의 오프 모임을 주선하게 된다.

그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온라인상으로도 느껴지는 나리의 인상이나 언변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여튼, 한 스무 명은 되는 인원이 나리의 제안에 홀린 듯이 모여들게 되었다.

나리가 제안하고 그들을 묶어준 요소는 다름 아닌 생일이었다. 같은 연도, 월, 일에 태어난 그들은 그 어느 취미 동호회의 일원들보다도 더 쉽게 '정모'를 결정했다. 그들 대다수가 막 대학에 진학한 새내기들이었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대학에서도 당장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 역시 그들의 열의에 불을 지폈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때 그들은 어렸으니까.

때는 첫 여름 방학이었다. 모임 전에 나리는 본인의 사진을 업로드했다. 물론 실물에 약간 실망할 수밖에 없을 만큼 과하게 잘 나온 사진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기 소리를 들을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가볍게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차이랄까.

첫 모임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물론 이 얘긴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모임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 후로도 이어졌을지 모르지만, 내가 전해 들은 것은 세 번째 모임까지의 일 뿐이다.

처음에는 불참했지만 두 번째 모임에 참석한 한 남학생이 있었다. 편의상 그를 승준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승준은 체대생이었다. 나리의 실물을 보고 왜 이렇게 사진과 다르냐며 꽤나 놀려대긴 했지만, 어쨌든 두 번째 모임이 파하고 나서 둘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아니, 사귀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정확히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알고 있다. 어쩌면 톡으로 말을 주고받다가, 마치 장난처럼 사귀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판단으로는 첫 번째 모임에 그 많다면 많은 인원이 참석한 이유, 그리고 나리와 승준이 사귀게 된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대학 새내기의 부푼 마음에 비해 그저 그랬던 현실이 바탕이었다면, 모처럼 모이게 된 진짜 동갑 친구들에 대한 기대감은 일종의 촉발제였다. 나리와 승준은 그 와중에, 유독 괜찮아 보이는 상대를 찾은 것이었다.

문제는 첫 모임에 참석했지만 두 번째에는 불참했던 유학생, P모 양으로 인해 불거졌다. 사실상 첫 모임에서 가장 튀었던 인물이었던 P양이 다시 그 모임에 나오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임에 나온 대다수의 아이들이 전부 '인 서울' 중위권 대학의 새내기들이었다면, P양은 누구나 이름만큼은 알고 있는 해외 명문대에 재학중이었다. 그것도 벌써 2학년. 여름 방학을 맞아 귀국한 그녀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강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생김새도 차림도 어찌나 화려했는지, 그 '순수'한 새내기들의 무리와는 썩 어울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한여름이라고 끈나시를 입고 나타난 P모 양은 동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어쨌든 여름 방학에 이루어졌던 첫 모임, 그리고 언젠가 있었던 두 번째 모임에 이어서 세 번째 모임이 결성된 것은 그 해 겨울 방학의 일이었다. 그때 나리와 승준은 이미 사귀고 있었는데, 정확히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것은 두 번째 와 세 번째 모임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그 둘이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어쨌든, 여름에 그들을 처음 만난 후로 겨울까지 별다른 소식도 없던 P모 양은 간단한 댓글 하나만 남기고는 나타났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날은 아마도 대학로에서 모였다고 들은 것 같다. P모 양이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다지만, 어쨌든 호기심을 가진 이들은 많았을 것이다. 나리가 모임 주최자로서 여러 테이블을 도는 동안, P모 양의 주변에는 남학생들만 바글바글 앉아 있었다고 하니까.

P모 양의 맞은 편에 앉은 것은 다름 아닌 승준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P모 양은 애초부터 승준을 만나러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만남 후로 사귀게 된 나리와 승준은 둘이 찍은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고, P모 양을 굳이 그 모임에 부르는 용기를 낸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그녀는 그저, 마치 그들 모두를 어제 본 것 마냥 유유히 나타났을 뿐이었다.

나리가 딱히 승준을 믿지 못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가 P모 양과 하는 대화에 최대한 귀를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여기저기 다니면서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도 했다. 불안감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승준을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자책했던 것 같다. 심지어 승준과 P모 양의 대화를 안 들으려고 노력하기까지 했다고...

그래서 나리의 귀에 들어온 단발적인 대화는 그녀의 그런 자책에도 불구하고, 귀에 쏙쏙 들어왔던 내용일 것이다. 내가 전해 들은 것만 보면, 사실 아리송하다. 정확히 뭐가 아리송하냐면, P모 양의 의도가.

일단 P모 양이 약간 취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른 인물들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원피스를 입고 온 그녀는 역시나 그 날의 그 고기집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였는데,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피스가 좀 말려 올라간 것을 승준이 지적해준 적이 한 번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람은 결과적으로 판단하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P모 양이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데에 의견이 거의 일치한다.

자리를 옮기는 길목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승준이 P모 양의 녹차 아이스크림을 한 입만 달라고 말한 것을 들은 몇몇이 있었다. 그 중에는 나리도 있었는데, 그녀가 곧바로 승준을 불러서 뭐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귄지 오래 되지 않아서, 아니면 승준이 애초에 그리 진지하지 않은 마음으로 사귀자고 한 것이라서, 또는 너그러운 여자친구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이 모든 것이 다 이유일 수 있곘다.

어쨌든, 승준의 그 발언 이후로는 무슨 라쇼몽을 방불케 할 만큼 서로 다른 증언들만 남아 있다. 승준이 택시를 잡아서 P모 양을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봤다는 아이도 있고, 둘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슬쩍 다른 곳으로 빠지는 걸 봤다는 아이도 있다. 제일 극단적인 것은 둘이 골목 어딘가에 멈춰서서 키스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한 명인데, 무척 취해 있었던 인물인지라 곧이 곧대로 믿기는 힘들다. 확실한 것은 2차로 이동한 장소에 승준과 P모 양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리는 물론 승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받아서 간단히 핑계를 댔는지, 아니면 아예 받지 않았는지,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톡이라도 남겼는지는 모르겠다. 나리에게 그에 대해 캐묻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것이 나리가 본 승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온라인에서 알게 되어서였는지, 유독 허망하게 끝난 만남이었다. 겨우 스무 살이었던 나리가 승준에게 얼마나 많은 톡과 전화를 남겼을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겠다. 아니, 아마 그조차도 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 날 나리가 승준을 더 주시하지 않은 이유도, 집착하는 여자친구로 보이기 싫어서였으니까.

승준 뿐 아니라 그 날은 나리가 본 P모 양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했어야겠지만, 나리는 몇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달 전, 코엑스 앞에서 P모 양을 또 만나게 된다.

서둘러서 어디론가 가는 P모 양을 먼저 알아보고 다가간 것은 나리였다. 그녀는 처음에 나리를 알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잠시 길에 서서 이야기까지 나눴다는데, 마치 겨울의 그 날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리가 그렇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것은 그 날 승준과 P모 양이 정말 어떻게 되었는지, 완전한 확신은 없었기 때문이리라. 만에 하나 승준이 P모 양을 택시 태워 보내고, 뭔가 혼자만의 다른 이유로 인해 그 날로 나리와 잠수 이별을 결심했을 일말의 가능성을 나리는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나리를 착한 여자라고 불러야 할지...

어쨌든 P모 양이 코엑스 앞에서 나리에게 한 이야기 중에는 '남자친구'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반쯤 되었던 둘은 이미 어느 정도 진로가 결정이 된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초부터 결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겠지만...어쨌든 P모 양의 이야기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남자친구라는 존재는 연상의 잘 나가는 전문직이었다고 하니, 그게 승준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설령 그 날 정말로 P모 양이 승준과 눈이 맞았다 하더라도, 수 년씩이나 만났을 것 같지는 않기도 하고...

내가 나리였다면, 따귀라도 한 대 때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 날의 일을 물어보지 않고서야 그렇게 할 이유가 부족한 것 역시 사실이니, 나리가 한 행동은 어쩌면 일반적인 범주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나리는 지나치게 착한 여자다. P모 양이 한 짓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으니까.

나리는 코엑스 앞에서 마치 조금은 반가운 듯 P모 양을 대했고, 영혼 없는 '언제 한 번 보자'를 서로 남기고는 돌아섰다고 한다. 만일 내가 그 자리에 나리와 함께 있었다면, P모 양의 눈에서 일말의 죄책감, 또는 정말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당당함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아니면 적어도 겨울의 그 날 승준과 따로 빠져나갔느냐고 물어볼 수라도 있었을지.

"저기, 잠깐!"

P모 양을 불러세우고, 돌아보는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선다. 그리고는 눈을 들여다 보면서 묻는다.

"너, 그 날..."

망상일 뿐이다. 막상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어쩔 수 없었을지도. 근거는 없지만, 어쩌면 죄책감도, 당당함도 아닌 다른 것이 P모 양의 눈에 깃들어 있었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지금도 한 번씩 나리와 승준, P모 양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면, 인간 중에도 육식과 초식 동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리와 헤어지고 걸어가는 P모 양은 혹시라도 웃고 있지는 않았을까.


접한 실화를 각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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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양이 쓰레기인가요
승준이가 쓰레기인가요

그냥 스무 살의 애들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ㅎㅎㅎ

저는 스무살때 여자친구사귀면 큰일나는줄 알았는데 말이죠 ㅠ

왜요, 엄마가 혼내서?

아니요 차일까봐요 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자신 있으신 듯...

와 마지막 소오름..
P모양 무섭네요 진짜
근데 이런사람 둘러보면
주변에 꼭 있는듯!
아근데 ㅋㅋㅋㅋ 중간에
영혼없는 언제한번보자라닠ㅋㅋ
너무 솔직함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음....그냥 어릴 때의 치기라고 믿고 싶네요. '밥 한번 먹자'에 버금가는 '언제 한번 보자' ㅋㅋㅋㅋㅋ

P양이 누군지 알겠다ㅎㅎㅎ

PBB 아닌가요?

머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이 모르는 사람인뎁

형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님. ㅋㅋ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은 묘한 기분을 주는듯해요. 아마 저 글속 인물들도 그런 묘함속에 사귐같은게 생겼을거 같고요. 유학생은 유학년수가 얼마 안된거 같네요.

잠들기 직전에 봤네요. 당사자들이 봐도 자기 얘기라고 확신할 수 없게 전반적으로 각색했지만, 모임 자체에 어떤 묘함이 있었음은 사실인 것 같네요. ㅎㅎ

오프모임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ㄷㄷ


yoo 승준인가...?
나리는 날나리
엌ㅋㅋㅋㅋㅋㅋ

........
........

ㅋㅋㅋㅋㅋㅋㅋ
나이 먹어서 그런가
왜 이런게 웃기지 ㅠㅠ

한밤중의 포스팅....ㅎㅎ
소설인가 실화인가 하면서 한번에 쭈욱 봤습니다.
소설이라기엔 너무 디테일이 좋아서.

승준과 나리는 둘 사이의 연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거죠.
쉽게 닿고 쉽게 끊어지고...
추억 아니 기억이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각색돼서 실제와 달라지기도 하니 과거의 일은 과거로 그냥 넘겨야죠... ㅎㅎ

ㅎㅎ 이젠 꼭 밤에 포스팅하려구요!

실제로 의도적인 각색도 많이...ㅋㅋ

제이미님! 저 기억 나실련지요.....^^ 얼마 전부터 다시 활동하구 있어요. 아직 계신다니 정말 반가워요!!

엇, 엄청 오랜만이네요! ㅋㅋㅋㅋㅋㅋ 활동 안하시는 분들 정리하면서 팔로우가 끊겨 있네요. 다시 팔할게요. 반가워요. ㅋㅋㅋ(당연히 아직 있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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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지나가는 추억이네요.
젊은 시절 한 두 번 식은 겪는 그런...

오래 전 일은 아니라서 각색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사자들도 까먹을 수 있겠죠. ㅎㅎ

승주이 마! 연락 단디해라!
나리가 보살인건가...
나같으면 엄청 답답했을듯

젬형 소설은 왜케 재밌찡 ㅋㅋㅋㅋ

ㅋㅋㅋ 찌니 형의 부산아이가 댓글도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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