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무게
1
포장마차에서 참새고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도심지 어느 포장마차에서나 쉽게 참새를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세어야 할 만큼 참새가 많았었다. 어느 날 참새 떼를 찾아보기 힘들어지면서 아마도 포장마차가 원인이 아닐까 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참새가 말만 참새지 실제는 메추리네 병아리네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게 뒤꼍의 처마 사이로 참새들이 들락거린다. 그러고 보니 까치집은 많이 봤어도 참새 집은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나 보다. 처마 사이의 좁은 틈 같은 곳.
둥지는 안 보이고 좁은 공간을 참새만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커다란 변압기 위에도 몇 마리 앉았고 변압기로 연결된 전선 위에도 두 마리가 앉아있다. 자세히 보기 위해 다섯 걸음쯤 다가갔더니,
짹 짹
이러던 새들이
째래래래랙 째래래래랙
참새들은 내 눈 밖으로 사라졌고 울음소리는 더 다급해져서 돌아왔다.
노안 탓이겠지만 뭘 봐도 유심히 보게 되어서 슬그머니 눈 안에 들어온 한 놈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가게 옆에 서 있는 이파리 풍성한 나무에 유독 참새들이 많은 이유는 바로 옆이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처마 밑에서 잘 지냈으면 한다.
참새와 나와의 인연의 무게는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반가움을 더해서 50g 정도?
난 한 번도 참새고기를 먹어 보지 않았다.
2
큰 형님댁과 성당에서 알게 된 한 지인이 있었다. 이 지인은 형님께 음식점을 개업할 예정이라고 술자리에서 흘려 얘기했고 형님은 그럼 작은 동서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작년 5월 어느 날 나는 그 지인과 면접을 봤다. 우여곡절 끝에 7월에 입사했고 그 지인은 지금 나의 사장님이 되었다.
입사 당시 내가 목표했던 바는 가게의 정상화였다. 적자에 허덕이고 있던 때라 사람을 과감히 줄였고 함박, 돈까스 위주의 메뉴에 피자, 파스타를 추가했다. 지금은 피자와 파스타 매출이 다른 메뉴에 비해 월등하다.
작년 8월 초, 주방 인원 네 분 중 메인 셰프 한 분과 찬모 한 분을 내보냈다. 주방보조 한 분은 주말 알바로 돌리고 11월이 되어서야 재입사 시켰다. 유일하게 실장님만 계속 함께했다. 5성급 호텔 주방 출신이라던 셰프는 악명 높은 음식 맛으로 가게를 오픈하자마자 넉다운 시켰다.
주방은 위계질서가 엄격해서 상급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실장님은 조용히 있다가 셰프가 나간 후 나와 함께 메뉴 리뉴얼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휴무 없이 쉬는 날만 돌려가면서 일하지만, 작년 8월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가게 쉬는 날 나는 혼자 출근해서 파스타 레시피를 만들고 조리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예전 내가 알고 있던 레시피 중 괜찮은 것은 제외하고 보완이 필요한 것들을 집중적으로 고쳤다.
알고 봤더니 실장님은 20년 가까이 빵을 만들어 왔었다. 한식 경험도 꽤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음식 쪽으로만 줄곧 종사해 왔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도움이 되었다. 피자 도우를 직접 만들게 된 것도 실장님 덕이다.
한 번 망가진 가게는 좀처럼 살아나기 힘들다. 더욱이 이곳은 도심에서 꽤 벗어난 외곽이라 뜨내기손님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준 관광지라고는 하지만 재구매 고객을 확보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10월경 부터 매출이 조금씩 살아났다. 그러나 곧 겨울이었고 우리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다. 나는 그저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보며 레시피를 미세조정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올겨울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월별 매출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을 세 번 정도밖에 넘어보지 못했다. 사장님은 군소리 없이 기다려 주었다. 3월이 지나며 가게는 정상화의 기미를 보였다. 재방문하는 손님이 많아졌고 유동인구 또한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번 5월 매출은 매우 유의미하다.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뿐 아니라,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실장님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건강상의 이유라고 했으나 갑작스러워서 적잖이 당황했다. 며칠 후 사장님과 실장님의 독대가 이루어졌고 그 안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문제의 핵심은 내가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연배도 위고 경력 또한 나와는 비교되지 않으니 내가 하는 일이 가끔 고까웠던 것이다.
매출 대비 식자재 비율이 40%가 넘던 가게를 30% 초반으로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숨통을 조였나 보다. 내 맘대로 권한을 행사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지만, 내가 자신의 레시피를 빼간다는 터무니없는 모함은 억울했다. 퇴직금 받기 위해 1년을 채웠다고 생각했던 나도 실장님을 잘 몰랐던 건 마찬가지다.
내가 행사하고 있는 권한을 어느 정도 내려놓는 선에서 마무리되었고 실장님은 계속 일을 하시기로 했다. 실장님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겠지만 나는 실장님과의 인연의 무게를 줄여야 했다. 그렇다고 서로 불편하지는 않다. 나는 "권한의 행사"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려놓을수록 편하다. 단지 가게가 자리를 잡는 시점에 그리 요구하는 게 속 보이긴 한다. 여태껏 참고 있었다는 건 가게가 어려운 사정이니 여차하면 발을 빼겠다는 의미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이제는 자신의 지분을 요구할 때가 되었다는 클레임이다. 실장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세요."라고 하는 내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약간의 내홍을 겪었지만, 다시 힘을 합쳐 잘 나가는 음식점 하나 만들고 싶다.
불편함 없는 관계라고 해도 한 바가지 덜어낸 실장님과의 인연의 무게는 3g 정도.
이렇게라도 털어놓을 수 있으니 속 시원하다.
좋은 음식 신뢰할 수있는 게시물.
글을 읽으니 유니콘님이 만드는 음식 먹어보고 싶네요. 이런 마음을 가진 분이 만드는 음식이라면 자주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욕심이란 정말... 에효. 실장님과 유니콘님의 인연이 더 깊어지고 함께 어울려지길 바랬습니다만 글 말미에서 늘 보고, 듣던 이야기의 끝으로 결론나서 아쉽네요.
안타깝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더군요..ㅎㅎ
별 일 없이 친하게 지내고는 있지만 관계의 내면은, 좀 체념한 상태입니다.
물론 모두 함께 잘 되는 방향으로 앞으로도 만들어 갈 예정이긴 합니다.
그 분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니 제가 인정하는 수밖에는 없겠죠..ㅎㅎ
참새가 놀랬습니다 ㅎㅎ
째래래랙 ㅎㅎㅎ
구성원간의 작은 알력이 사실 알게 모르게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도 일순위는 사람들간의 인연이 아닐까 해요^^*
홧팅!!입니다
상대방이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 때는 좀 서운하기도 합니다만,,,
사는 게 다 그런거겠죠...ㅎㅎ
가게 정상화 시키려고 열심히 하셨네요. 결국 @sadmt 님하고 실장님 힘싸움인데...
힘을 어디다 실어줘야 할지 사장님의 결단이 점점 필요한 시기같습니다. 결국 둘중에 한 사람이 나가야 하는 상황이 오지나 않을지...
화이팅 입니다.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겠죠.. 실장님께 힘을 더 실어드리려고 합니다..ㅎㅎ
둘 중 하나가 나가야 된다면 제가 나갈 거 같지는 않으니 다 아울러서 가볼려고 합니다..
맞죠. 같이 어울어져 나가야 하는 사람들끼리 감정 소모 시키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그리 많지 않겠죠. 오늘도 화이팅 입니다.
헛 참새고기...!?
처음들어봤어요!!
요즘은 보기 힘들죠..
아직 있다고 해도 누가 먹기나 하겠습니까..ㅎ
그런 갈등상황도 의연히 넘기시는 군요
저는 유니콘님처럼 못할 것 같은 생각이...
그 실장ㄴ한테 서운하고 짜증날 것 같아서요...^-^;;
약간 서운하기는 했지만 대인배가 참아야죠...^^;; 난 대인배...ㅋ
가게를 살리는 게 급선무니까요..ㅎㅎ
참새고기 맛있어요?..ㅋㅋ
째래래래랙!@!
안 먹어 봤슴다..^^;;
궁금하긴 했지만...ㅎ
중간까진 실장님과 으쌰으쌰하는 느낌이었는데 뒤에서 분위기가 싸해졌군요. 사람 속 알기가 이렇게 힘드네요...
좁은 곳에서 가족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다 보니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툼이 간혹 있긴 합니다. 분위기 안 좋아졌지만 그냥 참고 가려구요.. 한살이라도 어린 제가 양보해야죠..ㅎㅎ
그래도 뭔가 되어가려나 봅니다. 정말 힘든 시기에는 알력 다툼 할 생각도 안 들텐데 말이죠.
참새가 주위에 집을 만들었다니 부럽네요. 저희 집엔 말벌이 집을 지어서 ㅡ.,ㅡ 오늘 페스트 컨트롤이 다녀갔는데 외근 나갔던 말벌이 저녁에 돌아와 집 어딨냐고 난리입니다 ㅜㅜ
ㅋㅋ 말벌이... 황당해 하겠네요..
이 동네는 자연친화적이라 새도 있고 다양한 곤충도 많아요.. 그 중에 제일은 거미입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거미집이 하루에 몇 개씩이나 생깁니다. 그거 치우는 것도 일이죠..ㅎㅎ
저는 어릴 때 집 마당이 엄청 컸는데 텃밭까지 합해서. 겨울엔 아빠랑 오빠가 그물을 쳐서 이런저런 알 수 없는 이름의 새들의 다리를 구워 먹었던 기억이,,,,,
인연,,,,,힘들지요 사람과의 관계가 세상에서 젤 힘들어요 저는.
ㅋㅋ 넘 태연하게 말씀하시네요.. 새 다리를 구워드신걸요.. 맛이 궁금하네요.ㅎㅎ
사람 관계는 힘들긴 하지만 점점 가볍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생기다 보니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나이 탓이겠죠..ㅎㅎ
소 보고 저런 소를 먹어야 맛있는데 했던 저를 잊으신 건 아니지요? ㅎㅎ
맛은 워낙 어릴적이라 기억에 없어요
아마 초딩 2학년 때까지였던 것 같아요
기억납니다..ㅋㅋ
고기들이야 먹으라고 있는 것들이니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