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사) 한국의 분단 1945 - 1948, post # 24

웨더스비 교수 씀

이번 포스팅은 소련의 주변지역인 이란을 둘러싼 소련의 정책과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정리했습니다. 당시의 한국 상황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한국과 유사한 지역에 대해 미국과 소련이 어떻게 대립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그런 의미에서 다루어진 것입니다. 이란은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세계전략을 시험한 모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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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서는 미국은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의 말미에 동맹국들의 점령으로 만들어진 경계선 넘어 자신이 통제하는 지역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1946년 부터 점점 우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 보았다.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마자, 영국은 독일군이 동쪽으로 공격하는 것을 바라며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맹으로 삼았다. 그리고 소련이 전쟁을 확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미국은 어마어마한 양의 무기와 보급품을 소련에 보냈다. 전쟁물자의 일부는 북해와 태평양의 소련 항구로 보내졌으나, 이중 상당량은 페르시아만의 이란 항구로 보내졌고 거기에서 북쪽으로 이란을 통해 소련으로 수송되었다. 이 보급품이 적군(소련군)에게 도달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세 동맹국들은 동맹국의 군대가 보급품 수송작전에 이용되는 도로와 철도를 따라 주둔하는 것을 이란이 허용하는 협정을 맺었다.

독일군이 항복한 며칠 후, 이란 정부는 공식적으로 동맹국의 군대가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며 동맹국들은 일본이 항복한 6개월 후인 1946년 3월 2일까지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의 군대가 약속에 따라 철수한 것과 달리, 소련은 테헤란으로부터 자치를 요구하며 인접한 소련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과 긴밀한 관계를 요구하는 이란의 북부지역에 공산당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으며, 이는 이지역을 합병하기 위한 준비로 보였다. 이란은 소련의 문제를 유엔에 제기했으며, 미국무장관 번즈로 하여금 소련이 이란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토록 했다. 트루만 대통령은 보좌관들에게 개인적으로 러시아인들이 “세계 정복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아닌지 알아볼 시기가 왔다고 이야기했다.

다음달 이란의 아흐마드 콰밤 수상은 모스크바와 소련군의 철수와 교환으로 소련에 두개의 중요한 양보를 하는 협정에 합의했다. 테헤란은 북부 이란의 인구밀집지역인 아제리에 광범위한 자치를 허용하고 북부 이란의 넓은 기름 매장지를 공동으로 탐사하기 위한 소련-이란 오일 컴파니를 창설하기로 했으며 이는 1933년 영국과의 합의와 유사했다.

그러나 위기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1946년 12월 미국의 강력한 외교적 지원에 고무된 테헤란은 아제리의 자치에 관한 약속을 거부했다. 더욱이 이란은 군대를 보내 분리주의 운동을 억압하였으며, 이는 분리주의 운동의 지도자가 소련으로 탈주하게 만들었다. 결국 1947년 10월 이란은 공동 소련-이란 오일 캄퍼니를 설립한다는 합의도 거부했다.

1990년대에 공개된 러시아 문서고 자료는 스탈린이 사실상 소련이 이란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서방이 저지할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영국의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크레믈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남부지역에서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트루만 행정부는 소련의 이러한 조치들이 전체 서남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조치라고 두려워하면서 위기를 과장했다. 그리하여 미국은 이란이 소련과의 협정을 파기하자 테헤란이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고자 했던 군사지원을 이란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공약은 터키에 대한 유사한 지원과 같이 이루어졌다. 다음의 포스팅은 전쟁이후 소련이 어떻게 터키에 압력을 가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터키해협에 군대를 주둔할 것을 허용토록 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영국이 지중해에서 수행하던 전통적인 역할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되자, 미국은 터키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자유민”들에 대한 광범위한 공약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는 물론 한국에서의 상황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미쳤다.

[참고자료]
이 포스팅은 William R. Keylor의 초기 냉전에 관한 뛰어난 연구에 근거했다.
William R. Keylor, A World of Nations: The International Order Since 1945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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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뒤집어지는 이란을 생각하면 참 미묘한 이야기입니다.

역사라는게 그렇지요

always fine work...and thank you for your support..

잘봤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만큼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것도 없죠.

역사를 단순한 과거사로 돌리기엔
다가올 미래와의 관련성을 끊을 수 없겠지요.
생명체가 지닌 DNA처럼

감사합니다.

역사를 단순한 과거사로 돌리기엔
다가올 미래와의 관련성을 끊을 수 없겠지요.
생명체가 지닌 DNA처럼

감사합니다.

역사를 단순한 과거사로 돌리기엔
다가올 미래와의 관련성을 끊을 수 없겠지요.
생명체가 지닌 DNA처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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