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의 뒷이야기

in #kr6 years ago (edited)

쌓아두는 말들


   나는 나름 컨텐츠를 만든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계정을 통해 나가는 글의 경우에는 제작기랄게 없지만, 본 계정에 올리는 글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경험들이 주렁주렁 달린다. 자료를 찾는 이야기,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 글을 편집하는 이야기 등. 그동안은 연관된 이야기들이 생기더라도 이를 언급함은 사족이라 생각하여 따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은 쌓이면 병이 된다고 하더라. 심지어 글도 적어두고 주머니 안에 썩히면 도깨비가 된다고 하더라. 그러니 오늘은 어제 잠결에 올린 글의 제작 뒷이야기를 조금 해보려한다. 다만 여러분들께 나의 노고를 알아달라 떼쓰는 것은 결코 아니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종의 혼잣말이니 재미로만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그동안 내가 쓴 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긴 목록의 참고문헌이었다. 종 예외주의 의 경우 11개에서 연재가 끝날 무렵 15개의 목록이 마지막에 달렸다. 물론 내가 실제로 참고했던 모든 문헌을 적어 넣은 것은 아니다. 블로그 특성상 엄밀하고 빡빡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기존의 문헌을 참고하고 인용함은 언제나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나의 글짓기 취향에서도 밝혔듯, 내가 사색을 추구함에 있어 거인의 어깨를 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3)에는 참고문헌이 없다. 평소 나의 참고문헌 목록에 투덜대던 @zzing이라면 충분히 의아하게 생각할 법하다. 이번 글은 무엇을 보며 쓰고 있는가?

   사실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100년도 더 지나버린 일반 지식을 다루고 있어 참고 문헌을 달기 애매한 면이 있다. 특히 나는 관련 전공을 하였던 터라 글이 다루는 지식의 출처가 대부분 어려서부터 대학까지 들었던 수업에 있다. 일전에 내가 법학 전공이라 언급한 적이 있어 혼란스러운 분이 있을 텐데, 법학 관련된 전공으로 일을 하다 그만두고 선택한 내 다음 전공이 전자공학이다. 나름 전자기학 1,2와 양자역학 같은 물리 과목을 전부 A 받은 입장에서 글을 서술하고 있다. 석박까지 하신 분들을 뵙기에는 민망하지만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기로는 충분하다 믿는다.

   그래도 간혹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나오면 책을 뒤져보긴 하는데, 그 책은 전공 공부를 하며 보았던 Cheng과 Griffiths, 그리고 Feyman의 빨간책 따위이다. 뭐 지난날 Feyman은 교재로 보았다기보다 그의 명성에서 오는 호기심과 나만의 은밀한 허세를 충족시키기 위함이었지만 말이다.

   아래는 내가 훑어본 그리피스와 파인만.

그리피스
파인만

   이렇게 글과 관련된 부분을 한 번 살펴 보았다.

상식의 간극


   결국 포스팅은 어젯밤에 올라갔으나, 사실 이미 전날 글은 한 번 완성되었었다. “한 번 완성되었었다”라니, 당최 어색한 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니, 실제로 나는 그제 글쓰기버튼만 누르면 올릴 수 있는 글을 써놓고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아침에 일어나 싹 지웠다는 말이다.

   사정은 이렇다. @jamieinthedark님의 댓글을 받고 4회 분이라고 대답했을 때만해도 3편은 맥스웰 방정식부터 시작할 요량이었다. 깊이 공부한 것도 아닌 주제에 이공계에 발 좀 담그고 있다고, 내 글을 볼 사람들이 페러데이 법칙까지는 잘 알고 있을거라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아니면 ‘벡터만 안다루면 되었지’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는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문과를 나온 대학생을 기준으로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고서 글을 시작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마침 대학 동아리 후배를 만났고 그가 가진 전자기학의 지식을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맙소사... 그는 쿨롱의 법칙부터 모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전자기학의 시작부터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과외를 하여도 항상 이과 학생을 가르쳤더니 감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당초의 계획에 혼란이 왔고 맥스웰 방정식의 배경에 대하여 간략하게 나마 설명해야겠다는 새로운 계획이 발생했다. 이렇게 한 회 분이 증가하였다.

   여기서 나는 사람마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채 자신이 규정하고 있는 상식의 범위가 참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아마 역사가 전공인 그 후배는 비어있는 내 역사 지식을 상식으로 여기고 있겠지.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전자기학의 시작부터 맥스웰에 이르기까지 글을 줄줄 써 나갔다. 그제는 그렇게 줄줄 써내려간 글이 완성되었고, 하루의 여유를 둔 채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어제 아침, 퇴고를 위해 글을 확인하다 갑자기 확 짜증이 올라왔다. ‘이게 아니야!!’ 내용이 너무 장황했다. 전체 글에서 내용이 차지해야 하는 비중을 보았을 때 너무너무너무 길었다. 전체 구도상 밸런스가 무너졌다 생각하니 부신피질에서 코티솔이 샘솟았고 결국 내 손은 Ctrl+A와 Delete 버튼을 연타했다.

   이후 차분히 아침을 먹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더 간결한 글을 목표로 문장을 적었다. 역시 글이 짧아진 만큼 이해의 난이도는 증가했다. 그저 더 잘 쓰지 못하는 내 능력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언어라는 장난감


   나는 우리말을 참 좋아한다. 특히 나는 우리말에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어미의 어감을 좋아한다. 보통은 외국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어미의 변화를 싫어한다. 비효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강화하는 요소라는 점에서이다. 하지만 나는 언어가 결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 생각하는 입장에서 어미 변화가 만드는 어감의 차이를 소중히 여긴다.

   요즘 같은 동영상의 시대에는 그 중요도가 떨어지고는 있지만, 어찌되었든 글은 앞으로도 계속 생산되고 글이 가진 가치도 어느정도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글은 동영상에 비해 갖는 분명한 문제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자의 말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언어라 함은 말소리 뿐 아니라 표정과 몸짓를 포함하여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글에는 표정과 몸짓이 없다. 그래서 글로써 오가는 대화에서 쉽게 오해가 발생한다. 만약 표정과 몸짓에 대응하는 정보를 조금이라도 글에 실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예를 하나 들어보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어떤 사람에게 실망하여 그 감정에서 기인한 거리감을 표현하고 싶다. 아마 대면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표정만으로 상대는 충분히 이를 알아차렸을 테지만 이 정보를 글에 담기란 쉽지 않다. 이 때 우리말은 이를 기가 막히게 해결한다. 존댓말을 쓰는 것이다. 존댓말은 단순히 상대를 높이는 표현만이 아니라 상대와 나의 심리적 거리가 반영된 표현이다. 비격식체인 해요체는 그나마 가깝고 하십시오체 정도가 되면 이제 완전한 남이다.

   이처럼 어미의 표현은 높임말/낮춤말과 격식/비격식으로만 정보를 구분하여 담지 않는다. 이로써 우리는 거리감 뿐 아니라 강건함과 온건함을 구분하고 그 사람의 다양한 캐릭터를 전달한다. 이론적으로 따지지 않아도 원어민 발화자들은 자연스럽게 원하는 정보를 어미에 담고, 글에서는 표정과 상황을 대체한다.


   이 예시는 어미가 글에서 어떠한 작용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녀는 “-느뇨”라는 다소 고풍스러운 어미를 선택했다. “-느뇨”는 분류상 격식 아주낮춤말인 해라체에 속하는데, 사실 “-느뇨”와 동일선상에 “-느냐”, “-냐”, “-니”와 같은 어미가 더 있다. 만약 그녀가 “포스팅하였느냐”, “포스팅했냐”, “포스팅했니” 등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해보자. 같은 문체이지만 이들 문장은 더 이상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녀의 “-느뇨”는 옛스런 말투로써 장난스러움을 표현함과 동시에, “-느냐”에서 느껴지는 강한 어조가 아닌 부드러운 어조를 담아낸다. 아마 일상에서 저렇게 이야기한다면 쉽지 않은 사회생활을 예상할 수 있지만, 글로 오가는 대화에서는 이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왜 뜬금없이 우리말 사랑을 역설하는고 하니, 이번 나의 포스팅에도 인물 간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문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로 가정된 ‘나’를 중심으로 사용되는 문체는 아래와 같다. 사실상 우리말 문체 중 격식 예사높임 하오체를 제외한 전부를 사용하고 있다.

화자
청자
분류
문체
독자
격식 아주높임
하십시오체
학생
비격식 두루낮춤
해체
"
과학신
겁나 높임
하소서체
학생
비격식 두루높임
해요체
코페르니쿠스
"
격식 아주낮춤
해라체
아인슈타인
"
격식 예사낮춤
하게체

   이 문체들 중 특기할만한 것은 나와 과학신 사이에 사용되는 하소서체, 해라체, 하게체이다. 첫째로 하소서체는 이제 죽은 언어에 가깝지만 그래도 왕과 신에게 사용하는 말투로서 가장 적합했다. 찬물이라도 떠놓고 기도할때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해야지 “빕니다. 빕니다.”라든가 “빌어요. 빌어요.”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현실에서 하소서체로 기도를 하지는 않지만 만약 신을 직접 대면했다고 상상했을 때, 감히 그와 느껴지는 거리감을 하십시오체로 좁힐 수 없다고 느껴졌다. 둘째로 코페르니쿠스의 해라체는 그와 나 사이 존재하는 400살 가량의 나이차와, 그가 계급사회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선택되었다. 그는 아마 약간 권위주의적인 인물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보았다. 셋째로 아인슈타인의 하게체는 그가 나와 100살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점과 신분제가 없는 시대에 살았다는 점을 고려하였고, 또 그를 품격있는 교수님의 모습으로 그려보고 싶어 선택하였다.

   무척 쓸데없는 짓 같지만, 나는 글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를 전부 염두에 두었다. 우선 본래 한국어라는 언어 자체가 어미 표현에 민감한 까닭에 자연스러운 글을 위해서였으며, 또한 이를 넘어 어미를 다양화함으로써 느껴지는 새로운 재미를 실험하고 연습해 보고 싶었다. 글을 쓰고 보니 생각보다 언어적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글을 쓸 때에는 다른 각도의 난이도 덕에 약간의 즐거움이 있었다.

표안나는 디테일


   나는 종종 정말 표도 안나고 중요하지도 않은 곳에 매달리곤 한다. 아래 표를 보고 무언가 생각이 든다면 스팀잇에서 표 좀 만들어 본 사람이 분명하다.

 
이름
미분 방정식
(ⅰ)
가우스 법칙
Gauss's law
(ⅱ)
가우스 자기 법칙
Gauss's law for magnetism
(ⅲ)
페러데이 전자기 유도 법칙
Faraday's law of induction
(ⅳ)
앙페르 회로 법칙
Ampère's circuital law

표1. 맥스웰 방정식

   맥스웰 방정식 표에서 맨 오른쪽 열 수식을 보자. 칸 안에 채워진 수식은 절대 마크다운으로 만들 수 없는 분수 표현이다. 즉, 다른 데에서 만들어 붙여넣은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저것이 그림이라는 말은 내가 스팀잇 표 형식에 맞춰 배경색을 채워넣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워드에서 만든 수식을 포토샵으로 옮겨 페인트질 하였는데, 글자가 옅어지는 부작용을 해결할 수 없어 시간 꽤나 들었다. 정성들여 올가미로 글자의 영역을 보호하고, 옅어진 부분은 픽섹 하나하나 도트를 찍어 보정했다. 스팀잇 표에 붙여 넣어보니 그럴듯했다. 만든 사람만 알 정도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쁨의 순간도 잠시, 곧 나는 이것이 바보같은 짓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왜 포토샵을 하고 있었지...’ 나는 다시 워드를 켜고 텍스트 박스를 만들어 수식을 삽입하고, 간단하게 배경색을 지정하였다...

   어리석음이 포함된 시간이지만 어쨌든 나는 독자들이 1초도 안보고 내릴 표를 만드는데 이토록 집착했다. 정말 티도 안나고 쓸데도 없다. 참 나라는 사람은 속으로 ‘이러지 말자, 이러지 말자’고 하는데, 꼭 집착이 일어난다. 그리고 집착을 감행한다. 걸작에 대한 열정도 아닌 것이 쓸데없이 연재나 늦추는 못된 성격이다. 다음 글에서는 의미없는 고집일랑 발동하지 않길.

덧,


마지막 요점 정리라니, 그도 한 때 과외 선생을 했었다던데, 학생을 가르치던 요령이 남아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본문 중에 던진 애드립인데,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아인슈타인이 올렸던 신문 광고 첨부합니다.

개인 교습
☞ 수학과 물리학
전 학년 학생 대상으로 철저한 지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위스) 연방 이공학 교사 자격증 소지.
게레히티크카이츠 가(街) 32번지, 1층.
시범 강의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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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우고갑니다. 글쓰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출연료 10스달 입금바랍니다.

그랬군.
그랬어.
그랬구만 이친구
포토샵은 참 잘해요 왕자ㅋㅋ
그나저나
바쁠텐데요?ㅋㅋ어찌 시간이 남으셔서ㅋㅋ
ㅎㅎㅎㅎ 아무튼, 잘자요

조각조각 모으고 모아서...포스팅이 2주 넘게 걸렸잖슴?

뒷이야기마저 이렇게 멋있을 줄이야
잘 깨어나셨습니다!!!!!!!!!!!!!!!!!!!!!!!!!

앞 이야기는 사람들이 너무 어려워하더라고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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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재밌군요 ㅋㅋㅋ 기상왕자는 팔로우가 안되어있었어요. 팔로우 팔로우

감사합니다ㅋㅋㅋ

유쾌, 상쾌! 여튼 그런 듯.

깨어있을 때는 좀 더 밝은 톤을 유지하려 합니다ㅎㅎㅎㅎ

저도 예전 직장에서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상식 범위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었어요.

교양을 갖추기가 가면갈수록 힘들어지는 사회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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