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인생템 #5 "Do you like Do you?"
Do you like Do you?
나는 곡물류를 좋아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탄수화물중독이란 전문 용어로 불리는 일종의 증상 혹은 병이라는걸 알았지만, 그런 개념이 생기기 전 내게 곡물은 정말 최고의 식품이었다.
곡물은 일종의 씨앗 상태이고 여기서 싹이 나서 풀이 되고 나면 비슷해 보여도 몸속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좋아했던 곡물이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도, 비만에도 그렇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삼종 세트를 고르라면 콩물, 미숫가루, 그리고 두유였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했지만, 우뭇가사리라고도 불리는 그 양갱 - 이것도 한 물 갔지 싶다 - 을 만드는 재료 중 하나로 해초종류로 한청이라고도 불렀던 것 같다. 알로에와 태국 쌀국수면을 적당히 섞어놓은듯 한 식감이 아니었을까 기억되는 그 투명색 우뭇가사리가 들큰 - 왠지 이 표현도 오래된 것 같은 - 하고 고소한 혀속에 씹힐 때면 난 마치 오르가즘 같은 걸 느끼기라도 하는 듯 거의 온몸으로 반응했다.
미숫가루는 또 어떤가. 그 식감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잔잔한 알갱이가 약간 남은 듯한 묘한 느낌의 달콤함과 고소함은 콩물과 2:1로 바꿔준다면 바꿨을 맛이다. 콩물보다 미숫가루를 더 좋아했다는 의미다. 미숫가루는 물에 타면 가루가 아니니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숫가루를 물에 탄 상태는 ‘미수’라고 부른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이게 선식이란 이름으로 바뀌더니 값이 엄청나게 비싸져서 돈주고는 못사먹을 지경이 되었지만 다행이 가끔 ‘곡물쉐이크’란 이름으로 비슷하게 만들어 파니 나같은 탄중독자들은 정말 물에 행궈서 마시고 빈컵을 쪽쪽 빨 지경이다. 최근에는 스틱포장으로도 많이 나와서 병에 넣고 흔들어서 먹을 수 있게 나오는 걸 보니, 미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 것 같아. 사라져버릴 걱정은 다행이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역시 두유다. 정말 콩물이나 미수와는 비교도 안되게 간편한 요 물건은 내가 두유에 환장(?) 할 무렵엔 베ㅇ밀 A,B가 많았고, 요샌 안보이는 참두유란 두 가지가 기억난다. 난 가능하면 베ㅇ밀 B만 먹었다. A는 어린 내 입맛엔 그냥 삶은 콩을 짜먹는 듯한 닝닝한 맛이어서 냉장고 앞에 A가 있으면 뒤쪽까지 다 뒤져서 B를 기어이 찾아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곤 했다. 이것도 나같은 사람이 많았던지 어느날 구멍가게엔 A는 없고 B만 판을 쳤다. 어린 나는 그 '베지'가 당연히 배에 좋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상도에서 배를 나쁜말로 '배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10살 무렵 사춘기 전후로 생긴다는 도벽덕에 난 가게에 가서 늘 참두유를 두 개 뽀려서 배앞 벨트에 살짝 끼워넣고 천연덕스럽게 나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걸 눈치 못채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을 것 같다. 오늘날은 애들이 그런 유혹을 받으면 마치 미래의 조세형이라도 될 것 처럼 난리를 치지만, 그 땐 그정도는 가게 주인이 한 번 혼내는 정도에서 마무리 되고는 했다. 우리집에 쌀을 배달해주던 주인 아저씨는 가게에선 나를 보고 돈내놓으라고 경찰에 잡아가겠다고 혼구멍을 내곤 했지만, 집에 와서 어른들에게 쌀을 전달하면서 내 얼굴을 봐도 결코 내 비행 혹은 범죄를 발설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나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두유를 사랑한다. 100킬로가 넘는 거구에 가슴이 여유증(?)같다고 제발 두유좀 그만 먹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그런 꿈을 꾸진 않지만 딱 5년전 내 꿈 중에 하나는 복권에 당첨되면 두유, 라면, 맥주를 각 500만원어치를 사서 집에 쟁여놓는 것이었다. 앞면이 보이게 줄을 맞춰서 몃백줄로 쫙 쌓아두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는 그런 꿈.
물론 로또맞을 꿈은 여전히 꾼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다보니 그냥 가서 사먹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꿈을 접었다. 물론 이젠 너무 많이 먹으면 배도 부르고 메스껍기도 하고…
아, 한가지 말해둘 게 있다. 두유에 미숫가루를 섞으면 정말 끝장이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맛은 결코 없다. 약간 달긴 한데… 암튼 아침에 밥대신 먹기도 좋고… 하지만 값이 결코 싸게 먹히진 않는다. 미숫가루가 좀 비싸므로… 찾아보면 싼 미숫가루도 많다. 얼마전에 미국가서 중국산 마가루를 사왔는데 포장도 깔끔하고 사람들 나눠주다 보니 정작 집에 오니 서너개 밖에 남질 않아서 난감했다. 문제는 아침에 찬 음료를 들이키는 건 정말 좋지 않은데, 문제는 그 종류들은 따뜻한 것 보다는 찬 쪽이 맛있다는게 문제이다. 그래서 나름의 방법을 고안했다. 뜨끈한 물 한잔을 후후 불어가며 마셔서 속을 따뜻하게 한 다음에 차게 해서 마시는 방법이 있다. 매우 기발한 생각인데 내가 해 낸 것이다.
콩물, 미숫가루, 두유… 니들이 없었다면 그 험했던 유년시절을 내가 어떻게 보냈을까 싶다.
[수수단상] 인생템 시리즈
#4 뉴에이지
#3 스트리트 파이터 II
#2 영진구론산바몬드
#1 프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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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님 오늘 글은 푸근합니다ㅎㅎ
진짜 몸무게가 그리 나가세요? ㅋㅋ
그 첫번째 우뭇가사리 무침은 지금도 갈빗집에 밑반찬으로 나오던데요. 오이랑 같이 채 쳐서 양념장을 뿌려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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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110킬로 정도... ㅋㄷㅋㄷ 늘 이렇게 글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우뭇가사리가 반찬으로! 왕 신기합니다.
나중에 회식 가서 발견하면 사진 찍어서 뵈어 드릴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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