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인생템 # 2 "영진구론산바몬드"

in #kr6 years ago (edited)


영진구론산바몬드


내가 머물던 노가다 공동체(?)에 가장 많이 쌓여가는 물건은 박카스였다. 사실 박카스의 매력적인 새콤한 맛에 대해서 사람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동의하는 편이었지만, 왠지 그게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로울거라는 중론도 만만치 않았던 때였다. 그 때 부드럽고 한약틱한 맛의 원비디는 금색에 가까운 병으로도 뭔가 좀 있어보였고, 디자인은 희끄무레 좀 촌스러웠지만 - 지금 생각에 - 자연의 비싼 버섯맛을 강조한 약간은 쿰쿰한 냄새가 나는 영비천은 다른 것들 보다 양도 좀 많아보였다. 그 때 박카스 만큼이나 독한 영진구론산바몬드 같은 대항마가 있었다. 내게 각 병들에 새겨진 오톨도톨한 모양들은 뭔가 어린 마음에 좋은 물건이라는 직감 - 개뿔! - 을 들게 하는 요소였다.

어린시절 더위를 너무 많이 탔던 나는 햇볕이 조금만 비추면 어지럽고 병든 병아리 처럼 사죽을 쓸 수가 없었다. 햇볓아래 있으면 마냥 핑 돌기만 했다. 더위 아래서 두어 달에 한 번 정도는 졸도했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대단한 일이지만 짧은 과거의 그 시절은 “몸 약한 사람은 원래 그렇기 때문에 괜찮은” 때였다. 또 한 번 졸도 후 1-2분 안에 깨고 나면 왠지 쓰러지기 직전에 어지럽고 입술이 파래지고 핑돌던 느낌이 싹 없어지고 개운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다만 어지러울 땐 자세를 빨리 낮춰야 한다는 상식을 몸으로 익혔던 셈이다. 건강해진 덕인지 아니면 어릴 때 겪는 것들인지 이제는 한 두달의 사이클이 이제는 2-3년 사이클로 바뀌어서 오히려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그렇게 뙤약볕 밑에서 자질구레한 어른들의 일을 도울 때 내 최고의 음료인 동시에 명약은 역시 구론산바몬드였다. 아, 원비디나 영비천도 아주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둘 다 별로 애들입맛은 아닌데... 지금도 말할 수 없이 거구를 유지하고 있지만 열 두어살을 갓 넘겼을 때 내 몸무게는 이미 80킬로 이상이었다. 초우량아였던 것이다. 그 때 내가 마셔대던 이른바 “자양강장제”는 그냥 10개 짜리 한상자였다. 그걸 그렇게 몸에다 퍼붓고도 지금까지 잘 사는걸 보면 좀 이상한 면도 없지 않다. 그게 정말 불로장생(?)약이었던가 싶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점선으로 붙어있는 상자를 어른들 몰래 뜯을 때 난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처럼 그 날카로운 점선에 베이곤 했다. 그게 싫어서 발로 짓이겨 뜯다가 몇 병씩 깨뜨기리도 했다. 그걸 몰래 버리다가 들켜서 늘 야단맞곤 했다. 어른들은 어떻게 그런 스탤스 기능을 갖추었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새 등 뒤 직전에서야 기척을 내곤 했다. 하지만 그 기척을 느끼고 앗! 이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주로 뒤통수나 꿀밤 혹은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다. 그게 정신없이 아팠던 걸 보면 어른들은 별로 주먹에 인정을 두는 편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려도 어른이 사정을 두고 때리는건지 사정없이 때리는건지 다 느낄 수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맹물이 싫었다. 그건 지금도 비슷한데 왠만큼 목이 마르지 않으면 맹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영진구론산바몬드가 더이상 없을 때 나는 사이다로 입맛을 바꿨다. 그 땐 왠지 거무튀튀한 콜라는 매우 해롭고 맑은 사이다는 몸에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양강장제에서 바꾼 종목은 주로 포카리스웨트와 칠성사이다였는데 자양강장제 10병을 한번에 마시던 스케일이라 포카리스웨트건 사이다건 2리터 짜리 한병을 한자리에서 마시곤 했다. 그 때 킨사이다도 있었고 천연사이다, 인삼사이다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천연사이다는 왠지 화장품 맛이 나는 것 같아서 아주 싫어했었는데, 그래도 다른 음료수가 없으면 그거라도 마셨었다. 돌이켜보면 입에 넣을 수 있는건 모두 들어붓고 보는 위장을 타고난 것 같다.

이후에 내 취향은 미에로화이바란 작은 병으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왠지 살이 빠지는 느낌이라서 마셨던 것이었지, 좋아하던 자양강장제 시리즈와는 병크기를 제외하면 내 기준이나 격에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그 무렵 내 입맛을 완전히 사로 잡은 것이 바로 까스활명수였다.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니니라”를 늘 중얼거렸는데 정말 그 맛은 내가 접해 본 모든 음료수 중 단연코 최고였다. 내 기억이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용량 활명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물론 내게는 소화제가 아니라 음료일 뿐이었다. 그 희열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이 글의 제목이 까스활명수가 아니라 영진구론산바몬드인 것은 그냥 희귀도와 유별난 이름 때문이다.

동기는 모르겠지만 심하게 한 번 앓아 누운 뒤로 - 사실 어릴 땐 몸이 지독하게 약해서 6개월에 한 번은 일주일씩 앓아누웠다. - 누군가가 몸에 해롭다고 해준 말을 들은 후였던 것 같은데 하루에 2-3리터 이상 먹던 음료수를 생수로 대체했다. 타고난 불통에 청개구리라 남의 말은 절대 듣지 않는 편인데 왜 그말에 넘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리고 나서 살도 좀 빠지고 속도 좀 편해졌다. 전에 메슥거림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었는데, 메슥거림이 아픈 통증은 아니지만 굉장히 불쾌한 감정임을 독자들은 아실 것이다. 그것도 좀 사라진 것 같고. 물론 지금도 가능하면 커피나 차나, 꿀물을 마시고, 맹물은 잘 안마시지만, 자양강장제류도 여전히 마시지 않고 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없어서다.

하지만 그 오래전의 각각의 구분되는 분명한 맛들은 아직도 선선하게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지금 커피 한잔 안마셔주면 왠지 서운하듯 어린 내게 원비디, 영비천, 구론산바몬드, 박카스... 등은 단순한 정신적 추억만은 아닌 것 같다. 30년 가까운 예전에 마셨던 것들이 아직도 내 세포속 미토콘드리아(?) 어딘가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그걸 기억하고 있다. 그 땐 그 음료들이 천둥벌거숭이적 어린 나에게 혹 ‘인생의 동반자’가 아니었을까. 그런 말도안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는 비록 맥주와 커피에게 내 영혼을 팔아버리고 그들을 찾지도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그게 그들을 배신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도 나는 가끔 그들과 함께하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으므로.


@soosoo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주말밤들 보내세요~

인생템 # 1 프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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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론산이나 박카스
우리나라 피로회복제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요.
기능성 음료의 역사를 올려주셨습니다.

아하... 그렇죠 수정하겠습니다. "자양강장제" 아니죠! "기능성 음료"입니다. ^^

박카스처럼 자양강장제도 중독성이 장난아니죠ㅎ
지금은 카페인 중독이라 커피없이 못살고 있네요:]

마자욥! 중독성 쩔죠. ㅋ 하지만 역시 우리시대의 진정한 음료는 커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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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로 화이바...
그당시 미에로 화이바 따라 만든 비스무리 한 좀 퉁퉁한 병이 있었는데...
기억이....ㅜㅜ 그거 진짜 많이 마셨는데... 기억이...ㅜㅜ

다른 거라면 혹시 화이바미니 아닐까요?

인생템 ㅋㅋㅋㅋㅋㅋ

ㅋㄷㅋㄷ 제 인생템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사람도 템에 넣어도 될까욥???) ㅋㅋ

원비디^^
진짜 오랜만에 보는 단어네요~

역시 아는 분 있으실 줄 알았습니다. 그쵸? 어느순간부터 만나기 어려운 게 되었습니다. 철지난거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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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쓰시는것 같습니다 :) 문단이 잘 나뉘어져있어서 읽게도 좋구요:) 뜬금없지만 저도 맹물은 거의 먹지 않고 양파즙을 제일 좋아한다는... 쩜쩜쩜...

@dufresne님 에궁 부족한 글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파즙! 아 이건 기능성 음료와 다릅니다. 엄청 좋다고 하더군요. 한국 양파산업에 한몫하고 계신겁니다. 한 몇 년 장복하면 몸도 따뜻해지고 정말 좋다고 하더군요. 좋은 선택이십니당~

글 정말 맛깔스럽게 쓰시네요. 멋집니다. 가입 환영 글도 감사합니다!

@leebright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도 감사드려요~^^

영진구론산바몬드 ㅋㅋㅋ 글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나이를 짐작케 하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들이 너무 정감있어요. 10개를 한꺼번에 마시던 스케일에서는 경이롭기까지 !!! (실은 빵터졌습니다요~)

하핫 감사합니다.^^

실은 전 영진구론삼 바몬드는 기억이 안 납니다요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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