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인생템 # 3 "스트리트 파이터 II"

in #kr6 years ago (edited)


스트리트 파이터 II


90년대 초반, 나는 열 세살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수퍼앞에 있던 갤러그가 가장 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다. 사실 모아둔 돈은 좀 있었지만, 50원짜리 한 개만 넣으면 할 수 있는 그 게임기 앞을 나는 늘 아쉽게, 마치 마지막 이별이라도 하는듯 그렇게 지나치곤 했다.

내가 살던 곳은 의령이란 곳이었는데, 동네 새로 생긴 깔쌈한 목욕탕은 천하장사를 했다는 이만기 아저씨 집안에서 운영한다는 집이었다. 사람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우리는 사람의 이목구비를 정확하게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애들은 놔두면 비슷하게 생긴 뒷모습만 보고 엄마나 아빠라고 생각하고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땐 그랬다. 카운터에서 돈을 받는 아저씨는 아무리 봐도 티비나 벽보에서 본 이만기 아저씨였다. 주변 어른들에게 이만기 아저씨냐고 물어보면 그의 형님이란다. 그런데 나는 그 때 그말을 믿지 못했다. 나는 어릴 때 부터 사람들의 말을 잘 믿지 못했다. 그런데 동시에 귀가 매우 얇아 번번히 고약한 어른들에게 작은 사기를 당하곤 했으니 참 이상한 일이다. 보름에 한 번 목욕탕을 갈 때 마다 이번엔 직접 물어봐야지 했지만 귀도 얇은 주제에 낯까지 심하게 가려서 결국 나는 물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만기 아저씨 목욕탕을 지나면 시내 한 가운데에 새로 생긴 모토롤라 대리점에서 시커먼 플립형에 빨간색 글자가 화면에 표시되는 3-400만원짜리 핸드폰을 팔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거금 13만원을 주고 삐삐를 구매한 간 큰 이야기는 다음기회로 넘기겠다.

모토롤라 대리점 골목엔 아직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녹슨 철대문이 있었다. 3미터 가까이 되는 높은 대문이었다. 바로 오락실이였다. 동네 다른 열세 살 짜리 동갑내기 아이가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가곤 했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 동갑내기 역시 사고 치고 말썽부리는데는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아이였다. 이제 그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때 우리가 살던 곳은 산동네라 창고에 있던 텐트를 슬쩍 가져가서 산등성이를 기어올라가 부치는 힘으로 텐트를 치고 건전지 들어있는 카세트에서 뽕짝을 들으며 우리 둘은 누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따라 부르곤 했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혹은 한참 유행을 시작하던 김수희의 "애모(애무 X)" 같은 노래였다. 그렇다. 그 땐 열 세살짜리들도 뽕짝을 듣고 불렀다. 상대적으로 차분한 아이였던 내가 이 남자아이의 사고친 이야기를 하려면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다만 나는 이 동갑내기 아이로부터 자전거를 배웠다. 그러니까 그는 내 자전거 선생님이었다.

그가 꼬셔서 자전거로 따라간 시내까지 그 때의 우리 힘으로는 30분 거리로 결코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자유로워도 어디 가까운데 볼일 보러 나가도 무슨 생각과 계획이 많은지 선뜻 나서지 못하는데, 그 땐 주변의 그렇게 보수적이고 엄한 어른들이 많았고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했지만, 어쩜 뒤에 혼날 생각은 까맣게 잊고 그렇게 겁도 없이 돌아다녔나 싶다. 하지만 낮에는 감독하에 있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던 나는 새벽시간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서 새벽 4시쯤이면 우리는 일어나서 새벽길을 자전거로 뛰어갔다. 그 마음을 연애의 뜨거움에 비유해야 할까, 불륜의 짜릿함에 비유해야 할까. 그 뜨거운 재미를 향한 탐닉은, 오락하러 가는 아침은, 단언컨데, 내 유년시절 가장 뜨거웠던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게 죽기보다 힘들었던 우리는 그렇게 새벽을 밝히는 십 수차례 약속에 둘 모두 단 한 번도 늦게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기는 커녕 훨씬 일찍 눈을 떳고, 적당한 시간이 되길 기다렸던 적도 있다. 그렇게 마을 입구 표지석 앞에서 새벽에 만나서 우리는 철담 넘어 오락실을 가곤 했다.

오락실 사장님, 할머니는 젊은 시절 시장에서 장사로 돈을 모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70대 여서 얼굴엔 주름과 백발이 가득했지만 큰 얼굴에, 180은 되었을법한 장신이었고, 목소리도 카랑카랑했다. 오락기 20여대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녹색 손잡이 십자드라이버와 고데기 하나를 들고 누비며 아이들이 마구 쳐대는 스틱 때문에 고장난 기판의 전선을 떼우곤 했다. 그리고 스틱을 마구 흔들어대는 애들 뒤에서 잘하는 애들은 기술을 쓰지, 그렇게 마구 한다고 이기는게 아니라며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만나는 할머니들에 비하면 말도 안될만큼 쿨했다.

우리는 어른들 때문에 올 수가 없으니 새벽에 오면 안되냐고 물으니 혼자 계시니 잠도 없고, 또 잠귀도 밝으니 언제든 오면 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오락실 할머니와 구두계약을 했고, 할머니는 번번히 그 새벽에 문을 열고 오락기 두 대를 켜 주시곤 했다. 자전거로 30분을 달린 후 새벽 먼동이 트기도 전의 고요한 오락실은 정말 우리에겐 찰리와 초콜릿 공장보다 더 멋진 유토피아였다. 일찍 얼어나 새벽을 가르고 날아온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가끔 깊이 잠든 할머니의 밤을 만나면 우리는 난감했다. 그러면 동네 집들이 다 깨니 문을 크게 두드릴 수도 없고, 결국 우리는 담얼 넘어 안쪽 샷시문을 두드리곤 했는데 대체 그 높은 대문을 어떻게 넘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우리와의 약속을 잊은듯 갑자기 두드리는 샷시문 소리에 놀라서 어떤 놈이냐며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오던 기억이 난다. 그 때 할머니의 왼손엔 꼭 오락기 수리용 녹색 드라이버가 들려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할머니가 왼손잡이였다는 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신기한 일이다.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알았던 게임은 AT 혹은 XT 기종 - 이후 286, 386, 486, 펜티엄 등이 나왔다 - 의 컴퓨터에서 해 본 갤러그였다. 그리고는 테트리스를 좀 하다가 동갑내기에게 핀잔을 듣고 입문한 것이 바로 스트리트 파이터 II였다. 아, 정말 그 오락실이 찰리와 초컬릿 공장이었다면, 스트리트 파이터2는 그 녹지 않는 알사탕이었다. 류와 캔의 동작을 우리는 길거리에서도 흉내내며 소리를 내곤 했다. 그리고 그 극강의 파이터가 내는 아도호겐과 "아땃따 쁘라다" - 내겐 요렇게 들렸다 - 하지만 동갑내기는 "랍젭젭 뚜겐"이라고 해서 매번 다투곤 했다. 물론 답이 없어서 내 또래는 학교에서 애들한테 물어보고 얻어온 답은 "찹싸르떡두우개~"였는데 이건 밤에 파는 찹쌀떡을 흉내낸 것이었다. 발음이 이렇게 된 건 그게 "찹쌀떡 두개"를 일본말로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그럴듯 한 것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이게 "타츠마키센푸~캬쿠(竜巻旋風脚, たつまきせんぷうきゃく)"란다. 그게 그렇게 들렸었다니...아이고...

스트리트 파이터II는 그 잠 많던 나를 새벽에 일으켜 세우던 가장 뜨겁고 달콤한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안에 나는 기술 몇 개조차 제대로 배울 수 없었지만, 우연히 상대를 칠 때 희열을 느꼈고 흠씬 두들겨 맞고 KO패를 당하면서도 그 다음판을 할 생각으로 즐겁기만 했다. 물론 원하는만큼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어떻게 하다니보니 결국 더이상 못하게 되었지만 그 두근거림은 생각만으로도 한참동안 어린 나를 뜨겁게 달구웠다. 그리고 철권이니 몇 가지 대전액션게임을 통해 나름의 갈망을 해소한 나는 이제 월오탱 같은 3D 게임으로 가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실사에 가까운 고화질과 사람들이 플레이어들이 모여하는 게임이라 NPC들과 하는 것보다야 더 재미도 있고 스트레스도 풀린다. 하기만 90년대 초, 새벽을 가르고 담벼락을 넘어서 그 허름한 오락실에서 즐기던, 그 조잡한 화면의 스트리트 파이트II만큼 뜨겁기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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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 수퍼앞에 있던 갤러그.... 정말 오랜만들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ㅎㅎㅎ 새벽에 스트리트파이터라니 집념의 사나이로군요

저같이 소심하고 용기 부족한 제가 그 땐 그랬던 것 같습니다. 10대의 힘인가 봅니다. 혼나는 시간은 공포스러웠는데도 그러고 다녔던 무모함이란 말이죠^^ 글쓰면서 오랜만에 떠올리기만 해도 즐거웠던 추억이네용^^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짱짱맨 짱~

어릴 때 나중에 혼날 것보다
하고 싶은걸 못하는 절망이 왜 그리 싫은지요.
왜 그리 하지 말라는게 많은지

생각해보면 애들은 그렇게 자기의 길을 얻고 배우는데, 어른들은 이해할 수도 없는 여러가지 틀을 세워 원하는 크기와 길이로 아이를 키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해라마라를 반만 줄여도 좋을텐데 말입니다.

이모가 놀러오시면 늘 오빠를 잡으러 오락실 가셨던 기억이~~ ㅋ

하하하~ 역시 남자는 오락실이죠.

남자셨군요!!! 새벽을 가로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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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부지런한 꼬마(?) 였네요!! ㅎ
추억의 오락실이네요~

그러게요 부지런한 꼬마... ㅋㅋㅋㅋ

스파2는 30년이 지나도 명게임인듯합니다^^
저희형이 스파2에 ㅂ자져서 책가방 잃어버린게 생각나네요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이군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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