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사랑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공연을 앞두고 몇 번 20세기 소년을 일찍 가게 되었는데, 그래서 오픈을 하는 택슨 오빠와 둘이서 보낸 아침 시간이 몇 있다. 오빠는 내가 도착하면 말없이 키보드가 있는 지하의 불을 켜주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준다. 나는 오빠를 보며 내게 친오빠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고 느낄 때가 많다. 오빠와 짧게 나누던 아침의 대화로 연습에 집중할 힘을 얻곤 했다.

젠젠언니에게는 무람없이 편하게 기대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언니에게 안겨있는 시간이 많다. 요즘은 스팀 시티 밖에서도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언니의 품이 생각난다. 공연 전날 언니의 품에 안기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져 언니를 당황시킨 일이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오는 위로. 언니는 커다란 사랑으로 매번 나를 감싸주고, 그 넓음에 나는 한껏 어린아이가 되어 응석을 부리게 된다.


공연날 불안하던 새벽, 작가님과 댓글로 짧게 나눈 대화가 내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광희 작가님과는 스팀잇 안에서 교류한 적이 많지 않고, 왠지 어려운 마음이 들어 프랑스로 가실 때까지도 서먹한 기운이 있었는데, 오히려 프랑스에 가신 후로는 작가님이 갈수록 좋아지고 편해지기만 했다. 아직 작가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지만 나는 작가님의 단호함 안에 숨은 따뜻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공연을 기념해 예쁘게 차려입고 온 라라언니의 모습은 공연 당일 불안해하던 나를 무너지게 했다. 나에겐 너무 중요했지만 소중하다고는 느끼지 못했던 공연을 소중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날 언니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렇다면 내 공연도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시작 된 언니와의 대화가 내 생각을 정리해주었고 단호하게 해주었다. 언니의 사랑.

공연 날에는 오랜만에 소수점도 찾아왔는데, 30시간 넘게 깨어있고도 공연 소식에 20세기 소년을 찾아오는 것이 소수점의 사랑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피곤할 테니 좀 쉬라는 말에도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는 그의 표현이 나를 따뜻하게 했다. 처음 만났을 땐 나는 소수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무척 난감했지만, 갈수록 그가 편해지고 좋아지기만 한다. 그가 무심하게 내뱉는 말들이 내게 큰 위로가 된다.


공연이 끝나고 자괴에 빠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 옆에서 마법사님은 내 공연 녹음물을 하나하나 다 들어보셨다. 나로서는 그것을 왜 듣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별로라며 만류하고 싶었지만 마법사님은 끝끝내 다 들으셨다. 한 곡을 고르시고는 짧게 너무 좋다는 말을 남기셨는데, 그것이 나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게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되었다. 매번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시는 마법사님의 모습이 내게는 늘 감사하다.

술에 취한 저녁엔 킴리님과 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킴리님의 따뜻함을 알면서도 내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가 어렵고 두렵게만 느껴지는데, 그는 대화로 그 생각을 무너뜨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대화는 너무 소중해 바람과 온도, 촉감까지도 하나도 빼먹지 않고 기억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 음악의 한 부분에 대해 정확한 피드백을 주었는데, 그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정말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위로가 됐다. 모두에게 그렇지만, 킴리님에게는 고마운 일이 너무나도 많다.


이 공연은 내겐 돌아보고 싶지 않은 괴로운 일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답다고 여러 번이나 말해준 젠젠 언니의 말에 -어쩌면 아름다웠을 수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은 내가 가진 제약과 한계를 없애주려 하고, 내가 나이기만을 바라며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사랑만을 준다. 나는 공연 다음 날인 어제, 지하철역을 올라오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으로 온몸이 짜릿해지는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이들이 곁에 있기에 어쩌면, 정말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가 그들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다면,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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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사랑이 가득한 글이라 눈물이 찔끔 났어요. 우리는 함께라는 것에 힘을 얻어 더 아름다운 것들을 각각 만들 수 있을거예요!!

우린 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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