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적인 글쓰기

in #kr-pen8 years ago

pg.jpg
자기소개서를 써보신 분들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옮기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자기소개서는 작위적이다. 진실된 자기소개서는 경쟁력이 없기에 작위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TOEFL을 생각해도 좋다. TOEFL 경험이 없더라도 문제 없다. TOEFL 외에도 내 생각을 내 표현으로 옮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표현을 옮기는게 수월한 순간은 정말로 다양하다. 스팀잇에서 댓글이라도 써보신 적 있다면 자신의 생각, 느낌을 생생하게 옮기는게 얼마나 어려운가는 이해하실 것이다.

나는 그래서 글쓰기가 어렵다. 내 글에서 내가 중요시 하는건 주제의 무게도, 논리의 철저함도, 표현의 아름다움도 아니라 진솔함이기 때문이다. 진솔함을 위해서는 내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진솔함을 위해 독자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만을 담은게 아니라 꾸며낸 거짓을 담았더라도 독자는 이에 공감하기도 한다. 그래서 진솔함이란 내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얼마나 내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옮겼는가를 평가하고, 나 자신이 만족하지 못 하면 그 글은 거짓이다.

언어능력의 한계인지, 언어의 한계인지, 사고의 한계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내 머릿속에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머릿속에서는 명쾌하게 모든게 해결된 것 같은 순간임에도 나는 도저히 그 생각을 옮길 표현을 찾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생각이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던 생각이, 무언가에 부딪쳐 길을 잃기도 한다. 그리고 그 좋은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그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항상 손이 닿는 곳에 메모를 위한 도구를 두고 생각이 떠오른 즉시 이를 언어로 번역하여 기록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항상 실패한다. 과연 이는 머릿속에서 흘러간 생각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언어의 한계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 사고의 한계로 순간적인 번득임을 정리하지 못 했을 뿐일까?

'언어능력의 한계, 언어의 한계, 사고의 한계'에 썼던 문단이다. 생각을 기록하는 것의 고충을 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경험, 느낌, 생각에는 의식적인 활동 뿐 아니라 무의식적인 활동 또한 포함한다. 내가 하는 행동들은 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아도 대부분 혹은 모두가 무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사유하고 있는 주제들도 무의식에서 시작한 것이고, 내가 갖는 느낌도 내 의식적 해석과는 무관하다.

좌뇌는 끊임 없이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지만 언어와 좌뇌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기분이 나쁘다고 하자. 그 잠깐의 거슬림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다. 좌뇌는 그 순간의 충동을 해석하길 원한다.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공연히 죄를 묻기도 한다. 실은 그 공간과 유사한 공간에서 있었던 불쾌한 기억이 스쳐지나 갔을 뿐임에도 좌뇌는 이를 포착하지 못 하고, 쉽게 해석하기 위해 곁에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걸 택한다.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가 이처럼 막무가내기에 나 자신을 언어로 정확하게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뇌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끊임 없이 관찰해야 한다. 언어에는 어떤 한계가 있으며, 언어가 포착할 수 없는 사유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공부도 필요하다. 뇌과학, 심리학 등은 내가 놓치는 것들을 한번 돌아볼 수 있을 좋은 정보들을 제공한다.

나도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영원히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갖는 아무 생각, 느낌을 글로 옮길 수 없다. '정확하게'는 영원히 불가능하지만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생각, 느낌이 아니라면 나는 도저히 그 글을 시작할 수 없다. 하나의 글감을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만, 그 글감을 내가 소화할 수 있는가를 분석하고 그 글을 폐기하고 새로운 글감을 떠올리는건 더욱 어렵다. 글감을 떠올리고 나면 그 글감에서 내가 옮길 수 있는 부분을 빠르게 훑어내는데 그 옮길 수 있는 부분이 마음에 들면 들수록 그 글감을 폐기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때로는 글을 쓰는 도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곤 한다. 내가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글임에도, 도저히 내 수준으로는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생각, 느낌을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 순간 글을 다 지워버린다. 처음에는 '나중에라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저장해두기도 했지만, 생각은 휘발성을 갖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욱 모호해졌다. 몇번 글을 완성해보려는 무의미한 시도를 한 후, 그냥 지워버리기로 했다.

진솔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아무' 생각, 느낌이 아닌 내가 명확하게 옮길 수 있는 생각, 느낌만을 주제로 정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다. 순간에 떠오른 생각, 느낌을 내가 정확하게 옮길 수 없다고 해서 그냥 폐기하는 것도 진솔함에서 멀어지는 과정이 아닌가? 진솔함이 목적이라면, 어설프더라도 최대한 노력해야 할 지도 모른다.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생각은 그냥 그대로 두고, 그냥 그렇게 미완성으로.

내 집착은 글쓰기를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글을 한편 쓰고 나면 기진맥진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내 체력에 한계가 있고, 한번 떠오른 생각을 기록하는걸 다음날로 미루면 생각은 날아가고 없기 때문에 그 순간에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몇번의 글을 지워버린 날에는 배로 힘들었다. 다급한 나머지 글을 미완성으로 맺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꾸며내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거짓 없이 기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록 글이 미완성으로 그치게 되더라도.

이 모든건 철저히 자기만족만을 위한 활동이다. 내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고, 내가 아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게 아니기에, 내 진솔함을 평가하는건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때로는 독자들은 꾸며낸 글에서 진솔함을 느끼기도 한다. 단지 좋은 표현력을 가진 것만으로도 진솔함을 꾸며낼 수 있기도 한다. 하지만 독자들이 구분할 수 없더라도, 글쓰기가 나에게 괴로운 활동이 아니라 즐거운 활동으로 영원히 남기 위해서 나는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도 독자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을, 나만을 위한 글을 남긴다. 아, 독자분들께도 의미가 하나는 있다. 이 글에서 표현한 내 고뇌가 진실되다면, 나는 여러분들에게 진실된 나 자신을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음은 전달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모든 글들은 매일 순간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한 것이니 일기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Sort:  

무라카미 하루키가 얘기했던 '문화적 제설작업'이라는 표현이 떠오르네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 집앞에 쌓인 눈을 습관적으로 치우는 행위요. 하지만 눈을 치우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는 행동이죠. 김리님의 마음 잘 받고 갑니다.

좋은 표현이네요. 한번 들어본 것도 같고...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것을 저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풀어 놓으셨습니다. kmlee님의 글에는 그런 지점이 있습니다. 가려워서 긁고 싶은 등짝을 내놓고 긁어달라 하고싶은 심정입니다.

생각을 글로 옮기면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격게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어려운 일이네요.

진솔함에 대한 집착이 비효율이라고 하셨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진솔함의 추구가 되레 효율로 변모할 듯합니다. 여러 독자가 이 글을 읽는 것이 그 증거 아닐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 생각을 내 표현으로 옮기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표현을 옮기는게 수월한 순간은 정말로 다양하다

정말 공감갑니다. 토플도 저는 3번정도 쳤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내 생각을 말하는게 얼마나 어렵던지....

집착이 글쓰기를 비효율적으로 만든다는 표현은 뭔가 새롭네요. 근데 또 다른쪽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다는 뜻으로 좋은 장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저도 글쓰는게 너무 비효율적이라 공감이 됩니다.

공감이되네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모호함. 그렇게 미완성으로 무언가 그치게될 때의 찝찝함.

잘보고갑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갖는 고민이네요.
아마도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하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쓴 글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도 못하거든요.
어쩌면 그래서 글쓰기에 고민은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런 대부분의 사람이 쓰는 글이 크게 다른 사람에게 울림으로 전해지지도 못하는 거 같아요.

글쓰기 하나에도 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다른 문화에 비해 글쓰기는 참 비효율적이라는 생각 공감해요. 하나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 수 많은 단어를 써야할 때도 있으니까요. ㅠ

아, 근데 이건 음악이나 그림도 비슷하려나요?? 아무튼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 같아요. ㅠ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단어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 감정이 내 감정이 맞는지도 검증해야하죠.

복잡하네요 ^^ 좋은 글 많이 많이 써 주세요 ^^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81
BTC 60768.58
ETH 1592.65
USDT 1.00
SBD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