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의 운동

in #kr-diary3 years ago

나는 체계적인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게으르다. 근성이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가끔은 유전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아버지 또한 그러셨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고 운동을 하시는 게 아니고, 페이스 조절 없이 탈진할 때까지 달리고는 마치셨다. 요령을 차근차근 배울 기회조차도 갖지 못 한 것인지, 정말로 천성인지 이제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에 나는 평생 아버지의 운동 습관을 변명으로 삼을 수 있다.

작년에 마스크를 쓰고는 탈 수 없어 자전거를 타지 않게 되면서 내 운동량은 크게 줄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새벽에 탈 수 있었겠지만, 나는 단순히 운동만을 목적으로 자전거를 탈만큼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다. 내가 자전거를 꾸준히 타던 이유는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였고, 도서관이 휴관 중인 동안 나는 자전거를 탈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소한 변화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아챈다. 어느 날, 내 몸에 맞는 청바지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서관으로 가는 10km의 짧은 거리조차도 나에게는 큰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었다. 그 작은 것이 계기였다. 그 외에도 조금 더 있기는 하지만. ..

여전히 체계적이진 않다. 집에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수준의 운동기구들을 갖추고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진 않는다. 사람에게는 항상 변명이 있다. 나는 근육을 갖고 싶은 게 아니라는 변명. 그리고 체계적이진 않지만 매일 일정량의 운동을 한다는 해명.

바지를 입어본 날, 견과류와 닭가슴살을 샀다. 아침은 닭가슴살 샐러드, 점심은 견과류와 유제품, 저녁은 비교적 자유롭지만 쌀밥은 먹지 않기로 했다. 운동은 내키는 대로, 단 턱걸이 봉에 하루에 최소 다섯 번은 오르기로 했다. 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턱걸이였는지는 밝히고 싶지 않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 외 나머지 운동은 따로 제약을 두지 않았다. 덕분에 턱걸이를 제외한 운동을 그다지 하지 않는 편이지만 턱걸이만 꾸준히 해도 나쁘지 않다고 하니 그 정도면 됐다고 내 게으른 천성이 속삭였다.

물론 10kg이 불어난 몸으로 턱걸이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감량을 동반한 근력 운동이 필요했다. 그렇게 보면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식단 조절과 근력 운동을 병행한 결과, 나는 만족할만한 횟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다시 청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진 가장 작은 청바지조차도 이제 무리 없이 입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운동과 식단조절을 멈추진 않았다. 그것도 6개월이 지났으니, 이제는 게으른 사람도 이렇게 좋은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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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걸이.. 웬지 알 듯하군요.

알기 어렵지 않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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