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육 2. 낚시대로 얻은 가족 ~ 6. 새장 속의 자유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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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낚시대로 얻은 가족
유대인의 유명한 말 중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다. 이 비유를 빌리면 나는 낚시대를 사주는 사람이다.

이 마을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는 내 손이 닿아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현대사회에는 정이 없다는 말에 반대하고 싶었다. 나는 단정 짓는 말에 항상 반대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에 반대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저 명제가 사실이 아님은 증명하지 못 한 것 같다.

안 될 말이지만 천재지변이나 전쟁 없이는 계속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특별히 해야 할 일 없는 일상, 혈연이 아니라도 가족처럼 정이 넘치는 공동체, 빛과 소음이 없어 커튼 없이 창문을 열어 놓고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밤, 이 모두가 너무나 즐거웠다.

3. 붕괴
"이제 마을에 저희만 남았습니다."

가장 충성스러운 석만이 남아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잠깐이라도 충성이란 단어를 떠올린 내가 혐오스럽다.

사실은 내가 먼저 꺼냈어야 할 말이다. 석은 부양할 가족들이 있다. 물건을 팔 사람들이 없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 물론, 나에겐 석의 가족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이 있다. 하지만 나는 물고기를 잡아 주는 사람이 아니다. 반면 무작정 고기를 잡아주는 박사라는 사람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인간을 사육하는 것이다.

"같이 갑시다."

화가 났다. 이번엔 석의 악센트로 말하지 않았다. 역시 놀리는게 아니라 즐거움과 애정의 표현이었다.

나는 왜 화가 났었을까. 도움이 필요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사육이라면 나도 사람을 사육하던 것인가?

고기를 잡아주는건 자립만 해치지 않는다. 고기를 낚아올리는 재미와 쾌감도 빼앗는 것이다. 이렇게 궁색한 변명을 해본다.

4. 사육
개들은 왜 인간을 따르는가. 자연에서 생존하기에 굉장히 불리한 형질도 인간의 기호에 맞다면 번성한다. 불독은 머리가 너무 커져 자연분만이 힘들고 닥스훈트는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짧은 다리를 가지게 되었다. 닥스훈트는 인간에게 귀여움 받기 위해 자연적으로 다리가 짧아졌는가? 개들이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도 인간이 개를 소중히 여겨 보답하는 것인가? 아니, 단순히 인간의 기호에 맞는 형질을 가진 개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도움이 필요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사육이라면 나도 사람을 사육하던 것인가?

난 그저 내 일상을 해친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이렇게 옹졸하다. 아니, 난 이렇게 옹졸한 사람이다.

5. 인형놀이
석의 차를 타고 떠난다. 나는 차가 없다. 차가 필요한만큼 먼 거리를 다닐 일이 없었다. 다닐 일이 없던게 아니라 둥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던건 아닐까.

"거기 가면 민이도 있어?"
"글쎄... 민이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까."

제각각 삶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사람들의 삶을 내 일상으로 만들었다. 그런 내가 일상이 무너짐에 대해 남에게 화를 내다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어린 아이는 인형을 가지고 마을을 만든다. 인형에 인격을 부여하고 각각의 관계를 설정한다. 아이의 세계에서 인형들은 모두 행복하다.

6. 새장 속의 자유
아무리 사나운 야수라도 인간에게 사육당하면 야생성을 잃어버린다. 지능이 높은 동물들이 길이 들면 인간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추고, 인간에게 더 관심 받는 개체들을 질투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장 속에서도 자유는 있다. 울고 싶을 때 울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왼발을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다섯 걸음, 발을 모으고 다시 왼발을 시작으로 왼쪽으로 두 걸음. 원하는 곳에 누워서 원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이런 자유조차 누릴 수 없다면 내가 박사보다 나은 사람이며, 박사는 진정 인간을 사육하는 인간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동물은 주인의 자유도 빼앗는다. 이들이 진정 자신이 받는 대우가 목숨보다 소중하다 여겨 까다롭게 구는건 아니지만, 나도 달콤한 약속도 마다하고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포로들처럼 길들지 않으리라.

아버지, 아들은 이렇게 유치한 사내가 되었습니다.


호흡이 극도로 빨라서 한 장 한 장 포스팅하기엔 분량이 너무 미흡하다 느껴 이렇게 엮어보았습니다. 그래도 분량이 적네요. 초고에는 내면묘사로 한 장, 내면묘사를 일절 하지 않고 행동과 대화만으로 한 장으로 풀어갔지만 퇴고 과정에서 이렇게 분량이 줄어들었습니다.

무릇 거목은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 법인데 문학적 소양이라는 기둥이 부실한 탓일까요, 변명만 늘어놓게 됩니다.

사육 1. 외국인 노동자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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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분량이라던지 말씀하신 걱정들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호흡이 너무 짧으니 여운이 없군요.

호흡은 빠른데 자꾸 멈춰서 내용을 곱씹어보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곱씹어보게 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개인적으로 영상, 만화처럼 이미지를 곁들인 형태였으면 더 좋았을거 같아서 아쉽습니다. 이 기회에 그림을 그려볼까 싶을만큼요. 허접한 작가의 욕심일까요 ㅎㅎ

호흡이 짧아서 여운이 없진 않습니다. 제 지극히 짧은 소견으로는 보통 이런 류의 호흡이 빠른 소설은 계속 쨉으로 깨달음과 화자의 생각을 전달하다가 소설책을 다 보고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진정한 여운이 크게 한방을 날리던 것 같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작품마다 간혹 이런 류의 호흡이 빠른 글을 쓰곤하는데 이게 그 한 목차가 끝나고나면 다음 새로운 이야기로 넘어가기전에 한참을 생각하고 여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호흡이 빠르고 이 소설처럼 중간중간 화자의 사고가 곁들여져 있는 경우 소설이 끝날 시점에 화자가 가지고 있는 전체의 사고를 잘림없이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강렬함은 한번에 화자의 온전한 사고를 보여주는 것보다 이렇게 이야기 중간마다 찬찬히 보여주다 끝날때 전체의 모습이 보이는 경우가 더 크겠지요.

퍼즐에 비유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각 퍼즐 조각들은 여운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 퍼즐 조각들에 열심히 몰두해 맞춰나가다가 마지막 조각을 맞추고 전체의 그림을 보면 하나의 온전한 작품이 되어 맞춘이에게 복받치는 감정을 주듯 말입니다.

앞으로 더 기대되는 소설입니다! 오히려 저렇게 호흡이 빠르면서도, 촘촘한 사고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묘사가 좋은건 평소에도 저런 수준의 높은 사고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겠지요.. 본인이 탄탄하게 사고하지 않으면 절대 묘사도 할 수 없으니까요.

감동입니다 ...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자식에게 아쉬운 소리하는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요. 제목도 바꾸고 싶고 문체도 살짝 바꾸고 싶은데 이미 태어난 자식이라 손 댈 수도 없고...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 전 지금도 진짜 좋습니다 ^^ 자식을 키워본적은 없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자식아닐까요...? 다른 글들 읽어보거나 저희 부모님 생각해봐도 그런 것 같던데..ㅋㅋ 아쉬움이 있어도 이뻐보이고 대견스러워 보이는 그런.. 암튼 전 그렇습니다.ㅎㅎ

힘이 납니다 ㅎㅎ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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