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 박경리/ 토지 17.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 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오광대놀음이 있던 날 밤 이후 월선이는 그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버렸다. 부드러운 살결과 체취는 항상 그의 곁에서 맴을 돌았다. 사내로서의 체면이 무엇인지, 뼈가 으스러지게 안간힘을 써서 발길을 끊었을 때도 그는 월선이 내 여자 아니라는 생각은 못했다.
용이는 부지런해졌으며 강청댁이 어떤 수라장을 꾸미든 눈을 가린 나귀가 연자매를 돌리듯 사랑이 회생(回生)을 낳고 헌신을 낳고 고통을 낳고 다시 사랑을 낳는 그같이 둥근 마음의 터전을 되잡아가면서 또한 둥근 제 생활의 터전을 물묵히 돌고 있었다.
낫을 팽개치고 삼베치마를 주켜서, 치마끈을 반허리쯤, 동여맨 그는 날 듯 밖으로 쫓아나간다. 읍내까지 삼십 리 길 끝없이 굽이진 강물과 들판과 숲을 따라, 강물에 잠긴, 대론 도랑물에 잠긴 달이 아까보다 빠르게 강청댁을 뒤쫓아가고 있었으며 개구리들은 아우성치듯 울어대었다.
- 토지 1부 1권 17장, 습격 중에서-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