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in #steemzzanglast year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복날을 앞두고 호되게 앓았다
밥 먹고 자고, 약 먹고 자고
멀건 눈은 밤낮도 분간을 못한다

초복날 아침
이슬비 촉촉한 길을 씩씩하게 걷는 여자가
눈앞에서 덥썩 끌어안는다

“나, 췌장암 말기래요.
간에 전이가 돼서 수술도 못해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차 항암 받고 왔어요.
좀 있다 이차 또 받으려 가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사형 선고도 받았어요. 삼 개월에서 육개월...
사는 동안 즐겁게 살기로 했어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방실거리는 입술에서 파랑새가 날아간다

개는 살길이 열리고
사람은 죽을 핑계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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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생각 혹은 다리 밑/ 이상국

아직도 복(伏)이 되면 다리 밑이 그립다.
어렸을 적 같으면 동네 사람들과 똥개 한 마리 앞세우고
솥단지 뒤를 쭐레쭐레 따라가던 곳
지금은 고향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산다.

이제 개 추렴 같은 건 너무 촌스럽고 또
반문화적인데다가
다리도 차가 지나가면 무너질 것처럼
우르릉우르릉하던 옛날 다리가 아니다.

어느 해인가 형들이 다릿발에
개를 매달고 두들겨 패다가
목줄을 끊고 달아나는 바람에 한 나절
쫓아다니던 때도 있었다.

다리 밑은 원래 그늘과 바람의 집이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오갈 데 없는 문둥이나
비렁뱅이들이 모여 살기도 했다.
처녀를 붙잡아다 애를 만든다고도 했다.

복날은 원래 농사꾼들의 명절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장사꾼들 세상이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해마다 복은 와서
비어 있는 다리 밑이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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