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줄 줄 줄

in #kr6 years ago

대문.png

줄 줄 줄 @jjy

아침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깃줄이 팽팽하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로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까마귀 몇 마리가 걸터앉았다 날아간 자리가 잠시
흔들리더니 다시 자리를 잡는다.

수영장이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여유가 생길 것 같았던 아침시간은
그대로 분주하다. 체육공원 주변을 산책하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풍경을
감상하고 근처에 있는 헬스클럽으로 향한다.

사이클을 시작하면서 바로 헝클어진 이어폰 줄을 흔들어 펴서 핸드폰에
연결하는 것으로 유튜브에서 세상과 연결하는 나만의 통로를 만든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Sanctus, Nella Fantasia, Ave Maria를
들으며 천상의 세계를 거닌다. 이 시간이 내가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다.

서둘러 집으로 오면서 무언가 얼굴에 감기는 느낌에 거미줄이라는 것을
직감하며 갑자기 불쾌해 진다. 거미줄을 걷으며 나뭇가지에 있는 집으로
도망치는 거미를 보자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 가느다란 줄 하나에 의지해서 살아야하는 거미줄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던 일이 거미에게는 삶의 터전을 헐어버린 약탈행위였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 집을 짓고 먹이를 구하는 거미가 사람보다 못할게 없는
것 같다.

비단 거미만 줄에 의지해서 산다고 단정 할 수는 없다. 사람도 줄에서
무관하지 않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탯줄이 있었기에 핏덩이가 생명체로
성장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우리 몸에 있는
핏줄이나 신경 같은 모든 줄이 제 구실을 하고 있을 때 정상적인 삶이
가능하다. 또한 우리 생활에 편리를 도모하는 모든 것이 줄로 연결 되어
있다. 도로 전기 상하수도 등 모든 것이 줄이라고 말해야하겠다.

지금은 덜하기는 하지만 한 때 줄이 우리 사회에서 크게 작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 전화를 놓거나 수도공사를 할 때에도 그랬고 누구네 집
아들이 괜찮은 직장에 취직을 하면 줄이 있었다는 말이 소위 빽이라는
일그러진 기억으로 남았다.

오후가 되면서 동네에 낯익은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집을 떠나있던
연휴에 일찍 와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추석이 가까워
졌음을 실감하게 한다.

뉴스에도 귀성길 정체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언젠가 경춘 국도에 줄을
이룬 전조등 불빛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하게 하던 풍경이 떠오른다.
그 빛나는 줄이 민족의 대이동을 방불케 하는 교통지옥을 유발하면서
흩어져 살던 가족들을 다시 이어주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금쪽같은
손주사랑과 명절증후군이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하는 그 줄에 합류하고
싶은 충동이 몰려 올 때가 있다.

그러나 그도 이젠 헛꿈이다. 줄에서 빠져나온 식구들 다시 줄이 되는
시간까지 편하게 머물다 가게 해 주는 것만이 내 몫인 지금에...


이미지 출처: 네이버블로그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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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무탈하게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라임이 상당히 좋으시네요.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jjy

줄따라 아늑한 고향으로 많이들 모였을까요?
가족 모두 따뜻한 추석연휴 되시기를요^^

매년 그 줄 안에 서는 사람들의 감회가 무엇인지 짐작만합니다 ㅎ

잘 지내시지요?
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이 먼 곳에서도 @jjy 님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줄도 있지요~
한가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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