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바닷가의 추억

in #kr6 years ago

바닷가의 추억 @jjy

전에 없이 더운 날씨에 옥수수 잎이 말라 오그라들고 있다.
채 자라지도 않은 사과가 익고 감이 익는다고 한다. 사람은
더우면 더위를 피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하는 능력이 있지만
식물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산다.

팔순을 훨씬 넘기신 어르신들께서도 당신 평생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이라고 하시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쏟아져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삼베나 모시 잠뱅이를 입고 사셨지만
다 늙어 영감님 옷 손질하느라 땀을 쏟으며 힘들어하는 할머니
생각에 올 해는 한 번 입고 다시 안 입으시겠다고 하셨단다.

이렇게 더워서 움직이기 싫을 때는 시원한 팥빙수나 바다가
간절하게 그리워진다. 엊그젠가 티브이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장면을 보여 주는데 당장이라도 물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 사람들처럼 파도타기는 할 줄 모르지만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지금도 혼자 생각해도 저절로 입 꼬리를 귀쪽으로 당기는
추억이 있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에게
있어 바다는 그 이름만으로도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성당에서할머니들로 구성된 단체에 모처럼의 행사를 동해안으로
가기로 결정 했다고 하자 모두들 환성을 지르신다.

말로만 듣던 한계령을 넘으면서 벌써 설악산의 위용에 놀라고
멀리 수평선이 보이면서 모두들 소녀처럼 들떠있었다. 푸른
바다가 수평선으로 파도를 몰아오면서 산골 할머니들을 반긴다.

모래밭에 파라솔을 피고 자리를 잡고 소지품을 모아놓고 모두들
바다로 뛰어들었다. 혹시 누구라도 물이 무섭다고 하면 어쩌나
했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물장구도 치고 수영을 할 줄 몰라도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다. 어느 정도 자유롭게 놀다 준비해간
양동이 두 개를 골대로 해서 비치볼을 가지고 농구를 한다.

바로 앞에 골대가 있어도 발이 떨어지지 않아 볼을 빼앗기고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이기고 있는 편 골대가 찾아가서 골을
넣게 해 주기도 하면서 일부러 자살골을 만들기도 한다.

물속에서 하는 줄다리기도 재미있고 옆에서 구경하는 피서객들도
거들어 주며 재미있게 놀았다.

한참 즐겁게 놀다 추울 것 같기도 하고 허기가 질 것 같으면
슬며시 모래사장으로 나오시게 했다. 가지고 간 간식을 나누어
드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젊은 사람 보다 더 빨리 회복하시고
이번에 또 뭐하고 놀거냐고 물으신다.

이 정도 노셨으면 피곤하기도 하실 테니 가까운 시장에 들러
뭐라도 사시고 출발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의외의
반응에 약간 당황했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나들이에 서운하시게
할 수는 없어 모두 둥글게 둘러앉아 수건돌리기를 한다.

한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모래밭에서 모두 손뼉을 치며 누구나
아는 ‘나의 살던 고향’을 부르는 동안 한 사람이 수건을 들고
원 밖을 돌다 몰래 떨어뜨리고 등 뒤에 수건이 있는 사람은 얼른
수건을 들고 그 사람을 쫓아가서 잡아야 한다.

잡히면 그 사람이 원 안으로 들어와 기다려야 한다. 반대로
자기 등 뒤에 수건이 떨어진 줄 모르고 노래만 부르다 수건을
떨어뜨린 사람이 한 바퀴 돌아 와서 등을 살짝 때리면 그 사람이
원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놀이다.

모두들 60대 후반이 몇 분 계셨고 70대에서 80대 소녀들이 재빨리
수건을 들고 술래가 되지 않으려고 뜨거운 모래밭을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그 즐거운 순간에 이변이 일어났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숨을 몰아쉬면서 계속 달렸다.
숨이 차면서도 활짝 핀 얼굴로 아무도 잡으러 오지 못한다고 신이
나서 아이처럼 뛰셨다.

알고 보니 손에 든 수건은 까맣게 잊고 달리는 자신이 대견해서
마냥 즐거워하시던 할머니를 겨우 멈추시게 했다. 이제 그 분들은
대부분 하늘나라로 가셨고 내가 그 길을 바라보고 있다.

거창하게 스킨스쿠버나 서퍼가 아니어도 말이 통하는 사람과 새꼬시
회에 술도 한 잔하면서 수평선을 바라보다 어둠이 내리는 방파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환하게 불을 밝히고 밤바다로 나가는 오징어잡이
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여름날 하루를 보내고 싶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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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그려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저도 감사를 ㅎ 젤 처음 jjy님 글을 읽으러 들어온 첫번째 이유가 저 일러스트 때문이었거든요 ㅎㅎ

대부분 하늘나라로 가셨고 내가 그 길을 바라보고 있다.

시원한 바다바람같은 이야기를 읽다가 저 부분에서 숨이 탁 막힙니다ㅜ 이해가 되서요...
제가 좋다하는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에서 비슷한 구절이 생각이 납니다. 어느새 나도 ‘오래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사실 저는 더 오래 살고 싶습니다. 우리애기들이랑 오래오래 ㅎㅎ 뭐래ㅜ

율님 팬이시군요.
말씀대로 오래오래 사세요.
예쁜 아가들이랑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술이 통하고 정말 좋은 이웃이고 좋은 친구입이다.

그렇게 서로 마음으로 왕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바랄게 없지요.

정말 더운 나날이 글을 읽으니 더 와닿습니다. 아무쪼록 건강 관리 잘하세요.^^

감사합니다.
타국에 계시면 특히 건강의 중요성 절실하지요.
건강 잘 보살피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휴가 안가세요?
재미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복잡한 휴가철 피해서
움직입니다.
조금이라도 한가하게 쉬는 게 좋아서요.

마지막 문장이
마치 앵커 마무리 같네요

그렇게 느끼셨어요?
앵커와는 거리가 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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