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의 3·1만세운동

in zzan5 years ago

오늘이 3·1절이다. 그날의 함성처럼 우리 민족의 흰옷처럼 하얀 눈이 쏟아진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시작된 독립만세의 함성이 들불처럼 온 나라로 번져갔다. 조용한 산골 가평군도 동참했다.

가평군의 3·1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5일과 16일 양일 간에 걸쳐 북면 목동리에서 시작하여 가평군청이 있던 군내면 읍내리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3월 15일 북면 목동리에 있는 북면사무소 앞에 집결한 시위군중들은 이규봉(李圭鳳) 선생의 주도 하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오를 편성하여 군내면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가평군청·가평공립보통학교·군내면사무소 등지를 돌며 시위행진을 벌였는데, 참여 숫자나 분위기에서 가평 만세운동의 정점을 이루었다.

가평3․1항일운동 기념식은 1919년 3월 15, 16일 양일간 이규봉선생의 주도로 북면을 시발로 가평일대에서 3천2백여 군민이 군청 앞에 운집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일제에 항거함으로서 극일정신과 애국애족정신을 방방곡곡에 과시한바 있다.

당시 일제의 총칼에 가평군민 23명이 희생되고 28명이 붙잡혀 모진수난을 겪는 등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국가적으로는 우리민족의 정신을 깨우치고 민족정신을 하나로 뭉쳐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음날인 3월 16일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다. 전날 시위로 인해 이윤석·정흥교 등이 가평헌병분견소에 체포·구금되자, 장기영·정성교 등 200여 명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 북면 목동리로 나아갔다. 그러나 목동리의 성황당고개에서 헌병대와 마주치자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저항하였으나 결국 해산당하고 말았다.

가평군 북면과 군내면에서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70여 명이나 되었다. 이 중 28명은 징역 6개월에서 3년까지의 실형이 선고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태형을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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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절 좋은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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