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in #kr6 years ago (edited)

고작 5개월이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스팀잇의 시계는 느리게 간다. 여러 일들을 보았고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이 있었다. 글쓰기 공모전 이후로 눈에 띄게 내 블로그 글이 줄었지만 그 전부터 글쓰기가 어려웠다.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옮겨 적으면 되는 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시선과 감각은 이 세상의 극히 일부에만, 오직 그 것들에만 향해있음을 알았다. 술술 적히는 날은 대개 이미 다루었던 것에 대하여 단어와 사례만 바꾼 재탕의 글인 경우가 많아 다 적고 다 지웠다. 쓰는 내가 지겨운데 읽는 이들에게 피로를 제공하면서 친분을 볼모로 보팅을 받고 싶지는 않다. 그 전에 더 잘 적었었는지 의문이고 지금 내 상황이 슬럼프라면 이 것은 아주 오래갈지도 모르겠다.

스팀잇이 정체 혹은 침체 되어 있는 상황이 나같은 관종에게는 더 기껍다. 재기 넘치는 다양한 글이 범람하던 시절보다 내 글이 누군가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올라가니까 그렇다. 애정과 관심을 받는 것이 내게는 유일하게 중요하고 나를 춤추게 만든다. 채굴이라는 표현은 처음부터 정이 가지 않았다. 사랑하기때문에 그녀를 위했던 것처럼 좋아하기때문에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내가 아끼는 사람을 자랑하고 싶듯 글 역시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과정이 채굴이라면 나는 구리든 석탄이든 다이아든 작업의 결과물을 목적 삼는 것이기에 그 단어가 싫었다. 나는 섹스를 위해 이성의 환심을 사려는 몸짓을 싫어하는데 채굴을 위한 곡괭이질을 상상하면 꼭 그 것이 연상되곤 했다. 성취를 위한 과정의 열정은 아름답지만 취하려는 욕심이 과해지면 모든 수단을 스스로 미화하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강렬히 섹스를 원할 때 딱 그만큼 자제심을 발휘한다. 내 감정에 충실해지는만큼 상대방의 심정에 주의를 덜 기울이고 그로 인해 상처나 나쁜 기억을 남길 가능성이 높아져서 싫다. 상대가 원하고 나는 그저 그럴 때 응해주는 것도 고역이지만 내가 원할 때 참는 것이 역시 조금 더 힘들다. 그래도 나는 욕망의 노예가 된 내 모습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이 가장 두렵다.

나보다 9살이 어린 여동생이 말한다. 오빠처럼 세상 편하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차마 나에게 할 수 없어 엄마에게 말하고 갔다고 한다. 누구나 나에게 했어도 수 십, 수 백 번은 했어야 했고 내가 아주 많이 들었어야 할 말을 32살 먹도록 안 듣고 살았다는 사실이 새삼 더 놀랍다. 내 동생 역시도 내 얼굴에 대고 했어도 되는 말을 굳이 날 배려하여 엄마에게 완곡한 표현으로 말하고 갔단다. 내 안에 만연해 있었지만 이미 공기와도 같은 것이라 오히려 인지하지 못 했던 내 삶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이 삽시간에 번지고 나는 몇 일째 그 것만 마시고 있다. 내 편안과 희희낙락을 위화감 없이 받아 들인 적은 없으나 그 것들이 익숙할만한 녹록한 생활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나는 여전히 꿈이 있고 그 것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적어지는 원인이 바로 내 자신에게 있음을 어리석게도 이제 알았다. 더불어 '하루를 사는 것에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자들이 꿈을 꿀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이제 알 것 같다고 하기엔 아직도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하다. 나는 꿈같은 달달한 것을 꿀 겨를이 있음을 감사하기만 하기로 했다.

홍천에 있는 펜션으로 1박 2일 다녀왔다. 1부부, 1커플, 1솔로 총 5명의 휴가였다. 가든팍은 1솔로로 활약했다. 남자 셋이 매우 친하기에 형성된 모임으로 일년에 몇 번은 꼭 만나고 휴가는 늘 함께 한다. 회계사인 친구와 현대차를 다니는 친구이다. 우리가 친해진 이유는 성적순으로 학기마다 인원을 갈아 치우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A의 와이프와 B의 여친은 모두 우리 오빠(그러니까 각각의 남편과 남자친구)가 왜 이런 오빠와 친한지 의아한 눈치인 것도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가을의 전설 브래드 피트 헤어를 하고 수염도 그와 비슷하게 기르고 있으며 생긴 것은 원래 공부 못 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 머리의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쉽게 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더운+더워 보이는 머리로 혹서기를 견뎌냈는데 그 기간을 기념하는 의미로라도 나는 머리를 기르겠다. 투블럭 쓰리 블럭 아주 갓 걸음마 뗀 아이들까지 머리를 층을 내서 자르는 탓에 반발심리가 생긴 것도 있다. 애매하게 긴 사람은 또 많으니 아주 길게 하고 다니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썩 좋은 생각이 아닌 듯 하다는 당신의 의견에는 나도 동의한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안다. 이것은 자만이나 착각이 아니다. 분명히 있다. 무한히 기쁘며 분에 넘치는 영광이다. 나는 보름에 한 번 글을 쓸지언정 스팀잇을 떠날 일은 없다. 그러니 몇 해에 한 번씩 생각나서 카톡 프사라도 눌러보게 되는 친구처럼 저를 그렇게 여겨 주시길..! 나 역시도 기다리는 분이 계시다. 안 돌아오신 듯 하지만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추석이 다 가도록 안 오시면 나는 그를 추억하며 또 글짓기 대회를 10월쯤 열어 볼 생각이다. 글쓰기 공모전을 열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빡세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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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피트 좋아합니다.ㅋㅋ
기다리는 거 알면서 자주 안보여주는 건 이유가 있겠죠?

좋은 가족분들 덕분에 가든님이 꿈꿀수 있는듯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garden.park 님 화이팅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 역시 기다리는 분이 있는데 언제 오시려나.

관종에겐 유리. 역발상 좋군요 ㅎㅎ

글짓기 대회를 위해 가을의 전설 컨셉으로 기르고 계신가요 ㅎㅎㅎ

저랑 비슷한 나이대인것 같은데... 저와 굉장히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것 같네요. ㅋ
채굴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것도 그렇고.. 몸을 얻기위해 환심을 사려하는 몸짓을 싫어하는 것도.. 성취하려는 과정은 아름답지만 욕심이 과해지면 과정을 미화하고 합리화 하려한다는 말도 많은 공감이 되고요...
뭐... 암튼... 글 잘 읽고 갑니다. :)
스팀잇에는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게 해주는 글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좋습니다. :)

정말 안 돌아오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돌아오게 하는 뭔가가 없을까요?

브래드 피트라 ㅋㅋ 풀봇가면 인증해주시나요?

글발이 가든님 머리 갈기마다 주렁주렁 여물기를
바랍니다.
언제든 재미있게 읽을 준비가 되어 있네요.
서른 둘.... 아직은 뭐든 해볼 수 있으십니다.

이 친구 지금 나보다 더 머리가 긴 것인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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