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미술관 : 근대의 걸작 展
다녀온지 두 달 된 전시인데, 더 지나면 기억들이 휘발될 것 같아 이제라도 리뷰를 올려볼까 한다.
이 때만 해도 걸어다니면서 화창한 날씨를 만끽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 문득 새삼스럽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운 공기는 나의 생산성을 무한대로 떨어지게 만드는 탓에 나는 이번주를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얼린 망고, 콩국수로 보냈다. 내 몸이 이 세가지만으로 가득찬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도 있다. 아무튼, 아직 전시 기간이 남아있으니, 더위가 한풀 꺾였을 때 슬슬 가보면 좋을 전시다.
여행지로서의 미술관
전시 내용에 앞서 덕수궁 미술관에 대한 찬사를 살짝 시작하고 넘어가볼까 한다. 이것은 전시의 내용이나 작품보다는 미술관의 위치와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러 미술관들이 있지만, 덕수궁 미술관은 갈 때마다 좋은 기억만 남는다. 시청역 앞에 자리잡은 서울시립미술관도 좋은 편이지만, 덕수궁을 마치 공원 산책하듯이 걸어서 가장 안쪽에 있는 미술관을 향하는 그 시간의 경험이 참 좋다. 항상 사람이 너무 많지도 없지도 않다는 것이 가장 좋고, 이러한 적절한 인구밀도는 전시실까지 이어진다.
공간의 기억을 완성시키는 건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있는 나인데, 줄서는 미술관이나 자본으로 화려하게 자리잡은 미술관의 경험들이 덕수궁보다 결코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시들은 국내 작가들 중심의 근대를 다시 살펴보는 형태가 많은데, 아주 실험적인 주제들은 아니지만 그게 또 이 덕수궁 미술관이라는 정체성과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 자연스러움이 참 맘에 든다. 마치 자기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를 너무 잘 아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찬사 끝.
미술관을 새로운 여행지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그에 대한 사소한 경험만 모아서 시리즈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여행지로서의 미술관 - 환기미술관 하나 쓰고 지지부진해졌던 기억. 문득 다시 좀 시리즈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덕수궁 미술관
'내가 사랑한 미술관'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바로 덕수궁 미술관이다.
올해로 개관 80주년을 맞이하는 덕수궁 미술관은 탄생 배경에서 부터 궁안에 자리잡은 서양식 외관까지 그 자체로 근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미술관의 건축적인 미학에서 부터 국내 근대 작가들의 작품, 현대적으로 다시 바라본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이 전시에서 느껴진다.
첫번째 전시에서는 도면이 가득했는데, 전시실이 마치 건축 스튜디오나 학교의 모습을 연상케하는 연출로 되어있는 것이 더 인상적이었다. 치밀하다 못해 머리가 저려오는 듯한 여러 장의 도면들을 보며, 건축의 섬세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특별히 평소엔 공개되지 않던 공간도 볼 수 있었는데, 원통형의 좁디 좁은 계단이 미술관 한쪽 구석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전에는 몰랐다. 오르락내르락했던 사람들이 살았던 이 공간의 그 시간 속에는 어떤 분위기가 감돌았을까 상상해본다. 이런 공간을 보면, 막연한 경외감과 두려움에 감탄하게 되는데, 죽었다고 인지했던 공간이 사실은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시간 그곳을 지키며 살아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힙한 레트로
김환기, 이중섭을 비롯한 변월룡, 구본웅 등의 근대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여럿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바로 이 자개 장식장이다. 공예가이신 백태원 작가가 1960년대에 제작했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근대의 작품인지 현대의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로 유니크하다고 느껴졌다.
자개는 요즘 다시 인테리어의 한 요소로 쉽게 쓰이기도 하지만, 그 원형이 현대화되고 새로운 디자인을 입히기에 한계점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작품에 '힙하다'는 경박한 표현을 사용해 죄송하지만, 이게 진짜 힙한거 아닌가? 니가 한거 내가 가져다 놓고 나의 창조작인 것 마냥 ctrl+c, ctrl+v하는 거 말고. 이 정도로 자기 해석점은 가져야 힙하다거나 레트로하다는 표현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쪼그려 앉아 열심히 쳐다보던 작품이었다.
건축무한 증식기하
전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미디어 아트는 완벽하게 좌우 대칭구조를 이루는 덕수궁 미술관의 건축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해석을 넣어 '건축무한 증식기하'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무한대로 증식할 것 만 같은 기하학적인 선들의 향연이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했지만, 다소 소장전의 느낌으로 끝날 수도 있는 전시의 구성에 미디어 아트 하나로 좀 더 풍성해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덧붙임
마나마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 처럼 정체성 불분명한 사람에게 어떤 글을 기대하고 연락을 주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카테고리를 좁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에 대한 재해석'이란 소개글을 달았다. 요즘 스팀잇에 예전에 썼던 라이프스타일 분석글을 정리 및 수정 보완 중에 있는데, 그 글들과 전시 리뷰를 중심으로 올려볼까 싶다.
부디 민폐까 되지 않기를..
건축무한 증식기하는 이상의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 생각나요. 입 벌리고 보다가 침 흘릴 뻔...
라라님 덕분에 시 찾아서 읽어보고 왔어요. 왠지 이 시의 제목에서 가져온 것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시를 읽는데 읽다만 소설인데 '특성없는 남자'가 생각이 나기도 하네요:)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고 못가고 있는 전시.. 요즘엔 날씨가 더워서 더욱..ㅠㅠ 원통형 계단은 평소에 공개되어있지 않던 곳이라 그런지 미스터리해 보이네요 ㅎㅎ
정말 미스터리해보였어요. 다음주 지나서 조금 더위가 꺾인후에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날씨 좀 덜 더워지면 가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늦여름에 가면 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
심미안이 뛰어나시네요.
전 미술은 이상하게 너무 어렵더라고요.ㅠ
이해해보려 노력한 적이 잠깐 있었는데 노력하는게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야 진짜지 하고 접었었습니다. ^^a
덕수궁 미술관은 근대 작품관련 전시가 많은 편이라 역사로 바라보면 그리 어렵진 않으실거에요.ㅎㅎ 아이들 데리고 부모들이 오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저도 예술을 잘 아는 것은 아니라서 매번 기획의 타이틀이나 설명을 열심히보면서 이해하려하는 편이에요
예술작품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설명을 읽고 보니 넘 좋네요 ^^ 감사합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마나마인~~~~축하드립니다!
스팀시티 이벤트 보팅(20-5)입니다.
럭키님 감사합니다!!!
마나마인 감축드리옵니다.
ㅋㅋ찡님 감사해용
계단에서 근대시대의 시인 작가들이 담배피면서 내려올꺼같아요 이상과 구보~!?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도 전시되어 있답니다:)
인왕산 자락이야기길에 시인이상과 화가 구본웅의 이야기가 있었네요 ㅎㅎ 같은 인왕상 자락에 태어나셔서 같은 학교를 졸업하시고
구본웅이 이상초상화를 그리고 이상이 구본웅을 위해 시를 썼었군요! ㅋㅋ
감사합니다
날씨가 좀 선선해 지면 가보고싶네요 ㅎㅎ
마나마인 축하드려요.^^ 그곳에서도 뵙겠네요.
감사합니다. 키위파님 쓰신거 보고 있어용:)
덕수궁 미술관 가본지 정말 오래됐네요..
봄에 가면 그렇게 좋다던데..
마나마인 활동하시게 된 거 축하드립니다~~
넘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하시길 바래요 ^^
감사합니다. 열시히 활동해볼게요. 늦여름이나 가을에 가기에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