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로서의 미술관 - 환기미술관

in #kr-travel8 years ago





올해 초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을 찾은 적이 있다.




한창 새로운 매거진에 대한 주제에 열을 올린 때였다. 그러다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히고 진행이 더뎌지면서 사이트에 리포트 형식으로 올리는 것으로 선회를 했었다. 그 사이트도 지금은 멈춘 상태가 되었지만, 거기에 썼던 3편의 글들은 모두 스팀잇에 올려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셨고, 살롱에 대한 어떤 기대감으로 재탄생되었으니 그다지 실패한 계획인 것 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4번째 글은 '여행지로서의 미술관'이라는 주제로 여러 도시의 미술관을 예술가의 시선이 아닌,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접근이었다. 그리고 첫번째 타겟이 된 곳이 환기미술관이었다. 너무 메이저같아서 굳이 더 언급할 필요가 없는 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의 전당 같은 곳은 제외. 상업적으로 흥해서 줄을 서는 대림미술관이나 D뮤지엄도 제외. 그냥 조금 다른 관점으로 서울을 보고 싶은 해외여행객이 된다면,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생겨 어느 동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어떤 미술관을 가는 것이 좋을까라는 기준으로 고민을 했다. 미술관도 기준이 되고, 그 미술관이 위치한 동네도 기준이 된다.

인왕산과 북악산 자락에 있는 부암동은 언덕과 골목의 연속이다. 골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다보면 크고 작은 갤러리와 까페들을 문득문득 만날 수 있다. 계속 걷다보면 숨이 차기도하는데, 그 만큼 많은 공간들이 바깥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근사한 뷰를 가지고 있다. 산과 동네가 어우러져있는 모습은 뭔가 소소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탁트인 한강을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제 서울에서 이런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닌게 되어가고 있기에 더 특별하다. 부암동도 새로운 까페나 샵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비교적 긴 호흡을 가진 사람들이 동네에 터를 잡는 듯 하다. 서울스러우면서도 서울스럽지 않다.







주변 건물들의 분위기와 결을 그대로 이어서 가지고 있는 듯 단정한 모습이다. 화려한 치장은 조금도 없어보이는 외관은 미술관이 아닌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로 다른 3개의 건물들이 한 공간안에 어우러져있고, 그 사이사이 마당과 정원들은 잘 닦여져있는 듯 하면서도 숨 막힐 듯한 정갈함은 아니다. 왠지 모르게 수수한 느낌이다.







'색채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특별기획전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기에 입구에 그의 아내 김향안과의 사진컷만 찍었다.

김환기 화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단색화의 거장이자, 국내 근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가장 비싼 작품의 주인공..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뭐 사실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전시는 그가 색채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시도와 연구를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형태의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1층엔 색과 질감에 대해 다양하게 연구했던 흔적과 초기 작품 위주로 전시를 했고, 2층, 3층으로 갈 수록 중압감마저 드는 그의 거대한 단색화 작품들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다. 마치 피날레를 향해가는 듯한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했다.

집요하고 고집스러울 만큼 색과 그림에 빠져들었던 김환기의 작품은 시간을 거쳐 갈수록 단순해진다. 단순해진다는 것은 사실 더 깊어진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캔버스를 직접 제작했다고 하는데, 남들이 하나의 그림을 그려낼 만큼의 시간을 준비하는 것에 공을 들였다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작품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은 미술관의 내부였다. 독특한 구조의 미술관은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1층의 일부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막힌 듯 하면서도 열린 듯한 구조가 끝없는 공간감을 주는 듯 했다. 반투명한 창들은 은은하게 내부를 비추면서 한없이 공간을 차분하면서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엽서도 샀다. 흑백사진챌린지에서도 올린적이 있는 사진이다.







다음은 별채같은 곳, 수향산방.

수향산방은 김환기가 디자인했던 도면을 살려 지은 집이었다고 한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 안에는 김환기가 그렸던 문학잡지의 표지들이 전시되어있고, 한 켠에는 김환기의 화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 있는데 골동품같은 가구들은 지금 보아도 안목이 혀를 내두를 만큼 단정하고 고급스럽다.







이 미술관은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이 남편이 죽고 난 뒤에 지은 미술관이다.

김환기에 대해 파고들어 보면 볼수록 김향안이 빠지고서는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이 미술관에도 그 흔적들이 알게 모르게 남아있다. 이 미술관에는 파리의 대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유리에 그림은 그려넣은 '비트라유'작품이 하나의 창으로 남아있다. 김향안이 남편의 그림을 가지고 파리의 장인에게 의뢰하여 가져온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예술가의 아내가 아니었다. 수필을 쓰는 작가였고, 미술평론가였으며, 남편의 뮤즈일 뿐 아니라, 조력자이기까지 했다. 골동품을 사들이는데도 특유의 심미안을 발휘했고, 그녀 자체로 예술가였다. 미술관을 찾아보다 김향안의 수필집도 샀다.

사실 더 관심을 갖게 된건 살롱때문에 '제비다방'을 찾아보다가, 시인 이상의 부인이 바로 김향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다. 시인 이상의 아내였고, 화가 김환기의 아내였던 김향안이 바로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고서 그들의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뭐지 이 여자, 팜므파탈인가?' 하는 호기심에 '그럼 그들은 그 시대에 삼각관계였나?' 싶은 호기심이 더해졌다. (결론은 막장드라마는 없었고, 시인 이상이 죽고 난 후 김환기를 만나 재혼함)






이 미술관은 김환기를 위한 미술관이었지만, 김향안의 손 때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스토리를 알고 보면 이 미술관은 그 둘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김향안의 수필을 읽으며, 환기미술관에 대한 여행을 머릿속에서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살았던 터전이기도 한 부암동의 옛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파리에서 생활했던 이야기와 연결짓기도 해보면서 수필의 호흡을 따라가고 있다.

사실 리포트는 미술관 주변의 이야기까지 묶어내는 것이 원래 의도였지만,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진 못했다. 다만, 환기미술관을 들린 여행객이라면, 서울을 혹은 부암동을 다 알았다고 할 순 없지만, 한 켠에 숨겨진 공기의 온도를 깊게 느꼈다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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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김향안 님의 에세이, 「카페와 참종이」라는 책에 매료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파란색과 흰색만 섞인 오래된 표지는 지금 시대에서도 촌스럽지 않은 아우라를 뿜고 있었죠. 학교 도서관에 중학생들은 거의 손도 대지 않고 먼지만 쌓인 책을 처음 품에 안았을 때 어찌나 설레던지, 학교 마치고 근처 벚꽃나무 숲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곳에서 잠시 독서의 시간을 만끽했더랬죠. 환기미술관은 가본 적이 없는데 p님의 포스팅으로 둘러볼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김향안이라는 작가, 너무 멋지고- 본받고 싶은 인물입니다...!!! ㅎㅎㅎㅎ

전 아직 월하의 마음을 읽고 있는데, 사소한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씹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요. '카페와 참종이'라는 에세이도 있는 줄 몰랐는데, 읽어보고 싶네요 :)

부암동을 두번정도.. 가본 것 같은데 @emotionalp님이 설명하신

비교적 긴 호흡을 가진 사람들이 동네에 터를 잡는 듯 하다.

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참 조용하면서도 그 동네만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였어요. 물론 그곳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강남이나 이태원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가 있죠. 오늘 이 포스팅을 보니 주말에는 부암동에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색다른 느낌의 미술관이라 차근차근 걸어다니면서 구경하기에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부암동도 요즘은 카페와 상점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그래도 번잡스럽지 않게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는 것 같아요. 주변엔 다른 미술관들도 많으니 같이 둘러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전 여기 갔을 때 한군데 더 찾아가다 체력완전 소진 ㅎㅎㅎ

이상과 김향안이 좀 더 빨리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 준 사람이 아니었던가.. 내재된 가치를 이끌어 내 주고 그것을 세상의 시야에 맞게 디스플레이 할 줄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저기 누군가의 뒤에 있죠. ^^

사람과 사람이 연쇄작용을 한다는 것이 정말 대단해요. 요즘은 그게 예술가들 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한테서 확장되서 보여지구요. 이상은 워낙 단명한 천재였던 것 같아요.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김향안이 오히려 더 예술가적인 기질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ㅎㅎ

오! 그렇군요. 김향안이라는 분... 잘은 모르지만 두분의 뮤즈이신가보군요. 부럽당! 전 요즘 문화생활하고는 담 쌓고 살아서요 ㅜㅜ 에효 ㅜㅜ 어릴땐 미술관이며 공연장을 제집 드나들듯 했는데, 사는게 왜 이렇죠?

네 뮤즈이자 아내였죠. ㅎㅎ 저도 요즘엔 노동에 바빠 미술관을 통 못갔어요ㅠㅠ좀 한가해지면 다시 여기저기 좀 다녀볼 생각이에요. 바쁘다보면 어디 보러 다니는 것도 챙겨서 해야하죠 ㅎㅎ 전 운동을 너무 안해서 탈이에요. 에빵님보면서 자극받고 저도 운동하려고 마음은 먹고 있지만, 실천할 수 있을지....ㅎㅎ

한 켠에 숨겨진 공기의 온도를 깊게 느꼈다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장 느낌이 좋아서, 그 부분을 몇번이고 다시 읽었어요 :) 환기미술관에 갔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숨을 크게 한번 내쉬게 되었습니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해요 :) 이젠 어디를 가더라도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보다 깊은 한 조각을 느끼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점점. 환기미술관이 어느 부분에서는 그런 한 조각이 될 수 있을 것도 같고 ㅎㅎ

오오.. 대림미술관은 자주 갔지만 이런 미술관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다음에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들러보고 싶습니다 :)

대림미술관에서 좀 더 윗쪽으로 올라가면 성북동, 부암동 자락에 숨겨진 작은 미술관들이 많아요. 추천합니다 :)

이번 포스팅은 글에서도 그렇고 사진에서도 그렇고 뭔가 따스함이 느껴지네요. 포스팅도 부암동 같은 느낌이었달까요?ㅎㅎ
암튼 기분 좋게 잘 읽었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글이 부암동스러웠나요??!! 너무 기분 좋은데요 ㅎㅎ감사합니다 즐거운 금요일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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