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여행기#24 지구에 육박하다 - 시베리아 횡단 철도 2: 노력과 우연

in #kr-writing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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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1] 이르쿠츠크 역 승강장

새벽에 열차가 이르쿠츠크 역에 멈췄습니다. 이르쿠츠크는 제 기억에 강하게 박혀있는 이름입니다. 이 도시는 고등학교 세계지리 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추운 장소로 소개되었고 가장 춥다는 대표 성질 덕분에 시험에도 자주 등장했습니다. 세계지리 선생님은 수업에서 이르쿠츠크가 나올 때면 오줌 싸면 얼어서 기둥이 된다는 소리를 자주 해서 우리 기억에 남기려 했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이르쿠츠크를 지나간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의 독특한 거소 신고 제도 때문에 이르쿠츠크를 상기했지요. 러시아는 비자만 받았다고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게 아니라 여행 중 거소를 관청에 신고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출국 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열차 안에서는 당연히 거소가 없으니 문제가 생길 거 같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러시아 대사관이나 외교부 자료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호텔은 거소 신고를 대신해주기에 시베리아에서 하루 머무는 게 안전하다고 봤습니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중간에 하루 머물 호텔을 찾다 이르쿠츠크가 눈에 걸렸습니다.

이르쿠츠크가 눈에 걸릴 때부터 이번 여행이 미묘하게 달라 보였습니다. 어쩌면 세계지리 덕후라면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 이르쿠츠크 아닐까요? 서울 어딘가에는 세계지리에 빠진 사람이 이르쿠츠크에 가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알바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도 그렇습니다. 철도 덕후라면 이 기차 여행을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르쿠츠크는 출국할 때 귀찮은 일을 면할 곳일 뿐이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오로라를 보러 가면서 값싸고 오래 체류할 수 있는 수단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계지리 덕후나 철도 덕후에게 꿈같은 일을 한 건 아닙니다. 하다못해 뭐라도 조금 배우고 경험했으니 트롬쇠 가는 길에 기차 탈 생각도 하고 여정도 꾸릴 수 있던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 여행을 위해서 특별히 노력한 건 분명히 없습니다. 노르웨이를 직항으로 가는 거나 여기저기 끊어서 가는 거나 가격이 비슷하다는 걸 알았을 때 저에게 이미 갖춰진 것들이 이번 여행을 위해 조합된 것뿐입니다.

저는 목적한 게 얼마나 이루어지나 싶습니다. 유치원 때는 다 대통령 된다고 했고 드라마 「카이스트」가 유행하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모두 카이스트에 간다고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모두 "스카이"에 가고 싶어 했고 학부 졸업할 즈음에는 모두 돈 많이 주고 제때 쉬는 회사에 가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소수만 그 목적을 이루었지요. 노력하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애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그 사람들은 노력을 덜 한 걸까요? 노력하는 방법이 틀렸다고요? 그럼 그 방법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세상은 동화 같지 않습니다. 나쁜 놈이 잘 살기도 하고 어떻게 운을 잘 탄 사람이 떵떵거리면서 열심히 노력한 이들을 부리기도 합니다. 노력했다고 일등 하는 거 아니고 일등 했다고 노력한 것도 아닙니다. 운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거라고요? 그건 맞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며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니는 안 군과 책가방도 없이 탱자탱자 학교 다니는 김 군이 같이 걸어가다 하늘에서 돈 비가 내리면 노력하는 안 군이 가방에 더 많은 돈을 담는 건 분명합니다.

세상은 제 맘대로 되지 않고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제가 합당한 노력을 해도 반드시 이뤄지지 않는 목표를 향해 노력한 뒤에 결과가 예측한 방식으로 산출되지 않으면 그만큼 허무한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될 일을 한 모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노력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의미 있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지금 인내하고 노력하는 게 안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적어도 자신은 그 과정을 긍정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노력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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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여행가는 청춘이 부러울 뿐이네요.1ㅎ

감사합니다, @tip2yo님!!!

우와 부럽습니다 ㅎㅎ 저도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보고 싶어요 ㅎㅎ 팔로우 하고 갈게요~

감사합니다. @yuoyster님도 꼭 기회가 생기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팔로우 했습니다!

👍🏼👍🏼멋져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smile.jay님. 베트남 이야기는 잘 보고 있어요!

맞는 말입니다. 결과에만 연연하는게 아니라, 그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 자체가 본인에게 의미있게 다가온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허무함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네요.
그나저나 시베리아 횡단철도라니.. 부럽습니다 ㅠ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은 참 좋은 일 같습니다. @hisc님의 말을 들으니 이 여행이 더 소중해집니다. hisc님에게도 좋은 일이 다가오길 기원합니다!

1일 1회 포스팅!
1일 1회 짱짱맨 태그 사용!
^^ 즐거운 스티밋의 시작!

감사합니다, @virus707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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