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여행기#19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선입견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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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5] 러시아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의 일면

예비군 훈련에 가면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제 친구들은 결혼한 사람이 없는데 예비군 훈련에 가면 저보다 어린데 결혼한 사람이 꼭 있더군요. 어칠어칠하며 동네에서 껌 좀 씹는 형님의 느낌을 풍기는 사람도 볼 수 있지요. 이런 사람이 훈련 중에 서바이벌 게임을 하면 더워죽겠는데 거추장스럽게 보호장구까지 차고 있으니 제대로 하라는 교관의 외침은 뒤로하고 한 발자국도 걷지 않고 하늘로 총알을 다 소진하고는 죽었다고 내려옵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안에서 제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의 어칠어칠한 행동거지를 심심찮게 봤습니다. 예비군에서 본 말 안 듣는 사람 같은 느낌이지요. 다르게 표현하면 뉴욕의 마피아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상한 색 츄리링에 정장 구두를 신고 낮에 거리를 배회하는 조직원들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자기들끼리 히히닥거리거나 결국 강도질인데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마냥 쑥덕거리거나 그런 사람들 말이지요. 제가 탄 열차에서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가는 버스 맨 뒷자리를 차지한 반에서 좀 노는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한 무리의 사람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거나 서로 눈짓하며 금연을 어기고 담배 피로 가는 일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열차 안에서 어칠어칠한 사람들이 마피아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말 안 듣는 예비군이나 반에서 좀 노는 아이들이 마피아라는 말도 아닙니다. 어떤 느낌을 전달해 보려고 한 겁니다. 뭔가 규율 잡히지 않고 헐렁한 느낌 말이지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괜찮게 그려지는 사람에게서 잘 느껴지지 않는 성품을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제 말 속에도 좀 노는 고등학생이나 말 안듣는 예비군에 대한 저의 잘못된 시선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도 나름 이유가 있을 건데 그렇게 공명정대하지 않은 제 기준에 맞춰 일상에서 보기 힘든 사람으로 만든 겁니다. 그나마 제 느낌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면서 이런 편견들을 알아차린 게 다행일 뿐입니다.

제 편견이겠지만 먹을 것도 나눈 제 위층 사람에게도 이런 어칠어칠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짝 불안하기도 했어요. 만약을 대비해서 종착역의 지리를 잘 알아야 하는 건 아닌지 제가 먼저 내려서 사라져야 하는 건 아닌지 혹은 이 사람을 먼저 내보내고 늦게 내려야 하는 건 아닌지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이 사람의 친구가 근처에 있을 때는 더 신경 쓰였는데 가끔은 무슨 작당이라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는 저를 해칠 생각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제가 문제에 빠지고 싶지 않은 욕구 때문에 상대를 의심하는 태도가 겉으로 보여 위층 사람에게 상처 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찌 되었든 내일은 모스크바에 도착합니다. 위층 사람은 더플백을 꺼내서 짐을 정리했어요. 일을 찾으러 먼 거리를 가는 중이어서인지 그의 가방에는 포크에서 세제까지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게 들어 있었습니다. 그 가방을 보며 전 지금 들고 있는 가방이 거의 망가졌기에 인천에 도착하면 가방 살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처럼 많은 걸 들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이번 여행의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 등산 가방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에서 가방을 사기로 마음먹어요. 그 이유는 여행이 끝나는 날에 튼튼하고 맬 수 있는 끈도 많이 달려 어디든 떠나기에 좋은 가방을 사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비싼 돈 들여 여행하는 중에 제가 생각한다는 게 고작 가방 산다는 겁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철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니 저는 자연농원 가서 기념품 살 생각만 하는 꼬맹이에서 아직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이 글의 처음에 말 안 듣는 예비군이 이상하다고 뭐라고 한 제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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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tumble님 감사합니다!!!

^^ 즐거운 스티밋!!!

감사합니다!!!

저라면 그들이 있는 동안엔 계속 불안에 떨었을 듯 하네요..;

러시아 문화를 처음 접한 것이니 제가 많이 오해하고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있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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