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여행기#18 열차에서 일주일 - 시베리아 횡단 철도 1: 나눔

in #kr-writing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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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4] 열차를 순찰하는 두 경찰 - 왼쪽 끝에는 사과 소년의 어깨가 오른쪽 끝에는 위층 사람의 어깨가 보입니다.

사과 소년이 떠난 뒤 위층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 올라가 누웠습니다. 저는 마지막 남은 “도시락”을 먹었지요. 이제 내일 아침에 인스턴트 감자 퓌레 하나를 먹고 나면 열차에서 내려 따듯한 요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설국 열차에서 양갱 같은 음식을 먹는 것에 비하겠느냐마는 정말 인스턴트로 보낸 지난 시간과 좁은 3등 객실 거기에 더해 추운 눈밭 위의 철도라는 점은 설국 열차 안이 이럴 거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제가 열차에서 마지막 저녁을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위층 사람의 발이 조심스럽게 내려오며 바닥을 찾았습니다. 저도 재빠르게 잠자리를 돌돌 말아 그의 침대에 얹고 제가 누워있던 침대의 가운데 부분을 들어 돌려서 탁자를 만들었습니다. 위층 사람은 자신의 더플백에서 먹을 것들을 꺼냈지요. 빵은 지난 역에 정차할 때 새로 산 건데 역시나 소꿉놀이에 있는 플라스틱 빵 맛이 날 게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통에 담아온 요리가 상했다는 겁니다.

이미 얻어먹은 게 있기는 하지만 꼭 그렇기 때문에 제 감자 퓌레를 그와 나눈 건 아닙니다. 사과 소년도 위층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 음식을 저에게 나눴습니다. 만약 사과 소년이 위층 사람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제가 음식을 나누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사과 소년은 자신을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도움받는 걸 꺼리거나 도움받은 사실을 좋게 생각하지 못할 거라고 저에게 변명하면서 아침에 먹을 감자 퓌레를 아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사과 소년은 어느 정도 배워서 언어로 소통할 수 있었고 제가 사는 문화에 대한 관심까지 있었던 것에 반해 위층 사람은 말이 통하기는커녕 음식도 재차 권하지 않고 쿨하게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음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생각을 더 명확하게 소통할 가능성이 높은 사과 소년이 아니라 원시적인 의사소통밖에 할 수 없는 위층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니 저는 같은 언어나 문화를 공유하거나 좋은 매너를 지닌 사람이라도 모든 소통에 실패할지 모르고 반대로 말이 통하지 않고 저와 전혀 다른 세상을 산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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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tumble님 감사합니다!

모래요정 바람돌이가 하루에 한가지 소원만을 들어주는것처럼
짱짱맨도 1일 1회 보팅을 최선으로 합니다.
부타케어~ 1일 1회~~
너무 밀려서 바쁩니다!!

@virus707님 감사합니다!!

쓰신 여행기를 읽고 있으니 제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타고 있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담백하게 술술 읽히게 글을 쓰시는 재주가 너무 부럽네요! :) 잘 읽고 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agee00님의 여행에 대한 글과 사진들도 제 머리 속에 많이 남아 있답니다. 특히 여행에서 도서관 같은, 사람 많이 북적거리는 관광지와 떨어진 곳을 보여주고 말하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곳 많이 보여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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