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러시아] 굳이 이 편의 제목을 붙이면 카잔 성당
여행 첫날부터 허세나 부리다가 현지 여자들에게 신나게 털리고 잠자리에 든 것은 무려 일곱시였다.
[굿모닝 러시아] 여행 첫날 현지 여자들한테 호구 털린 이야기
어제는 너무 설렌 마음으로 한달음에 밖을 나간 탓에 잘 몰랐는데 다시 보니 호텔방이 꽤 괜찮았다. 새벽과 어둑한 햇살과 커튼 뒤 그림자가 썩 우아했다. 물론 당시 나는 멘탈이 털털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을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엉엉 울지 않은 게 다행이지.
지금 생각하면 꽤 아쉽다. 시간이 지나면 쓴 맛도 나름대로 추억이 되는 법인데. 아니면 교훈이라도. 인내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젊은 시절 실은 꽤 급한 성격이라 급하게 승부를 내려다가 박살이 나고 도망가던 말 위에서 똥까지 쌌다. 그리고 그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바지에 똥을 지린 상태 그대로 화공에게 자기 모습을 그리라고 명령했다. 아래 그림과 같다.
들어오는 새벽 햇살을 배경으로 한 얼빠진 얼굴 표정을 하나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듯 싶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내 꼴 사나운 패배를 기념하는 것이지. 아니면 난 그래도 꿋꿋히 살아있고 무탈히 살아갈 거라는 생존 의지를 담은, 밥이라도 꾸역꾸역 처 먹는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래 사진은 그 당일이 아니라, 후일 내가 묶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묶었던 호텔을 찍은 것이다. 무슨 개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어린 시절처럼 다닌 유치원 마냥 그립다.
생체 리듬 상은 그대로 12시간을 쓰러져 자는 게 맞았다만 조금만 있으면 실업 급여 청구서가 날아올 실업자 주제에 비싼 비행기 티켓을 끊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온 게 억울해서일까 나는 단 세 시간만에 일어나고 말았다. 관광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제법 강했나보다. 허나 그 가상한 의지와 별도로 여행 계획을 전혀 세워오지 않은터라 일단 가방을 들고 밖으로는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햇살 가득한 거리에는, 1년 중 가장 좋다는 러시아의 여름을 즐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가득했다. 추레한 몰골의 내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을 뿐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있는 그들을 보니 나만 빼고는 다들 행복한 듯 싶었다. 그렇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얌전히 목을 맬 위인은 못 되고 어제 그런 일까지 있던터라 지금 죽으면 더 한심할 것이다. 어서 관광을 하자.
일단 걷아보니 카잔 성당이 나와서 거기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미사가 있었고 결혼식도 있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고 사진도 몇 장 찍지 않았다(나중에 쓰겠지만 러시아에서 정말 경탄했던 성당은 성 이삭 성당이다).
카잔 성당의 바깥 모습은 지난 편에 찍은 것과 같고, 내부의 모습은 대략 이와 같다.
머리가 떡진 동양인 관광객의 카메라를 피해 도망가는 러시아 신혼부부의 사진을 뒤에서 도촬함 헤헷.
성당을 보고 나오니 배가 고팠다. 단가로 계산하면 한 개 당 1불은 되었을 어제 처먹은 최고급 감자튀김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뭐라도 입에 넣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길거리에서 빵을 사먹었는데 달리 사진은 남기지 않았다. 다만 후식으로 간택했던 초콜릿 가게 사진은 아래 남긴다.
혼자 여행 온 독일 여자가 있었는데 그 몰골로 말을 걸 자신은 없었다.
일단 배를 채우고 나왔다는 일차적 욕구 충족에 만족한채로 다시 거리로 나섰다.
[네바 강이 보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흔한 거리]
[가다가 본 피의 사원, 아래 에르미타주와 마찬가지 이유로 두번째 날에는 가지 않았다]
일단 생각이 나는 곳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에르미타주(Эрмитаж) 박물관이었다. 총 270만점이 전시된, 5초에 하나를 보아도 다 보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그곳이다. 그래서 그곳을 갈까 했는데, 화장실과 음료수와 예쁜 여자들을 찾으며 조금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미 에르미타주 박물관 앞 광장에 도착해버렸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갈 생각이었는데, 지도를 숙소와 10분 거리였고 어쩐지 언제든 갈 수 있는 이곳을 여행 두번째 날 방문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럼 어디를 가야하나? 뭐 계획은 고사하고 가이드북이라도 제대로 읽었어야지. 에휴.
햇살이 뇌리쬐는 광장에 잠을 못 자서 잘 돌지 않는 떡진 머리를 싸매고 쪼그리고 앉아 어딜갈까 고민하다 지나가는 여자들이나 흘깃거리는 내가 참 한심했다. 딱 만화책 「반항하지마」에 나오는 이 수준이었음.
나를 보고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나름 인텔리(?)라고 상상할 수 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그보다는 어디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에서 온 중앙 아시아계 잡역부처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걔네들은 나처럼 분칠한 것마냥 썬 크림을 바르고 나오지 않았을테니 실은 비교가 그 분들에게 실례였던 셈이다.
그래도 담배는 피지 않았다. 나는 문화 시민이니까. 누워서 낮잠도 자지 않았다. 그건 고의적인 객기, 자유로운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 겉멋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사실 누워서 잤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썼을 것 같지는 않다. 여튼 잠깐 고민하다가 시간이 많으니 좀 먼 곳을 가기로 결심했고, 즉석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여름 궁전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일단 지하철을 타야했는데 5분 거리 지하철 역을 놔두고 길을 헤매 지하철 타는데 40분이 걸린 건 안 자랑.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하철은 고풍스럽고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웅장하다. 나중에 모스크바 지하철 사진도 올릴 생각이다.
지하철을 내려 여름 궁전을 가던 버스에, 러시아 군복을 입은 약간은 촌스럽지만 건강한 인상의 러시아 군인과, 그 버스 뒷 좌석을 가득 매웠던 슬라브 청년들, 그리고 희대의 인종차별주의자처럼 생겼지만 내가 길을 묻자 아주 친절하게 답변해준 옆 자리 러시아 10대 소년의 사진을 담지 못해 유감이다. 러시아의 동양인 차별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많았던지라, 버스를 가득 채운 러시아 남성들이 혹 내게 단체로 물리치료라도 해주려고 달려들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불과 한 달 이내의 시간을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나는 러시아에서 인종 차별 비슷한 것도 당한 적이 없다. 물건을 파는 데 사기 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딱히 인종과 결부되었떤 것 같지는 않았다. 내 개인적인 경험 상 러시아 사람들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각각 생각하는 저 어느 대륙의 배 나온 인간들이나, 국민의 3분의 1이 성병 보균자인 모 나라 호빗들보다 훨씬 괜찮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자신이 아시아 문화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지식을 뽐내며 중국이나 일본 이야기를 하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너희는 다 비슷하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너네들은 다 똑같이 생겼고 난 세익스피어를 충분히 읽은터라 굳이 너네 나라 책까지는 읽을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해주고 반응을 본다.
적어도 러시아 사람들은 이중잣대를 제시하거나 겉과 속이 다르지는 않다.
마침내 여름궁전에 도착하고 말았다. 하하하하.
그리고 이 앞에서 여행기의 두번째 여인을 만나게 된다. 뭐 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니긴 함.
[굿모닝 러시아] D-1 아직 한국
[굿모닝 러시아] 기내 화장실 앞에서의 소회
[굿모닝 러시아] 백야
[굿모닝 러시아] 여행 첫날 현지 여자들한테 호구 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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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actifit 포스팅이 안 되는데... 저만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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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클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데헷
이건 어떻게 생긴거죠?
마약한 맥걸리 컬킨처럼 생겼어요, 근데 그거보다는 깨끗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현력 ㅋㅋㅋ
ㅋㅋㅋ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헤헤
솔직담백 여행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잘 읽고 갑니다.~ 왜 잘생기신 얼굴을 가리셨나요!! ㅋ
하하하 안 가리면 민폐라 부득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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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도 기대되네요ㅎ
오늘도 디클릭!
감사합니다
오늘도 디클릭!
여행기는 이렇게 써야 재밌는거군요... 오늘도 뭔가 배워갈까하고 들어왔다가 웃고갑니닼ㅋㅋㅋ 이런글에 하는 보클이 참보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클 감사드립니다 호평도 고맙습니당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