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러시아] 굳이 이 편의 제목을 붙이면 카잔 성당

in #dclick6 years ago (edited)

여행 첫날부터 허세나 부리다가 현지 여자들에게 신나게 털리고 잠자리에 든 것은 무려 일곱시였다.

[굿모닝 러시아] 여행 첫날 현지 여자들한테 호구 털린 이야기

어제는 너무 설렌 마음으로 한달음에 밖을 나간 탓에 잘 몰랐는데 다시 보니 호텔방이 꽤 괜찮았다. 새벽과 어둑한 햇살과 커튼 뒤 그림자가 썩 우아했다. 물론 당시 나는 멘탈이 털털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을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엉엉 울지 않은 게 다행이지.

지금 생각하면 꽤 아쉽다. 시간이 지나면 쓴 맛도 나름대로 추억이 되는 법인데. 아니면 교훈이라도. 인내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젊은 시절 실은 꽤 급한 성격이라 급하게 승부를 내려다가 박살이 나고 도망가던 말 위에서 똥까지 쌌다. 그리고 그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바지에 똥을 지린 상태 그대로 화공에게 자기 모습을 그리라고 명령했다. 아래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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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 새벽 햇살을 배경으로 한 얼빠진 얼굴 표정을 하나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듯 싶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내 꼴 사나운 패배를 기념하는 것이지. 아니면 난 그래도 꿋꿋히 살아있고 무탈히 살아갈 거라는 생존 의지를 담은, 밥이라도 꾸역꾸역 처 먹는 사진이라도 찍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래 사진은 그 당일이 아니라, 후일 내가 묶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묶었던 호텔을 찍은 것이다. 무슨 개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어린 시절처럼 다닌 유치원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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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리듬 상은 그대로 12시간을 쓰러져 자는 게 맞았다만 조금만 있으면 실업 급여 청구서가 날아올 실업자 주제에 비싼 비행기 티켓을 끊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온 게 억울해서일까 나는 단 세 시간만에 일어나고 말았다. 관광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제법 강했나보다. 허나 그 가상한 의지와 별도로 여행 계획을 전혀 세워오지 않은터라 일단 가방을 들고 밖으로는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햇살 가득한 거리에는, 1년 중 가장 좋다는 러시아의 여름을 즐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가득했다. 추레한 몰골의 내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을 뿐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있는 그들을 보니 나만 빼고는 다들 행복한 듯 싶었다. 그렇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얌전히 목을 맬 위인은 못 되고 어제 그런 일까지 있던터라 지금 죽으면 더 한심할 것이다. 어서 관광을 하자.

일단 걷아보니 카잔 성당이 나와서 거기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미사가 있었고 결혼식도 있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고 사진도 몇 장 찍지 않았다(나중에 쓰겠지만 러시아에서 정말 경탄했던 성당은 성 이삭 성당이다).

카잔 성당의 바깥 모습은 지난 편에 찍은 것과 같고, 내부의 모습은 대략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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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떡진 동양인 관광객의 카메라를 피해 도망가는 러시아 신혼부부의 사진을 뒤에서 도촬함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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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보고 나오니 배가 고팠다. 단가로 계산하면 한 개 당 1불은 되었을 어제 처먹은 최고급 감자튀김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뭐라도 입에 넣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길거리에서 빵을 사먹었는데 달리 사진은 남기지 않았다. 다만 후식으로 간택했던 초콜릿 가게 사진은 아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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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 온 독일 여자가 있었는데 그 몰골로 말을 걸 자신은 없었다.

일단 배를 채우고 나왔다는 일차적 욕구 충족에 만족한채로 다시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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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 강이 보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흔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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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본 피의 사원, 아래 에르미타주와 마찬가지 이유로 두번째 날에는 가지 않았다]

일단 생각이 나는 곳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에르미타주(Эрмитаж) 박물관이었다. 총 270만점이 전시된, 5초에 하나를 보아도 다 보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그곳이다. 그래서 그곳을 갈까 했는데, 화장실과 음료수와 예쁜 여자들을 찾으며 조금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미 에르미타주 박물관 앞 광장에 도착해버렸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갈 생각이었는데, 지도를 숙소와 10분 거리였고 어쩐지 언제든 갈 수 있는 이곳을 여행 두번째 날 방문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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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럼 어디를 가야하나? 뭐 계획은 고사하고 가이드북이라도 제대로 읽었어야지. 에휴.

햇살이 뇌리쬐는 광장에 잠을 못 자서 잘 돌지 않는 떡진 머리를 싸매고 쪼그리고 앉아 어딜갈까 고민하다 지나가는 여자들이나 흘깃거리는 내가 참 한심했다. 딱 만화책 「반항하지마」에 나오는 이 수준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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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나름 인텔리(?)라고 상상할 수 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그보다는 어디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에서 온 중앙 아시아계 잡역부처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걔네들은 나처럼 분칠한 것마냥 썬 크림을 바르고 나오지 않았을테니 실은 비교가 그 분들에게 실례였던 셈이다.

그래도 담배는 피지 않았다. 나는 문화 시민이니까. 누워서 낮잠도 자지 않았다. 그건 고의적인 객기, 자유로운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 겉멋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사실 누워서 잤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썼을 것 같지는 않다. 여튼 잠깐 고민하다가 시간이 많으니 좀 먼 곳을 가기로 결심했고, 즉석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여름 궁전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일단 지하철을 타야했는데 5분 거리 지하철 역을 놔두고 길을 헤매 지하철 타는데 40분이 걸린 건 안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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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하철은 고풍스럽고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웅장하다. 나중에 모스크바 지하철 사진도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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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내려 여름 궁전을 가던 버스에, 러시아 군복을 입은 약간은 촌스럽지만 건강한 인상의 러시아 군인과, 그 버스 뒷 좌석을 가득 매웠던 슬라브 청년들, 그리고 희대의 인종차별주의자처럼 생겼지만 내가 길을 묻자 아주 친절하게 답변해준 옆 자리 러시아 10대 소년의 사진을 담지 못해 유감이다. 러시아의 동양인 차별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가 많았던지라, 버스를 가득 채운 러시아 남성들이 혹 내게 단체로 물리치료라도 해주려고 달려들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불과 한 달 이내의 시간을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나는 러시아에서 인종 차별 비슷한 것도 당한 적이 없다. 물건을 파는 데 사기 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딱히 인종과 결부되었떤 것 같지는 않았다. 내 개인적인 경험 상 러시아 사람들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각각 생각하는 저 어느 대륙의 배 나온 인간들이나, 국민의 3분의 1이 성병 보균자인 모 나라 호빗들보다 훨씬 괜찮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자신이 아시아 문화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지식을 뽐내며 중국이나 일본 이야기를 하고 나는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너희는 다 비슷하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너네들은 다 똑같이 생겼고 난 세익스피어를 충분히 읽은터라 굳이 너네 나라 책까지는 읽을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해주고 반응을 본다.

적어도 러시아 사람들은 이중잣대를 제시하거나 겉과 속이 다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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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여름궁전에 도착하고 말았다. 하하하하.

그리고 이 앞에서 여행기의 두번째 여인을 만나게 된다. 뭐 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니긴 함.

[굿모닝 러시아] D-1 아직 한국
[굿모닝 러시아] 기내 화장실 앞에서의 소회
[굿모닝 러시아] 백야
[굿모닝 러시아] 여행 첫날 현지 여자들한테 호구 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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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클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데헷

희대의 인종차별주의처럼 생겼지만 내가 길을 묻자 아주 친절하게 답변해준 옆 자리 러시아 10대 소년

이건 어떻게 생긴거죠?

마약한 맥걸리 컬킨처럼 생겼어요, 근데 그거보다는 깨끗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현력 ㅋㅋㅋ

ㅋㅋㅋ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헤헤

솔직담백 여행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잘 읽고 갑니다.~ 왜 잘생기신 얼굴을 가리셨나요!! ㅋ

하하하 안 가리면 민폐라 부득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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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도 기대되네요ㅎ
오늘도 디클릭!

감사합니다
오늘도 디클릭!

여행기는 이렇게 써야 재밌는거군요... 오늘도 뭔가 배워갈까하고 들어왔다가 웃고갑니닼ㅋㅋㅋ 이런글에 하는 보클이 참보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클 감사드립니다 호평도 고맙습니당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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