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러시아] 기내 화장실 앞에서의 소회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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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는 화장실 코 앞이었다.

예전 저가 항공권으로 인도를 갔을 때는 굳이 화장실 코 앞이 아니라 지근 거리에만 접근해도 똥과 카레를 섞어 놓은 것 같은 기묘한 냄새가 났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아 물론 인도도 고가 항공권을 타고 가면 항공기가 고급스럽다. 한국의 저가 항공권도 모 외국인에게는 김치 냄새가 날지도).

카자흐스탄을 경유하는 비행기였던지라, 평소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이국적인 유라시안들의 생김새와 그들의 화장실 사용 전후 표정을 관찰할 수 있어, 여행 스타트로서의 소소한 재미는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은 얼핏 보면 동(서)양인 같지만 자세히 보면 서(동)양인처럼 생겼다. 물론 개중에는 완전 몽골로이드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코카소이드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아래 사진을 참고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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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의 똥송은 몽골로이드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유라시안이 아니라 바로 나이고, 이 사진은 오른쪽 커플의 모습을 담기 위해 찍었다. 아래 사진을 다시 보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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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가 독특하다. 저 홍금보를 닮은 남자는 얼핏 보면 동양인 같지만 자세히 보면 눈두덩이 가 움푹 들어갔을 뿐 아니라 골격도 상당히 크다. 여자의 경우 피부와 머리 색은 백인 같지만, 툭 튀어나온 광대와 눈이 동양적이다. 사진으로 다시 보니 코와 턱의 각도도 아시아인과 흡사한 것 같다. 비행기에 탑승한 이들 대부분 인상이 이런 식이었다.

분명 한국 사람과는 닮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화려하고 선이 굵지만 나쁘게 말하면 약간 뭉툭하고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은 덜 하다. 장동건이 밭 갈고 고소영이 김 맨다는 그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런 선명한 얼굴은 의외로 흔할지도. 다만 김수현이나 수애 같은 얼굴은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코카소이드나 몽골로이드가 그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환경에 맞게 진화한 것이라면(전자의 경우 비타민 D의 결핍, 후자의 경우 추위 등) 스키타이나 몽골 같은 유목민의 침략이나 스탈린의 강제 이주 등에 영향을 받은 중앙아시아 유라시안의 탄생은 상대적으로 ‘역사적’이다. 그런 점에서, 어느 나라나 사람 보는 재미가 있다만 특히 그 재미가 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비행기에 앉아있던 시간은 그닥 지루하지 않았고 금세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 와 있더라.

여기서 나는 한 가지 큰 실수를 할 뻔 했다. 살면서 이용한 항공권 대부분은 직항이었다. 유일하게 홍콩을 경유했던 항공권도, 마치 기차가 그런 것처럼 동일한 비행기가 공항에서 잠시 멈추어 있고 승객 일부가 바뀐 채 다시 출발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경유지 전후 티켓의 좌석 넘버가 같았다. 그래서 막연히 같은 비행기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비행기에 짐을 다 둔 채로 밖에 나가 공항 구경을 했다. 그러다 함께 탑승했던 승무원들이 짐을 챙기고 공항을 나가는 것을 보고 번뜩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비행기로 돌아가자 승무원이 친절히 내 짐을 들고 기다리고 있더라. 환승은 불과 한 시간 내에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호젓하게 공항 구경이나 더 했다면 돌연 러시아 여행기가 아니라 카자흐스탄 여행기를 써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이렇듯 허술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잘 안 믿는 것 같다. 직업 때문일려나. 아니면 쓰는 글이 어딘가 예민해보여서 일 수도 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허술하지는 않으니까. 근데 나를 예민한 사람이라고 평해도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만 한편으로는 본인 관심 분야 외에 다른 데는 거의 일퍼센트도 에너지를 안 쓰는 사람이라 의외로 둔하고 눈치도 없다.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인데, 그게 어떤 치밀한 악의를 가지고 찔러 봤다고 오해를 사 사회생활에서 피해를 본 적도 많다.

지근거리에서 보면 그때부터는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예전 같이 해외 여행을 갔던 전 여자 친구는 귀국 후몇일간 자기 친구들과 나라는 인간의 허술함에 대해 토론했다고 한다(근데 사실 그 여행은 사귀는 상태에서 둘이 간 것도 아니었다. 딱히 챙겨줄 이유도 없었고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그렇게 세밀하게 관찰하고 여러 사람과 결론을 공유한 그녀의 독특한 취향에 먼저 의문을 제기하고 싶기는 하다. 실은 나사 하나 몇 개 빠져 있는 모습이 모성본능이라도 자극한 것은 아닐까).

가족들은 물론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법조인을 만들려고 그렇게 기를 쓰셨던 걸 보면, 확실히 전 세대에서 법조인이라는 타이틀의 위력은 대단했나보다. 그런데 정작 로스쿨에 입학한 이후로는, 그렇게 맨날 물건이나 잃어버리는 놈이 어떻게 남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변호사가 될 수 있냐고 여러 차례 힐난하시더라.

이 직업으로 밥 빌어 먹기로 결심하고 회사까지 나온 마당에 굳이 변명을 하자면 말이다, 일단 그래도 돈을 받고 하는 남의 일에 대해서는 제법 집중하는 편이긴 하다. 책임감이 없는 인간은 아니니까. 예를 들면 나는 이번 러시아 여행에 앞서 클라이언트들에게 질문에 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미리 공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한 사람들에게 대부분 성실히 답변을 해주었고,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서는 오전에 관광을 하는 대신 의견서도 써서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나와 성격이 닮은 외삼촌은 법조인으로 거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가보았다. 외삼촌은 티켓값을 아끼기 위해 디즈니랜드에서 나를 8살(당시 13살이었다), 그리고 내 동생을 7살(당시 12살이었다)로 속이려고 했다가 미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줄의 맨 뒤로 다시 돌아가야했고, 귀국하는 조카들을 공항에 데려다주다 차 키를 차에 두고 문을 잠근 덕분에 조카들의 짐을 따로 부쳐야했던 그런 분이셨지만 말이다. 다만 끝은 좋지 않았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법조인과 맞지 않는 캐릭터를 어떻게 다른 재능으로 만회하다가 나오게 된 안 좋은 결과물일까. 모르겠다.

여하간 변명에도 불구하고 경유지에서 비행기 환승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어떻게 변호사로 성공할 수 있겠냐고 누가 힐난한다면 거기에는 상당 부분 동감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뭐든 그렇지 뭐. 아싸리 러시아 행 비행기를 놓쳤다면 10박 11일짜리 카자스흐탄 여행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는 러시아에 어떤 숙소도 미리 예약하지 않았었을 뿐더러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도 사지 않았었으니까.

물가도 싸고 카자흐스탄이 10박 11일이라면 관광으로서는 여유가 있으니 더 재미난 인연이 많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하간 그러지 않은 덕분에 러시아 여행기가 된 것처럼, 그냥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른 거 하며 밥 빌어 먹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재능 없는 생업에 성실히 종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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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직전 방문한 알마티 공항의 화장실이다. 색감도 이국적이지만 무엇보다 꾸역꾸역 처먹은 기내식과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는 자책을 쾌적한 공간에서 배출해줄 수 있게 해준 감사함으로 이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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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환승하면서 본 알마티 공항의 전경이다. 둘러쌓여진 설산이 인상적이다. 앞에 있는 비행기들은 모두 군용기들로서 자세히 보면 알록달록한 국방색으로 칠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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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하는 공항 요원의 만류를 무시하고 바로 앞에 이륙하는 비행기를 지근거리에서 찍은건데 사진으로는 전혀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잠깐이지만 도시 전경이 매우 흥미로웠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도시가 소위 가장 이국적이어야겠지만 실은 티브이에 자주 나오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는 이런 곳의 아무 거리나 불쑥 방문하는 게 가장 시각적으로 신선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도시는 내게는 제법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예전 <문명 5>라는 게임을 하면 도시 국가인 알마티에서 매번 군사 유닛을 제공하곤 했는데. 나는 그 유닛에 <알마티 사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쏠쏠히 잘 써먹곤 했다. 게임 종료 시점에는 승급을 거듭해 정예 메이커 사단으로 거듭나곤 했지. 그게 내가 혼자 놀던 방식이다.

나는 친구가 적다(僕は友達が少ない).txt

조금 있으면 러시아다. 러시아에 있는 내 소중한 ‘친구’들은 나를 반가워할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까?

궁금하다. 일단은 관광도 해야한다. 러시아 입국 두 시간 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가이드북을 보기 시작했다.

여행기는 시간과 의식의 순서대로 나열함

[굿모닝 러시아] D-1 아직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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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진 이상민 사진각 이네요 ㅎ ㅎ
경유하는 뱅기 타면 조심해야 겠군요
여행 포스팅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안 됩니다 ㅋㅋㅋ 이상민 사진각이 뭐죠

여행 포스팅은 쭉 작성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꽤 오래전에 가신다더니 이제 출발이신가요? 여행기가 흥미롭네요 저는 어제 러시아를 돌아 벌써 귀국했는데 ㅎ 러시아 동부는 열악했어요

다녀온 건 까마득한 옛날인데 지금 쓰네요 ㅎㅎ
러시아 동부라면 어디인가요?
나중에 쓰겠지만 사마라는 갈 뻔하다가 결국 가지 않았습니다 ^^;;

사진 속 남녀...커플이란거죠? ㅋ

네 맞습니다 ㅋㅋ

여행기의 새 지평을 여시는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당.

오랜만에 뵙습니당ㅋㅋ 열심히 써볼게욧

화장실관련 이야기들이 아ㅡ주 유쾌하고 즐거웠습니다. 특히 화장실 앞자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관찰과

환승 직전 방문한 알마티 공항의 화장실이다. 색감도 이국적이지만 무엇보다 꾸역꾸역 처먹은 기내식과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는 자책을 쾌적한 공간에서 배출해줄 수 있게 해준 감사함으로 이 사진을 올린다.

명문입니다.

하하 명문으로 평가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화장실에 나오시는 분들이 계속 눈이 마주치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ㅋㅋㅋㅋ

알마티 공항 화장실 정말 쾌적하고 좋습니다. 강추합니다!

저도 일상이 허술한 구멍 투성인데.. 일할때는 조금 달라져요.
일할때 본 사람들은 나중에 저라는 사람을 알고는 어이없다 웃을때가 많거든요. 전 비행기 갈아탈때가 아니라 비행기 타러 공항갔는데 만료된 여권을 가져간적도 있어요. 그때 이후로 신뢰를 잃었죠 ㅎㅎ
러시아 관광기도 쭈욱 올려주세요~

ㅎㅎㅎㅎㅎㅎ 만료된 여권.... 누구나 한번쯤은 해볼법한 실수 아닐까 싶네요 ^^;
그냥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더 실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도 일할 때라도 허술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쭉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사진도 공개하시고 ㅋㅋ 가즈앗!!!

사실 아주 오래 전에도 공개한 적이 있긴 해요 ^^;;
가즈앗!!

ㅋㅋ 똥송 에서 터졌네요
잘 읽고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장 적절한 단어 선택이 아니었나
스스로도 뿌듯해하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러시아 이야기 시작이군요! 러시아 진국 이야기 기대됩니당 ㅋㅋㅋ

감사합니다 ㅋㅋㅋ 되도록 하루에 하나씩 써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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