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인생템 #6 "티볼리 오디오"

in #zzan6 years ago

서론

요샌 음악을 들을 때 유튜브로 그냥 아무거나 틀거나 알렉사에게 음악을 틀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한 때 아이튠즈란 도구에 노래를 모으고 자켓을 편집해서 정리해 두는 이른바 아날로그 감성에 깊이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그걸 정리하고 있는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수십 기가바이트의 용량을 그렇게 이리저리 옮기며 내외장 저장장치를 오가며 관리하던 그 노래들은 어느순간 내컴퓨터에서 사라졌다. 이젠 유튜브가 익숙하고, 알렉사가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튠즈에 빠져있을 무렵 내가 이유도 없이 열중 하던 일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CD들을 MP3앨범으로 만들어 내면의 디지로그 감성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스피커에 대한 열망도 너무 강렬했다. 그러던 중 유럽여행 중 한 상점에서 발견한 작은 스피커를 보고 숨이 멎었다. 제법 많이 들어봤던 브랜드, BOSE였다. 사운드링크 미니였다. 저걸 보스말고 보세라고 발음하는 것조차 세속적으로 보였던 당시 300유로 가까이 했던 것 같은데, 나름 넉넉하게 챙겨갔었지만 카드까지 동원해서 "무리를 한다고 해도 무리였다". 여행자금으로 구매하기엔 정말 비싸도 너무 비쌌던 것이다.

남은 약 일주일간의 여행기간 동안 틈만 나면 그 스피커가 눈에 아른거렸다. 한 1년이나 지났을까. 방콕에 일정이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기회였다. 애플매장마다 전시가 되어있었다. 9900바트. 하지만 유럽여행 때 보단 사정이 나았다. 현금과 카드를 합쳐 "무리를 좀 하면 큰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물건이 없었다. 애플매장 대여섯곳을 돌았지만 전시는 다 되어 있는데도 물건이 없었다.

그리고 두어 달 드 지났을까 서울의 백화점에 물건이 들어왔다. 나는 얼리아답터처럼 달려가서 사버렸다. 맨날 닦고… 물고 빤다는 말이 그걸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미니멀라이프를 목표로 알렉사를 택하고 미니를 시집보내버렸지만, 한 6년 정도 미니는 내가 가장 아끼는 템이었다. 물론 그조차 쉬운 건 아니었다. 시집을 보내기 위해 무려 두 달을 내려놨다 올려놨다를 반복했으니.

이렇게 장황하게 미니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오늘 주인공 템은 제목에서 본 것 처럼 다른 템이다.

본론

그렇게 음악을 듣기에 푹 빠져서 CD를 사 모으고 앨범자켓을 만들기 시작했던 20대의 어린 남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건 30-40대 남자 어른들의 감성이었다. 인테리어나 소품에 신경쓰는 남자어른들은 모두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소품꽤나 안다는 한 40대 초반의 어른에게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20대 : "저 정말 평생 쓸 수 있는 좋으면서 작은 스피커는 뭐가 있을까요? 전 큰건 싫거든요"
40대 : "얼마까지 쓸 자신있어?"
20대 : "한 10만원 정도?"
40대 : "걍 아무거나 사."

20대 : "그러지 마시구요. 제가 돈이 없어서..."
40대 : "돈도 아끼고, 좋은 스피커도 사고?"
20대 : "아니 돈은 아끼고 모아야 되는거니까요..."
40대 : "평생 쓸 정도로 좋은 거 사고 싶다며. 그럼 없어도 투자해. 10만원만 더 써봐."
20대 : "… 네. 알겠습니다. 20만원 쓸게요"

40대는 내게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줬다. 그리고 보스미니에 빠지기 약 10년 전, 그렇게 내가 샀던 첫사랑이 바로 티볼리 라디오 모델 one이었다. 티볼리 라디오 모델원은 내 20대 후반을 내 인생에서 송두리째 가져가 버렸다. 이 스피커는 뭐랄까. 사실 그렇게 엄청난 스피커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 조그만 나무통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뭔가 혼이 스르르 빠져나간달까, 때로는 심장을 은근히 쥐어서 숨이 막히게 한달까. 그런 소리르 냈다. 그리고 그 마수는 특히 한가한 오후 노을이 지기전, 햇빛이 가장 노란색일 때 가장 강렬했다.

그리고 특히 언제부터인가 듣기 시작했던 "오늘아침 정지영입니다."를 듣고 있으면 매일 아침 가슴이 무너졌다. 시큰해지는 감성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생각해보면 아마도 나는 그 때가 사춘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 들어보면, 티볼리가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만큼의 감성이 안느껴지는 걸 보면 확실히 그 때 나는 사춘기었던 것 같다. 아무튼 돌이켜 보면 티볼리 라디오는 정지영의 목소리에 가장 잘 어울렸다.

티볼리 매니아들은 알겠지만 "노이즈도 아름다운 스피커"란 표현은 티볼리를 규정하는 하나의 대표문구였다. 그만큼 강한 매력을 가진 스피커였다. 미국이 고향인 스피커는 헨리 크로스란 스피커 발명의 천재가 만든 KLH란 브랜드가 만든 모델8을 모티프로 만든 발명품이었다. 모델8은 1960년대, 티볼리의 모델원은 2000년에 태어났으니 그 간극동안 헨리 크로스는 사실 작은 스피커의 아름다운 소리를 어떻게 만드는 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가 받은 전화번호는 유일하게 티볼리 라디오를 정식으로 수입하는 한 업체의 사장님이었다. 내가 그 이후로 그렇게 아까워했던 20만원을 털어서 샀던 티볼리였지만, 그 이후로 한 5-6대를 추가로 더 샀던 것 같다. 그 사장님은 티볼리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줬다. 나는 올 블랙을 선택했었는데 내게 한국에서 정식루트를 통해 올블랙을 가진 사람은 내가 한 3-4번째일거라고 말해줬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누군가가 갖고 있었던 티볼리 모델원 중 올블랙을 가진 사람을 거의 못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후로 티볼리 오디오는 갬성 좀 있다는 사람들의 필수품처럼 여겨졌다. 급격히 익숙해져 갔다. 많은 디자인 샘플에서도 탁자위에 놓인 스피커는 모두 티볼리였을 정도라니.

내가 추가로 구매했던 스피커들은 모두 선물용이었다. 아마 내게 그 선물을 받았던 이들은 당시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게 누구누구였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물건과도, 사람과도 사랑에 빠지는 건 한 순간인 때문일까.

이후 보스미니에 빠지면서 중간에 한 번 바람을 피운적이 있다. 보스미니가 내 취향처럼 크기도 더 작고, 값도 더 나가고 소리도 사실 더 좋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어느날 티볼리를 다시 한 번 구해볼까 싶어 방콕에 사는 동안 한 번 상점엘 들렀는데 이상하게 내가 기억하는 그 소리가 나질 않았다. 사든 안사든 그 감성을 다시 같은 물건에서 느끼지 못했다는게 씁쓸한 기억이었는데, 미니멀라이퍼로 알렉사를 선택하고 보스도 없는 오늘 퇴근길 지하철에서 갑자기 옛사랑 처럼 티볼리가 아련해졌다. 주말엔 티볼리 소리를 들어보러 백화점이나 어딘가에 불현듯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작고도 싸고 소리도 너무 좋은 스피커들이 쏟아져서 꼭 필요하지도 않지만, 시간이 이렇게 지나고 이별한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문득 생각이 나는 걸 보면, 티볼리는 확실히 내 인생템이었던 것 같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사랑에 빠져 있을 땐 모두 뜨겁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게 진짜 사랑이었는지, 내게 의미가 있었는지를 알려면 이별 후에 긴 시간이 지나봐야 되는 것 같다.

Sort:  

오늘 보스와 티볼리라는 걸 알게 되네요. 스피커에 열중했다는 말씀은 음악을 그 정도로 좋아했다는 뜻인데.... 주로 어떤 곡을 들으셨어요?

티볼리를 들을 때 제가 빠져있던 음악은 뉴에이지라고 불리던 연주곡들이었어요. 아웅 너무 좋았죠.

글을 읽다보니
저도 옛날생각이 많이 나네요. ^^

내가 샀던 첫사랑이 바로 티볼리 라디오 모델 one이었다

티볼리?? 이게 좋은 건가요? 저야 막귀라 다 똑같이 들리던데...ㅋㅋㅋ
물론 음악에 관심도 없으니... 뭐가 좋은건지도 몰라요! ㅎㅎ

걍 들으면 감성을 때린다니까용 ㅋ

저는 보스미니 짝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답니다.
진퉁도 가지고 있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Coin Marketplace

STEEM 0.05
TRX 0.32
JST 0.082
BTC 65797.25
ETH 1799.05
USDT 1.00
SBD 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