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육아일기 #20] 선생님의 전화

in #zzan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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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님과 다르게 아이들에 대한 걱정 거리가 거의 없는 편이다.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도 '아직 어리니까, 아직 잘 모르니까' 라는 생각으로 기다려 주거나 바른 방향으로 조정해 주는 정도이다. 그저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항상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걱정 거리가 조금씩 늘고 있다.

둘째는 두 돌도 안되는 어린 아이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보니 부족한 것이 있을 때 쉽게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잠시만 안아줘도 금방 울음을 그칠 때가 많다.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는 원하는 것을 찾아주면(신기하게도 부모는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의외로 쉽게 찾는다) 곧 울음을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게 웃으면서 잘 논다. 그래서 크게 걱정이 없다.

이번 걱정은 첫째 때문이였다. 첫째는 말을 빨리터서 그런지 의사표현이나 감정표현을 잘하는 편인데 요즘들어 부쩍 부정적인 말을 많이 쓰고 있다.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 노래에 나오는 "못살겠다 홍경래." 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걸 따라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빠가 안놀아줘서 못살겠다. 잔소리가 많아서 못살겠다."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아내님에게 정말 내가 잘 안놀아주는 건지, 잔소리가 많은 건지 물어보며 하소연을 했을 정도다. 여튼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아빠랑 엄마랑 율이랑 같이 오래 살고 싶지않아? 천 년(이제는 열백년이라고 하지 않고 알아들음^^;;) 살고 싶다고 말해 놓고 오래 못살겠어?" 라고 했더니 "아빠가 안놀아줘도 오래살고 싶어, 잔소리가 많아도 천년 살고 싶어." 이러고 있다. 고단수다. 이건 분명히 나를 놀리는 게 틀림없다. 혹시나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이나 친구의 말에 꼬투리를 잡아서 얘기하지는 않을지 심히 걱정되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태권체조를 배웠다며 나를 매트삼아 때리는 것이다. 나야 아빠니까, 장난인걸 아니까 괜찮지만(가끔 뼈 맞으면 진심 아플 때도 있다 ㅠㅠ) 동생에게 그럴 때는 따끔하게 혼내기도 한다. 그리고 걱정이 되는게 어린이 집에 가서도 그럴까봐 몇 번을 타일렀는지 모른다. "절대 친구 때리면 안돼. 발차기, 박치기, 꼬집기 전부 다 하면 안되는 거야!" 몇 번을 단호하게 이야기하면 또 "잔소리가 많아도 천년 살고 싶어." 이러고 있다. 하아...

어제는 아이들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뛰어 놀았다. 옆라인에 사는 형, 동생, 누나까지 합세해서 술래잡기를 했다. 30분 정도 사이에 3천보가 넘게 찍혔으니 참 많이 뛰어 놀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첫째가 형과 함께 나무짝대기를 들고와서 나를 찌르고 때리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까지 있어서 좋게 좋게 타일렀지만 단 둘이 있었다면 아마 언성이 조금 높아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행동이 폭력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당하는 상대의 아픔이나 수치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크다. 아이들의 경우에도 그렇다. 그래서 어제는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고 첫째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지지만 어쩔 수 없다. 혹시나 다른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님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 주었다. 전반적으로 나를 옹호해 주었지만 잘하고 있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갑자기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님은 밥을 먹다 말고 십여분 정도를 베란다로 가서 통화를 하다가 들어왔다. 혹시나 어린이집에서 사고를 친건 아닐까 괜히 불안해졌다. 아내님이 다시 돌아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왜 전화가 왔냐고 물어보았다. 아내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윤이랑 율이가 어린이집에서 제일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데. 선생님 말도 잘듣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낸다고 하네. 그리고 애들이 항상 웃고 있어서 보는 선생님들도 덩달아 다 기분이 좋아진다구. 선생님들이 나랑 오빠 칭찬 많이한다고, 우리한테 고맙다고 전화하신거래."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는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잘 적응하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 받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평소 바라는대로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지만 내 시선으로 바라 본 어긋난 행동들이 더 크게 보였던 것은 아니였을까? 스스로가 많이 반성되고 미안했다. 씩씩하게 밥을 먹고 있는 첫째의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아빠. 선생님이 왜 엄마랑 아빠를 칭찬해요. 내가 잘한 건데 나를 칭찬해야지." 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너는 알까? 아빠가 평생 받아 온 칭찬 중에 오늘 받은 칭찬이 최고라는 사실을...^^


오늘도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더불어 아이를 사랑으로 가르치는 부모님과 선생님께도 감사과 축복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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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감사의 전화를 받으신 날
그 기쁨이 두고두고 약발을 받으실겁니다.
박카스 보다 반짝하고
보약보다 힘이 되는 ^^

사랑이 꽃피는 가정!
아이들은 밖에서는 집에서와는 다른 모습들이 많은 거 같아요.

아이들은 부모들과 떨어져도 씩씩하게 행동해서 놀래키고는 하더라구요ㅠㅠ아유 기특해ㅠㅠ

아이가 잘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아듣고, 혹시 나쁜 말을 많이 할까 걱정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어린이집에서 잘 적응한다는 말에 눈물이 핑돌고...
모두모두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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