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잡기 20-10] 리스본행 야간열차(Nachtzug Nach Lissabon)

in #zzan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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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년의 남자가 비 오는 아침 다리를 건너다 여자가 난간에 기대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위태로워 보였던 여자는 아니나 다를까 다리 아래로 떨어질 뻔 한다. 가까스로 그녀를 붙잡아서 출근하던 학교로 데리고 간다. 그녀의 빨간 코트에서 떨어진 빗물이 복도를 적시고....

남자는 그날 갑자기 문법처럼 정확했던 근무 태도를 버리고 학교를 나가 버린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그를 찾지만 그는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얻어서 집으로 가 문을 잠그고 포르투갈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무엇이 57세의 이혼남이자 고전어 선생인 그레고리우스를 흔들었을까. 아름다운 그 여자의 포르투갈어의 발음? 그래서 그는 서점에서 알지도 못하면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얻었던 걸까?

그는 가방을 챙겨 책을 주머니에 넣고 리스본을 향해 기차를 탔다. 책 속 표지의 저자 아마데우 프라두는 귀족처럼 보였고 책의 내용과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다.

프라두는 판사 아버지를 둔 천재 소년이었다. 남다른 감수성과 천재성이 그를 돋보이게 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어려워했다. 심지어 그의 가족조차도. 그것을 알기에 프라두는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그런 그가 안심할 수 있는 친구는 자연인의 모습을 한 조르지와 여자친구 마리아 주앙.

병을 앓는 부친의 뜻대로 의사가 되어 프라두는 리스본에 병원을 열어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다. 그러다 저항 운동가들을 고문하는 비밀 경찰의 핵심 인물 멩지스를 응급 치료하게 되었다. 시민들은 프라두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 사람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프라두를 저항 운동에 끌어들인 주앙 에사도 고문으로 불구가 되었다.

의사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에도 괴로워하던 프라두는 이제 친구 조르지의 연인인 에스테파니아를 피신 시켰다. 그녀는 독재자 살라자르에 대항하는 비밀 조직의 중요 연결자였는데 그녀가 잡혀 고문당하면 조직이 탄로될 위험에 처했기에 조르지는 그녀를 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스테파니아와 프라두는 사랑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녀와의 사랑도 그의 영혼을 채우진 못했던 것 같다.
그녀를 멀리 피신 시킨 후 돌아 온 후 프라두는 고뇌어린 긴 밤을 보내고 새벽에 산책을 하다가 뇌동맥류 파열로 사망한다.

그가 남긴 일련의 기록들을 그의 여동생 아드리아나가 소중히 모아 책으로 출판한 것을 이 기차 여행자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옥같은 사유와 시적 언어의 조탁을 드러낸 책, 그리고 그의 주변에 있던 인물들이 내놓는 편지글들은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면서도 경외심을 가졌는지 알기에 충분했다.

알고 난 후에는 같을 수가 없다. 일탈을 끝낸 그레고리우스는 베른으로 돌아가 다시 부벤 베르크 광장과 키르헨펠트 다리 위를 걷지만 무릎나온 바지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한치의 틀림도 없는 라틴어, 그리스어, 헤브리어 교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라는 프라두의 말 때문이다.

사실 스토리보다는 프라두라는 남자가 남긴 글에서 읽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상상은 언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인식한다면 시와 상상력으로 표현되는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으므로.

영화 <리스본행 야간 열차>의 영상이 자꾸 떠올라 읽기가 좀 더뎠다.
그리고 또 알게 되는 것이 영화와 소설의 차이다. 소설의 분위기를 더 자세히 보여줄 수는 있어도 다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영화다.

언젠가는 키르헨펠트 다리를 건너가 볼 수 있겠지?
프라두가 사랑했던 리스본의 아우구스타 거리도 걸어 볼 수 있겠지?
가 보고 싶다.

파스칼 메르시어/ 전은경 역/ 들녘 / 2019(원 2004)/ 16,000원/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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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사람들의 고뇌하는 삶이 깊이있게 다가왔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좋은 책이었죠.

현대의 고전이라고 하더군요.

영화는 못봤는데, 소설을 먼저 도전해볼까요 ㅎㅎ

재밌을것 같네요!

언어 의미를 상당히 깊게 다루더군요. 현대 고전이라고 해요.

술술 잘 읽히는 책은 아닌가 보네요.
언젠가 소설 땡길 때 대비해서 찜 해야겠습니다~

약간 그래요. 언어를 고찰하게 돼요. ㅎㅎ

도잠님 추천 책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팥쥐님은 늘 칭찬하시는군요? 감사합니다. ㅎㅎ

팥쥐님 가족은 너무 아름답지요..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우리 다 같이 리스본으로 가지요.

그럴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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